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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군인도 감성적이어야 한다.

by *열무김치 2012. 8. 19.

10,26 사태가 나고 그해 가울 우리는 태릉에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데모진압 훈련을 하고 밤에는  텐트에서 잠을 잤는데 한밤중이 되면 이가 딱딱 거릴 정도로 추위가 몰려왔다.

초병근무는 크게 없었지만 먹고 씻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빌어먹을 안개는 왜 그리 자주 끼는지 아침마다 축축한 모포를 털고 말리는 일은 일상이면서도 우리들을 힘들게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일정 장소에 모여 교육을 받곤 했는데 정훈교육조의 일장 연설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소총에 착검을 하고 주변을 행군했다.

국가 원수를 갑자기 잃은 중대한 시국이었지만  늦가을의 정취는 여전했고 연인들은  보통때처럼 단풍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늦가을 풍경이 주는 아릿함은 삼업한 분위기에서도 우리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돼지 몇마리를 잡았는데 덕분에 돼지고기 몇점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선임하사관들은 부대원들은 위해 돼지를 잡은곳에 가서 팔뚝을 걷어 부치고 칼질을 했다.

우리들은 그 광경을 멀거니 서서 구경을 했다.

군인들 막사에서 돼지를 잡다니..

그 풍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어느날 밤 저녁을 마치고 온 부대원이 공터에 모였다.

빵 한개와 우유 한 팩, 그리고 위문편지  한 통 씩이 배급되었다.

나누어준 빵과 우유를 먹는데 부대장이 장기 자랑을 한다며  소대별로 팀을 꾸리라고 하였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랜기간의 야외 생활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는건 사실이었다.

대원 몇명이 나가서 광란의 춤을 추었다.

한 녀석이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비비 틀어대자  순간을 놓칠세라 다른 부대원들이 가세하여 춤판을 벌렸다.

다른 소대에게 질세라 너도 나도 나가서 난리를 피워대자 부대장이 나섰다.

"야, 이놈들아 .

어떻게 하나같이 저질스러운것만 하냐.

야..이것말고 딴건 없어?  좀 고상한거 말이야."
춤판을 벌리던 녀석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들어가고 이번엔 성악을 한다는 녀석이 나와서 알지도 못할 야릇한 노래를 불렀다.

목청은 참 좋았는데  반응은 별로였다.

"야,야.. 누가 근사한 노래좀 불러 봐라 . 군인도 감성적인데가  있어야 되는거야 . 이 무식한 놈들아."

모두들 입을 내밀고 앉아 있는데 군대 오기전 기타를 좀 쳤다고 자랑을 하던  녀석이 앞으로 나가더니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 한곡을 불렀다.

하지만 녀석의 목소리는 엉망이어서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부대장의 핀잔이 돌아왔다.

"아주 작곡을 해라. 돼지하고 사돈을 맺던지....

이건 노래가 아니라 공해다 공해..이놈아."

 

 

"야, 윤상병  네가 좀 나가봐라.너 그런 노래 잘 하잖아"

동료들이 내 등을 떠 밀었다.

"싫어..내가 언제 그런 노래를 잘 한다고 그래."

하지만 박수가 나오고  동료들 등살에 떠밀린나는 할수없이 부대원들 앞으로 나왔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박수가 나오니 뻘쭘거라고 서있을 수도 없었다.

 

 

거리에 찬바람 불어 오더니

한 잎 두 잎

낙엽은 지고

내사랑 먼길을 떠난다기에

가라 가라

아주 가라 했네.

갈 사람은 가야지

잊을건 잊어야지

찬비야 내려라

밤을 세워 내려라

그래도 너만은 잊을 수 없다.

너무 너무 사랑 했었다.

 

 

가사가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당시 연인들에게 유행하던 (찬비) 라는 유행가였다.

쥐죽은듯 노래를 듣던 동료들이 박수를 친것까지는 좋았는데 ..

"야..야..초상났냐..무슨 노래가 그리 청승맞어.

군인이 그런 궁상맞은 노래를 부르면 쓰나. 에이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만 끝내."

난 얼굴이 벌개서 총알같이 들어왔다.

 

 

텐트로 돌아 오면서 평소 불평 많기로 명성이 나있는 동료가 투덜거렸다.

"그럼 뭐여..춤판 벌리면 저질이라고 하고, 고상한 노래 부르면 초상 났다고 하고..

군인도 감성적어어야 한다메?

지 얼굴이 감성적인 얼굴이여?  산적 두목이지"

 그녀석은 지금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1978년 팀스피리드 동계훈련중에

 

 

 

운전대를 잡은 모습이 멋있어 보입니다.
양평에서 군대생활을 하신줄 알았는데 서울에도 진출 하셨나 보군요.
10.26사태때 저는 공군 쫄병 이었지요..이등병,^^

여름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을 했읍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다녀왔는데 다행히 비를 많이맞지는 않았네요.
그동안 피치못할 사정으로 많이 다니지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어느정도 해소했읍니다.^^*
이제는 어서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한 가을이 오기를 기대하며.....
열무김치님의 가을소식을 기다리겠읍니다.ㅎㅎ
하하~
저때는 멋이고 뭐고 빨리 이 세월이 갔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지요.
저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군생활을 했습니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 나오면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합니다..ㅎㅎ

여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푸셨다니 반가운 일이지요.
오늘도 예외없이 비가 내립니다.
아무래도 올 가을은 심술궂게 올것만 같습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줄 모르니.....
10.26 사태 때 군에 있으셨군요.
군인은 군인이지 사람이 아니란 말이.....

열무김치님 노래도 잘 부르시는구요.
글 잘 쓰시고 노래 잘 하시고 너무 멋쟁이시네요.
누가 열무김치님이신지?
찦차에 앉아있는 사람이 접니다.
오래전의 사진이라 지금보니 딴사람 같네요.

비가 내리니 도심도 조용하네요.
식탁물가가 올라 주부들의 근심이 높아진다는데 도매 물가도 많이 올랐어요.
가격인상이 되고나서 안그래도 판매에 힘이 들었는데 더 안좋아지게 생겼습니다.
전...
아무래도 이 직업을 그만두어야 할까 봅니다.
젊은 사람들과 부닿치는것도 그렇고 갈수록 시장이 여러워 지네요.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도매업을 그만 두라고 하는데 아직도 할일이 많은 저로서는 용기가 나질 않는군요.
더구나 퇴직하고 등산이나 다니는 이웃들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오랜간 시장에 쌓인 미수금처리도 또 하나의 숙제 입니다.
비 내리는 창밖을 보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해 봅니다. [비밀댓글]
열무김치님 너무 멋지시네요.
어떻게 그때에 사진을 찍을수가 있었네요.
귀중한 사진입니다.

물가가 너무 오르고 공공요금도 오르고 어느곳 하나 괸찮은데가 없는것 같습니다.
놀기는 일하기 보다 더 힘든가봅니다.
파란마음님을 보며는 거의 365일을 산에 가시는것 같습니다.
집에 있으면 자꾸 싸우게 되니 피하는 수밖에 없지요.

열무김치님은 아직 젊으셔서 좀더 하셔도 되는데 어려운점이 많군요.
밖은 하루종일 비가 쏟아지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가을 장마라고합니다.
날씨때메 우울해지네요. [비밀댓글]
정말 포병 출신이셨죠? 사진에 그대로 나오네요.

전 찬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 노래와 곡조가 기억 납니다.

그런데 요즘에 긴 글을 쓰시는 걸 자주 보는데 아주 좋습니다.

전 사진만 강하신 줄 알았는데 글에도 강하시군요.

애틋한 기분으로 읽고 갑니다.
네..
포병 맞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짚차는 미군이 2차 대전때 쓰던 차였는데 106mm 무반동총을 싣고 다니기엔 그만이었지요.
사막을 누비던 찦차로 당시 명차로 불렸습니다.

부대장이 분위기 있는 노래를 하라고 해서 억지로 불렀는데 나중엔 혼을 내더군요.
지금 생각하니 추억입니다.
군인도 때론 감성적이어야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부대장이 분위기 쇄신을하고 사기를 북돋으려 한것 같은데 판단 미스하신듯 합니다 ^^*
그래도 잊지 못할 병영 생활입니다^^*
소대의 대표 주자로 나가셨을 정도면 노래도 잘 하신듯합니다 ㅋ
90mm 무반동총 특기? ㅎ
머물다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아..106mm 지요.
저것를 소유한 전문 부대가 따로 있었지요.

오래전의 일입니다.
열무김치님!
그런 시절이 있으셨군요
그때의 군인 생활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전해 오는 듯 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제불로그를 친구공개 불로그로 전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 신청을 하고 가오니 허락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 계절 되십시오
네 감사 합니다.
놀러가서 뵐께요.
훈련소에서 돼지를 끌고와서 훈련병중에 도살경험있는 친구들을 데려가서 잡고, 바베큐해먹은 기억이 나네요...
너무 맛났는데......

ㅎㅎ
아..
같은 경험이 있군요.
10,26으로 인해 생고생 엄청 했습니다.
엊그제 일 같은데..
ㅎㅎㅎㅎ...
웃고 댓글 적습니다.ㅎㅎㅎ
군대에서....이래도 맘에 안들고 저래도 맘에 안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들바 없군요.ㅎㅎ
10,26 사태 때...저는 고 1 이었어요.
아침에 등교하여 교실에 들어섰더니 우리반 애들이 울고 있었어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나에게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하셨대"
믿기지 않았어요.통학버스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왔는데 그런 뉴스는 없었거든요.
저도 무척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열무김치님은 군인이었군요.가만있어보자 그럼 나이가...ㅎㅎㅎ

아,저도 윤정하가(?) 부른 찬비 무척 좋아하는 노래예요.
고 1 이셨으면 큰 차이는 나지 않네요.
전 군에 일찍 갔거든요.

10,26으로 인해 부대를 떠나서 광주사태를 거치고 전역을 했지요.
드라마 같은 군생활을 했습니다.
빛바랜 군인사진이랑 맛깔나는 군대이야기 잼있게 읽고 내려왔습니다.
열무님은 가끔씩 앨범을 들춰보시나 봅니다.
옛사진 스캔하여 가끔 구경시켜 주시네요..
노래를 잘 하시나 보네요..
추천받을 정도면...

군인도 감성적이어야 한다...
그럼요~~
10.26 사태때 군인이었으면 얼추 저하고 비슷한 연배시겠네요..
ㅎㅎ
휴가는 모두 끝나신거지요?

ㅎㅎ~
군인들의 노래가 거기서 거깁니다.
비슷한 동지를 만나서 더~욱 반갑습네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보는 편이지요.
아미도 이게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 같습니다.
저도 군대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저는 군인의 아내로 2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교사였던 저는 남편을 따라 학교를 옮겼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자연히 퇴직을 하게 되었지요.
남편 근무지마다 따라다니면서 관사에서 생활하게 되어 군생활을 곁에서 보며
부대내에 들어가 김장도 몇일씩 군인아저씨들과 함께 하고
생월자파티도 달마다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차려서 축하해 주곤했는데
남편이 예편을 하고 나니 년말에 늘 위문을 다니던 일을 안하게 되니
근처 어디라도 다끈한 커피라도 들고 가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들고 몇년은 허전하더라구요.
아..그러셨구나.
블로그를 보면서 그런생각은 전혀 듧지 않았는데...
맞아요.
부대에서 김장 담글때 많이 도와주러 왔었지요.
커디란 창고같은곳에 수천포기; 김치를 담그었는데.
고추가루가 그리 좋지 않았던 기억도 납니다.

추억이 많으시겠습니다.
군대 사진이군요.이곳에 운전대 핸들 잡으신 분이 열무님 맞죠...
멋있군요..마음은 언제나 그때와 다르지 않지요..
젊음이 좋은데 마음만이라도 젊을 노래하고 생각하고 살아요..
마음 먹기 달렸다고 하잖아요..오늘도 군대시절 그 젊음의 날 처럼 하루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요..(-ㅁ-)
넵(~)
맞습니다.
말씀처럼 마음은 그리로 달려 갑니다.
비록 힘든 시절이었지만 추억은 언제나 아르다운 얼굴로 다가 서는군요.

(즐)거운 명절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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