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 http://cafe.daum.net/kic3629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급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이 말이 과연 맞을까?
중년들의 바지가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다리에 꽉 끼는 스판덱스 종류의 바지로 변하는 걸 보면서 일면 긍정이 가지만, 온 동네 먼지를 죄 쓸고 다녔던 통 넓은 나팔바지가 다시 유행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이 말이 효력을 다한 것 같다.
1960~70년대만 해도 광목이나 옥양목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겨울을 났다.
광목(廣木)은 평직으로 제직된 표백되지 않은 상태의 면직물로 표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스러웠다.
좀 산다고 하는 집에서는 이보다 선이 가늘고 감촉이 부드러우며 천의 밝기가 좋은 옥양목을 썼는데 한 겨울 피부에 닿는 서늘한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음장 같은 늦가을 냇물에 옥양목을 빨아서 긴 바지랑대가 바쳐진 빨랫줄에 널면 부는 바람을 타고 마치 눈보라가 치는 것 처럼 보였다.
철부지들은 그게 좋다고 바람에 나부끼는 옥양목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어머니는 옥양목을 거두어다 다듬이질을 하셨는데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난타 못지않은 소리로 들렸다.
단타로 시작된 다듬이질 소리는 템포가 점점 빨라지면서 고단수가 치는 드럼소리처럼 변했다.
모르긴 해도 옛 어머니들은 다듬이방망이로 시집살이나 남편의 구박에 대한 한을 풀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분이 풀릴 때 까지 방망이로 광목이나 옥양목을 내려치다보면 어느정도 가슴이 삭여지지 않았을까.
힘찬 방망이질로 노골노골 하게 다져진 옥양목은 웬수 같은 시어미나 꼬장 같은 남편의 얼굴로 보였을게다.
하니 오랜 시간의 방망이질이 힘이 들었을리 없다.
덕분에 풀 먹여 흠씬 두들겨 맞은 옥양목은 나그나긋해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늦은 오후나 이른 아침에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희한하게도 잠을 불렀다.
아마도 교차되어 들리는 반복적인 리듬이 소음이 아닌 자장가로 들렸던 게다.
이렇게 다듬어진 옥양목을 덧대어 솜이불을 만들었다.
한 겨울 미처 달구어지지 않은 아랫목에 깔린 솜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까칠하면서도 서늘하고 한편으로 부드러운 감촉은 묘한 감흥을 불러왔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은 한옥의 겨울을 솜이불로 났으니까 광목이나 옥양목은 서민들의 또 다른 구세주인 셈이었다.
살충제 달걀파문으로 시끄럽더니 이번엔 발암물질 매트리스로 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다.
매트리스나 베게 등 침구류의 주원료로 쓰이는 재료에 발암물질인 다이클로로벤젠이 허용치를 수십배에서 수백배 초과하여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당 회사가 리콜조치를 취하곤 있지만 침대의 매트리스나 베게, 차량 시트 등에 쓰이는 폴리우레탄의 주 원료인 이 물질이 그동안 너무 광범위하게 쓰여 져서 이를 단기간에 회수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간단하면서도 번거롭지 않아서 주부들이 폭넓게 사용한 소아용 기저귀 역시 그동안 말도 많고 탈 도 많았다.
십 수 년 전 만 하더라도 소아용 기저귀는 대부분 천을 사용했다.
반복하여 세탁을 하여 썼기에 수고스럽긴 했지만 보드라운 아기 피부에 큰 자극이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큰 보탬이 되었다.
손자가 집에 내려와 있을 때 아내가 천 기저귀를 몇 차례 사용한 적이 있었다.
단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쓰레기봉투에 쌓인 1회용 기저귀 양을 보고 기겁을 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어린아이가 이럴진대 전국의 수많은 유아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사용하는 기저귀양이 도데 체 얼마일까를 생각하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산업에 매달려 먹고사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입장을 생각하면 긍정이겠으나 산업쓰레기에 몸살을 앓아야 하는 것도 우리이기에 결국 아랫돌 빼서 윗 돌 고이기인 셈이다.
시대적인 차이긴 하지만 옛 어른들이 지혜로웠다는 생각이다.
비록 불편하고 수고스러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발암물질 공포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시대적인 트랜드라면 별 수는 없겠지만 소비자들도 산업공포에 시달리면서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다름 아닌 자연으로의 회귀다.
이미 극한으로 치달은 물질문명에 갇힌 현대인들이 자연으로 회귀한다고 해서 옛날 방식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자연으로 돌아가 육식과 문명생활을 멀리하고 자연으로 부터 얻어지는 최소한의 삶의 방식만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은 소수에 그치고 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옛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훔쳐보는 것은 현대과학이 빚어낸 무서운 얼굴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옛날 필림 카메라를 사장시키더니 근간에 다시 회생을 하는 듯 하다.
필림 회사가 다시 생산을 시작했고 이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필림 카메라가 간직한 고유의 색감이나 사진 촬영의 손 맛, 필림이 현상되기까지의 기다림을 잊지 못하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0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 음악이 쨍하고 선명한 음을 들려준다하여 선호하더니 많은 곡을 수록하지 못하고 잡음이 섞여있어도 향수를 불러온다고 하여 LP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편리한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야누스 같은 두 얼굴 때문일까?
아마도 지구의 생물 중 인간처럼 복잡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크기나 양이 적어 외면했던 토종이나 다루기 불편하고 수고스러웠던 옛 물건이나 생활들이 다시 주목을 받는 건 우연이 아니다.
돌고 돈 유행의 결과물이나 편리한 물질문명의 독성을 알아 차렸기 때문이 아닐까.
블로그 친구들은 왜 그런곳에 열무김치님글이 안올라 오는지 이상하다 할것입니다.
옛것과 새것에서 다들 편리한 것을 쫒아서 사는 이때에,좋은 지적을 하셔서
그동안 눈멀게 살아온 제자신도 뒤돌아 보게 하는 글입니다
살충제달걀도 유럽에서 인장이 되지 않았다면 국내도 영향이 덜했겠지요.
과학에 대하여 잘 몰라도 인공적인 물질들이 사람의 건강에 과히 좋지 않다는 것은 느낌이나 짐작만으로도 가능하지 싶습니다.
그걸 감수하면서 편리를 쫓아 사는게지요.
사실, 이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친숙해져서 단박에 이를 멀리 할 수 없잖습니까.
늘 좋게 보아주셔서 블로그 하는데 용기가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LP판 몇 장을 갖고 있는데 그걸 찾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소프트웨어 중에는 난감한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컴퓨터에 집어넣어야 볼 수 있지만 이제는 넣는 곳도 없어진 디스켓......
이러다가 중요한 문서도 사장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다시 보고 싶은 파일이 컴퓨터 디스켓 속에 수없이 들어 있지만 '다 지난 일이야......' 하고 맙니다.
LP판 역시 상당한데 턴테이블이 망가져서 더이상 돌리지 못하고 있지요.
아..
아직도 플로피디스켓을 소장하고 계신가봅니다.
카세트나 비디오 테이프는 아직도 사용 가능 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되지만 그건 참 곤란하다 싶네요.
건강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세상이 되니까 여지저기서 아우성이 들립니다.
다들 알고 있었으면서 편리함에 밀려있다가 이제와서 인정을하는 꼴이지요.
옛 조상들이 당시는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했겠지만 그때의 삶의 방식들이 상당하 과학적이고 자연적이란 것을 요즘에와서야 인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논설같은 이글은 진짜 열무님이 쓰신걸까를 의례적인 생각으로 심오하게 읽었거든요 ㅎㅎㅎ
어디 칼럼에서나 나올듯한 글이쟌아요 제가 익히 전에 쓰셨던 글을 안봤으면 업어온 글로 착각했을거예요
헌데 제가 아까 폰으로 뎃글을 길게 쓰고 있는데 큰딸이 엄마~~하고 어리광을 부리며 제 팔에 안겨 눞는거예요
그래 엄마 뎃글 달고 있어 ~저리좀 가..하여도 자꾸 앵기길레 걍 안고 뎃글을 또 계속 써내려 가는데
아~ 세탁 아저씨가 어제 맡긴 세탁물을 가져왔길레 뛰어나가 받고 들어와서 쓰려니깐 없어진거예요 아놔~~~~~~
그래서 어찌하여 찾아서 다시 쓰려고 톡 누르는 순간..걍 날라가버렸쟌요 흑흑 ㅠㅠㅠㅠ
열무님 책임져요~ ㅋㅋ
제가 어려서 엄마가 이블 뜯어 빨아 풀멕여 널으신것 걷어오면 막내라 늘 엄마곁을 졸졸 따라다니던 제게 반대편에서 저 천을 잡으라고 하셧죠
그것 잡으면 입에다 물을 머금었다 푸푹 하며 물을 뿌려가면 이쪽 저쪽깃을 늘여 당겨 네모 반듯하게 해놨죠 그런다음 착착 잘 개켜서
저보고 꼭꼭 밟으라 하셨어요 사실 그것 밟는것은 제일 지루하고 싫은 것 였어서 조금하다 엄마 다됐어 ? 하고 물으면 조금 더 조금 더 몇번이나 그러고 나면
그 다음은 다듬이 돌을 꺼내 다딤질을 하셧죠
그게 얼마나 장단맞춰 재밋는지요
전 그것은 꼭 하겠다고 하요 엄마랑 맞은편에 앉아 꽤 장단을 장맞춰 두둘겼습니다.,
결혼후에도 다딤질을 좀 했는데 우리 시어머님이 참 신기해 하셨어요 어린게 그런것도 한다고요.
그 새로꿰멘 이불호청의 사각거리고 빳빳한 그 상쾌함과 더불어 차가움이 그리 좋지많은 않았어요
특히 겨울엔 더했지요. 요즘 극세사 이불의 그 따사로움이 건강상 어떨지는 몰라도 전 참 좋습니다.
지금 폰카로 찍은 사진은 잘 인화하지는 않지요 폰에 가지고 다니다가 날려 보내기도 하고
이렇게 블에 저장만 해놓게 되지요 가족간 공유는 잘 못하고 있는데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필름카메라 를 꼭 다시 쓰진 않더래요
찍어놓은 사진은 얼마간이라도 인화 해 놔야 겠단 생각합니다..
그런데우리 열무님 신문사에서 원고 청탁 안들어오나 모르겠어요..진짜 훌륭하세요
다듬이질 하면서 한을 풀어내듯 내리칠때 케케묵은 쳇증이 다 풀리겠지요?
지금도 그것 집에두고 한다면 열받을때 마다 엄한 빨래 갖다가 구멍낼을것 같아요 ㅎㅎㅎㅎ
까짓~ 댓글이야 또 쓰면되구요.
일단은 일을 봐야겠지요. ㅎㅎ
진요, 책임 없습니당~!
쓴신 댓글을 따라 과거로 다녀왔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도 해 볼만 합니다.
저도 옥양목 빨아 잘 마르면 방안이나 마루에 앉아 양쪽 끝을 잡고 잡아당기던 기억이 나요.
그거 잡아 당기다 천을 놓치는 바람에 뒤로 꽈당 넘어지기도 했지요.
식구들이 많았던 까닭에 이불도 많았는데 제 기억으로는 늦가을이면 이불호청에 솜틀집에서 틀어온 솜을 넣어서 밤 늦도록 이불을 꿰메던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려요.
어머니 다듬이질 소리는 지금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때 쓰던 박달나무 다듬이돌과 방망이가 남아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박달나무 다듬이돌은 역사가 오래됐네요. 그럼에도 쇠처럼 단단한 나무는 하나도 변한 게 없고 사람만 늙었습니다.
필림 카메라가 있는데 시장에 나가 필림을 구해봐야겠어요.
찾는 이 많다니 오랜만에 필림으로 사진을 찍어서 현상해 봐야겠습니다.
늘 좋게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블로그 이웃이니까 그러시겠지요.
저희 아이들은 아기 때 파는 기저귀를 쓰지 않고 천 기저귀를 삶아서 썼습니다. 빨래대에는 온통 기저귀 천이 내려올 날이 없었습니다.
어디 계란만 그런가요? 요즘은 옥수수기름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지 제 귀에 들립니다. 카놀라유 하니까 왠지 있어보이고 뭐 좋은 성분이
들어있는 식용윤가 했는데, 그게 알고보니 유전자조작 콩으로 만든 식용유데요? 알지 못하고 속고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장모님이 손수 만들어주신 들기름을 원없이 먹었는데 요즘은 아껴먹습니다. 이젠 더이상 장모님이 수확한 들깨를 먹지
못하거든요. 옛날로 돌아가서 사는 것 또는 먹고 입는 것이 좋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시대는 발전을 하니까 현재의 것이 더 좋은 것은
분명 있을겁니다. 단, 돈이 전부가 아닌 인간을 위한 마음, 깨알만큼의 양심만 있어도 이런 사단이 발생하지는 않겠지요.
내용을 떠나 글 면면에서 흐르는 과거 추억(저는 다듬이 방망이 추억이 많지는 않지만)이 녹아있는 글들이 너무나 구수합니다.
그러셨구나.
젊으신 분이라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때까지 그렇게 했나 봅니다.
전에는 잠잠하더니 요즘들어 대형사건들이 줄줄이 터집니다.
아무렇지않게 잘 쓰거나 먹다가 느닷없이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갔다, 살충제가 들어갔다 하니까 지금껏 먹고 사용해 온 소비자만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더구나 선진국들이 모여있는 유럽쪽에서 이런 사단들이 벌어지니까 더 당황스럽지요.
하지만 그런 걸 들추지 않더라도 인공을 가미한 물건들이 완벽할 리가 없잖겠습니까.
그 걸 어느정도 감수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아야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또 무슨일이 터질지 소비자들은 무엇이든 믿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갑니다.
이래선 안 될텐데요.
올해는 들깨가 풍년이어서 들기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좀 싼 가격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골엔 멧돼지들과 고라니들이 워낙 설치고 다녀서 웬만한 작물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만 유독 들깨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생각엔 들깨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여 들깨를 많이 심어서 제가 다니는 곳 곳마다 모두 들깨예요.
장모님께서 주지 않아도 올 가을 들깨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을 것 같으니 사다가 짜서 드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아이들 키울때는 정말 천기저귀 당연히 빨고 삶고 했는데
지금은 문제는 아이가 훌쩍 자라서 뛰어다니는데
기저귀를 사용하더라구요
아이한데 스트레스 준다고 오줌 가리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는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사실 제가 아이키울때 천기저귀 솔직히 빨기 힘들어서
대소변을 빨리 가리게 했지요
다 자란 우리 아이들한데 얘기하면 나는 몇개월에 가렸어
궁금해하는데
큰아이는 육아일기를 써서 찾아보면 있을것 같기도 해요
너무나 변하고 변하는 우리 사회
각 지자체마다 쓰레기 매립장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당장 여기도 그래요.
이렇게 심각한데도 우리는 아주 느~긋하게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버리고 있지요.
그 중 일회용 기저귀나 일회용 용품들은 , 특히 커피용기는 하루에만도 수백차 씩 쏟아질겁니다.
그걸 실감하려면 쓰레기 수거에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장마,태풍등의 천재지변으로 쓰레기수거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주변을 한번 보시면 간단합니다.
그런 상태로 열흘정도만 지나면 쓰레기에 파묻쳐 일상생활이 전혀 되지 않을겁니다.
위기론자들이 위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당장에 난리가 납니다.
구청 청소과 박수소리 들리네..ㅎㅎㅎ
이 한편의 글을 그림으로 그려 놓는다면 8폭 병풍을 앞 뒤로 다 그림으로 만들어야 겠다 싶습니다.
근 20여년간을 붓글씨로 시작한 붓 잡기에서 붓글씨는 가도 가도 끝이 없어서 17여년간 하다가 문인화 쪽으로 돌아선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이러다 내가 가고 나면 내가 그림을 그렸다 해도 남는 것이 없겠다 싶어서 병풍용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 병풍그림을 완성하고 결핵이 걸리고 1년여 투병생활 뒤에 나아도 서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중단 했다 했습니다.
그런 여자분이 우리가 살아 온 지난 날들을 열무김치님의 글처럼 그림으로 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이 아니고, 새로운 시각에서 예전을 생각해서 그리는 그런 그림의 병풍이었으면 하게 됩니다.
어제는 한글로 디자인을 한 무료 전시회를 서울역 광장의 어느 건물에서 보았습니다.
글자에 많은 의미를 담아서 디자인화 한 것이여서 그중 찍은 사진이 20점이 넘었고, 그림에 관심이 있는 준서가 그냥 일별로라도
색감, 디자인 된 선들이 눈이 갈까 싶어서 카톡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물질문명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더이상 그림을 그리실 수 없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병풍을 완성하셨다니 그 병풍이 보고싶네요.
과거는 그저 과거로 남는 게 아니라 미래를 예견하고 점 쳐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위 생물학적인 역사가 반복 되듯이 사람의 삶도 같지 않을까요.
분명 각자의 자기역할분담이 있기에 과거를 덮어놓고 배제할 수도 없고 미래를 낙관하기도 힘든 이유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카톡으로 보내준 할머니의 눈썰미를 손자가 알아보리란 느낌이 듭니다.
백마디 말보다 실천을 통한 가르침이 기억에도 오래 남으니까 준서가 하던 안 하던 분명 마음으로 남길 것입니다.
어머니는 빨고 난 그것을 풀 먹여서 다듬이질 하셨고
그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노라면 온몸이 청결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행히 서구문명 중심의 현대화와 산업화의 폐해를 깨닫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고
자연 중심의 삶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닫고 있으니
아직 희망은 남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밀댓글]
그놈으로 이불을 만들어 덮으면 정갈한 느낌이 났다는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형제들이 많았던 저는 늘 이불 한 쪽 끝을 차지했지만 그 추웠던 겨울을 솜이불 끝으로라도 버텼으니 솜이불은 지금의 이불과 비교불가인 셈입니다.
자연중심의 삶을 떠올리면 TV의 난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가 떠오르는데 알고보면 그것도 흉내일 뿐 진짜 자연적인 삶은 아닌 셈입니다.
일전에 올리셨던 최소한의 삶에 필요한 부분만 자연에 의존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삼 떠오르네요.
방법을 검색하다가 왔습니다
마음이 급한데 언제 만들고 있을라는지 ..
조급한 마음만 앞서네요
트랜드가 급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유행에 민감한 삶을 살지 않는다지만 무시하며 살기에 용기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하루종일 고단한 농사일과 집안일에 힘들었을텐데
부지런한 엄마는 빳빳한 광목천을 빨고 널어 다듬이질까지...
긴 겨울밤, 엄마옆에서는 광목에 풀을 먹이며 나는 서늘함과 깔깔함을 지닌 천의 촉감과 냄새가 좋았어요.
다듬이질이 끝나면 양쪽으로 잡아당겨 천을 팽팽하게
펴는 일을 했던거 같아요.
그 후로도 엄마의 일은 계속되었는데 솜이불을 한땀 한땀 바느질하셨던 긴 겨울밤이 떠오릅니다.
엄마에게 고단하셨을... 나에겐 포근한 엄마품
처럼행복한 기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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