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횡성, 안흥의 찐빵 축제장에 전시된 모래무지
초등학교 1년반을 충주에서 조금 떨어진 달천초등학교를 다녔다.
등 하교길은 기찻길옆 먼지나는 신작로였는데 키 큰 미류나무가 점점이 서 있었고 이무렵 논 여기저기에 보리가 패서 서서히 누런 빛깔로 익어갔다.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철로길를 따라 오다가 가끔씩 겁없는 행동을 했다.
기차가 어디쯤 오나 서로 알아맞추기를 했는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철뚝에 엎드려 철로에 귀를 대고 아주 가느다란 소리가 나는가를 유심히 들었는데 기차가 멀리서 오게되면 철로에 댄 귓가로 "댕강댕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우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것은, 멀리서 굉음을 울리며 다가오는 기차는 섬찟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불러와 어린 우리들이 그것을 즐겼다는 것이다.
찌그덩한 초가잡 뒷편으로 제법 실한 내가 흘렀다.
자갈보다는 고운 모래가 넓게 깔려 있어서 동네 꼬맹이들은 주로 그곳에서 멱을 감거나 장난질을 하며 놀았다.
모래가 많은 내에는 모래무지가 많이 살았다.
시커먼 고무신으로 모래바닥을 헤집어 모래무지를 잡았는데 약삭빠른 모래무지를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어린마음에도 꾀를 냈는데 다름아닌 집에서 곡식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얼개미를 이용해서 모래무지를 잡는거였다.
*daum 자료 (펌)
뒷짐을 짚고 맨발로 모래를 지그재그로 저어주면서 뒷걸음질을 치면 모래속에 숨어있던 모래무지가 발에 걸리거나 놀라서 도망을 치는데
그녀석을 쫓아가 맨손으로 움켜냈다.
하지만 워낙에 약삭빠른 녀석이라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게 바로 얼개미 포획이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맨발로 천천히 모래를 젓다가 녀석이 놀라 도망을 가면 물속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녀석이 모래속으로 몸을 숨기기 바쁘게 얼개미로 잽싸게 모래와 함께 퍼냈다.
이렇게 하면 모래속에 숨어있던 모래무지는 얼개미로 푼 모래와 함께 담겨서 물밖으로 나왔다.
얼개미의 모래를 쏟으며 우리들은 조바심을 냈다.
모래무지가 들어있을까, 아닐까를 두고 가위바위 보를 하기도 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얼개미 모래를 쏟아내면 십중 팔 구는 모래무지가 퍼덕이며 나왔다.
모래무지가 퍼덕이면 우리는 만세를 부르며 겅중겅중 뛰었다.
그런데 기억에 없는것은 그렇게 잡은 모래무지를 어떻게 했는지다.
매운탕을 끓여 먹은 생각도 나지않고 집에 가지고 오지도 않은 것 같다.
그 기억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모래무지는 맛이 매우좋은 민물고기란다.
시골 친구들이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줄 토종닭을 손질하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이 몇 있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그 친구들이 도회지에 떨어져 사는 다른 친구들을 부른다.
울고싶은 사람에게 뺨 때려 주는 식으로 우리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간다.
경사 났네~
도심에서는 좀처럼 대하기 힘 든 진수성찬(?) 을 맛 볼 수 있는데다 이 좋은 계절에 유유자적 천렵을 할 수 있으니 마다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5월 냇가의 숲에 모여앉아
큼직막한 토종닭 몇 마리만 삶아내면 그날은 온 종일 잔칫날이다.
게다가 허물없는 친구들이 모여 쇠주잔을 기우리면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도종닭 파티가 끝나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냇가의 바위나 자갈에 족대를 대고 흔들면 아직은 쓸만한 물고기들이 올라온다.
살펴보면 저 민물고기들 틈에 모래무지도 보인다.
큰 양념 없이 끓여낸 매운탕은 원료가 좋아서인지 맛이 괜찮아서 모두들 걸지게 한그릇 씩 비웠다.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먹는 까닭이다.
우리들 밥상머리가 이렇게만 된다면 아이들과의 소통도 한결 부드러워 지지 않을까.
전국에 매운탕집이 꽤 많은데..
이런 매운탕을 팔까?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우리곁을 지나고 있다.
바쁜 삶은 가끔씩 우리들에게 찾아온 소중한 순간들을 허락도 없이 데려가 버린다.
그리곤 되돌릴 수 없는 먼 후일에 그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무심한 까닭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공존하는 가정의 달 5월.
푸르르게 변하는 산과 들을 바라보며 일부러라도 숨고르기를 해보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다.
입하가 지나고 서서히 여름으로 간다.
젊은이들의 취업 걱정과 살아가기 고단하다는 걱정으로 하늘 한 번 올려다 보지 못하고 쫓기며 사는동안 계절은 저혼자 유유히 제 갈길을 가버린다.
이렇게 한달이 가고, 1년이 가고, 또 십년이 바람처럼 간다.
그러다 어느날 계절의 한 모퉁이에 서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이 평범한 우리들의 삶 일까?
생뚱맞게 드는 5월의 오지랖이다.
좋은 시간에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모습 평화로워 보입니다.
진정 사람 사는 모습인 거 같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바람처럼 지나가지요
우리는 한모퉁이에 서있고
어쩜 이렇게 우리마음을 잘 표현하셨을까
저도 어버이날 친정 가서 토종닭 먹었는데요!^^
암탉 대신 장닭이 더 연하다고 하던데요??ㅎㅎ
열무김치님 건강 비결은 저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언덕을 넘으며
착한 사람들과 함께 웰빙 요리만 드시니까 그런가 보아요.
심각하게 부럽습니당!^^
지나간 야그인뎁쇼(~)
저거이 금방 없어졌쓰요.
처가에 가면 토종닭을 기르는 울타리가 있는데 그거 탐나서 자주 갑니다.
염불은 뒷전이고 젯밥에만 눈이 가는 중이지요.
그 닭들에게 저라는 존재는 웬수입니다.
심각하게 부러워 하면 지는 겁네다.(~)(!)(ㅎㅎ)(ㅎ)
막걸리 한잔에 저 매운탕을 숟갈로 듬뿍 떠서는 보드라운 뼈째로 씹어삼기는데,
걸죽한 탕맛도 좋지만 송송썰은 매운 고추의 뒷맛이란, 하아~ 하아~
아이고 열무김치님 먹고 싶습니다.~
하도 리얼하게 쓰셔서 제가 침을 삼켰다는.
먹을 줄 아십니다.
청양고추 송송 썰어넣은 알싸한 매운탕은 공공의 적입니다.
오늘의 최고 댓글로 인정합니다.
상품도 없는..
기차가 달려오는 철로에서 간 큰 머스마들은 기싸움을 하고
멀찌기 서서 가슴 조이며 발동동 구르는 지지배들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그런 맘을 알리없는 머스마들은 오줌이 지릴 만큼 겁은 나지만.. 하하
고향을 지키는 내 어린 날 친구들이 닭잡고 미꾸라지 잡아 매운탕 끓여~
계절의 모퉁이를 살짝 돌다 되돌아 보면.. 아, 그런 날들 하나 있었지~
그런 친구들 있었지~ 지금부터 더 먼 훗날이 되면 퇴색돼 있을
지금 이순간도 작은 추억이라 말 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푸르른 5월, 살면서 5월이 너무 버거워 별로라 하고 왔는데..
이제부터라도 함께 5월의 숨은 뜻을 챙기며 살아 볼까 합니다.
훔쳐보기에서 이름표만 날리다가 대화칸에 낑가져 봅니다.
손가락이 놀랐던지 댓글을 날려 버리고.. 다시 줏어 모아
쓰다보니 오늘은 아침이 늦어질것 같습니다. 하하
비슷한 환경에서 소년시절을 보내셨지 싶네요.
5~70년대를 보낸분들의 비슷한 이야기들은 당시의 환경이 도토리 키재기가 아니었을까를 짐작하게 합니다.
여전히 그 세대들이 농촌을 지키고 아직은 그곳을 찾아가는 여력이 남아 있지만 이제 많이 퇴색되어 갑니다.
그 친구들이 서로 소줏잔을 나누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먼저 글을 주시고 다가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말씀처럼 좋은계절이 되시길 바라고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공기도 좋고 날씨도 화창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도시 사람들은 보지도 못햇으므로 그리 폼나게 뜯을줄도 모른다는..
저기에 김치 하나면 아무것도 필요없지요..소주깨나 비우셨겠어요.
지금은 이런저런 인정이 많이 없어졌다 하여도 아직 인천 우리동창들 모이면 누군가의 가계에서 저리한답니다
제 친구 인자가 장사를 할때엔 주구장창 그애네서 벙개를 처댓었지요
복날 닭잡고 보신탕 끓이고. 그래서 친구들이 좋은가보아요
어려서 저희동네에도 수인선 협쾌열차가 지나갔지요 열차가 저기끔에 온다 하면 철로에 대못들을 죽~깔아놓지요
열차 지나간 자리에 가보면 납작해진 대못 그것으로 소꿉 장난을 햇던 기억이 나요
저희도 엎드려 열차소리 가늠하던 기억이 나고요
외갓댁을 가려면 그 협쾌열차를 타고 수원으로 갔는데
방학이 다 끝나고 집에올때 동네를 한참지나 역전이 있었지요
그럼 어린것을 좀 동네에 내려주고 가지 하면서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시던 생각이 납니다 ㅎㅎㅎ
열무님 덕에 어린시절을 회상해봅니다 ^^
바쁘지 않으면 뭐 병이라도 나는 듯
직장업무 카카오스토리 주말여행 주 중 퇴근후 문화행사 등등
바쁘게 지내다보니요
그리고 내일 (5월12일)유럽여행길에 나섭니다
다녀와서 열무김치님 포스팅 하나하나 잘 보겠습니다
저는 민물고기 매운탕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극도로 오염된 곳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자신들은 절대로 먹지 않고 가게에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아연실색, 그 후로는 저도 절대로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뭘 먹고 살지?'
저 싱그러운, 깨끗한 민물고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합니다.
흰머리분이 한분도 안뵙니다.저렇게 물고기로 매운탕을 잡수시는 연세시지요.
글 중에서도 천렵으로 잡은 저 한 가득의 물고기가 압권입니다.
그 사진에는 열무김치님의 어린시절의 그리움도, 고향의 친구분들이 도시 친구분을 초청해서 대접하시고 있지만,
덧 없이 십년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가니 10년 뒤에는 저기 모이신 분들이 다 그리워만 할 것 같은 그날의 일들이 있는 것이고,
맨 밑의 사진은 저 숲에서 들어 가면 꼭 나오겠는데, 일단은 저 길따라 들어 가고 싶고, 들어 가면 무엇이 있을까? 싶고,
올 해는 봄비가 잦았고, 7~8월 폭염의 시기가 아니어서 길이 바싹 마르지 않아 보입니다.
흐린 날이라 차라리 차분해서 좋습니다.
고향에 남아있는 몇명의 친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그들이 구심점이 되어 그걸 핑계로 서로 만나고 예전에 했던 일들을 다시 해 봅니다.
요즘 농촌은 과거와 달라 많이 삭막해졌다고 말을 합니다만 그래도 보이는 자연이 순하고 그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인심이 살아있습니다.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은 여전히 시골이니까요.
아직 아나로그로 남아있는 저런 풍경들이 좀 남아 있기를 바라는 욕심입니다.
강 정비사업으로 모두 파헤치고 다듬어서 예전의 모습들이 대부분 사라지는데 그에반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제가 시골에 살면서 여러번 추진도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은것이라서요.
올해는 비가 잦군요.
엉뚱한 얘기지만 잦은비로 채소농사가 전반적으로 잘 되어서 올해 채소값 폭락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움 뒤에는 삶의 고단한 이야기들이 늘 숨어 있습니다.
전원생활의 낭만이 묻어나네요.
저도 요즘 부쩍 느끼는 중입니다.
예전처럼 부산한 삶은 아닌데도 몸은
예전처럼 빠릇하지 못하고 말이죠ㅜ.ㅜ
시골풍경과 넉넉한 우정이 오가는
사진속 모습에서 잠시 고향을 그리게 됩니다
사윗님 기웃이 들어서시면
에고고 저 왼수 왔네 꼬끼요 그러던가요 ....^^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의 가슴속엔 고운 추억거리가 빈곤하지만
피난살이를 시골에서 한 삼년 했으니
칠십을 훨씬 넘어산 가슴속에는
그곳이 고향인양
온갖 잡동사니들이 자릴잡고 있답니다
자그마한 깡통따개를 기차 선로위에 얹었다가
납작해지면 마름을 파서 먹었고 ...
오빠들이
고기 잡는다며
아랫개천에서 위로 치오르면서 몇마리 고기 잡을적마다 질러대는 괴성이
온동네 노인들을 개천가로 끌어내었지요
비가 오고나면 왜 고기가 잘 잡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꼭 비온후엔 양동이 들고 설쳐들댔지 싶네요 ...^^
오월이 벌써 중순으로 들어서네요
내 일생에 다시없을 가장 젊은 달입니다 아쉽게도 ...^^
모래무지 저희 고향에도 아주 많습니다
사진들이 모두 정겹습니다
다슬기도 주우러가고 싶고 ....지금 딱 그러고 픈데 ..
그럴수 없는 시간 여유로 잠시 블러그로 마실 왔더니
ㅎㅎㅎ 여기서 모래무지 옛이야기 동화처럼 만났네요 ~ ㅎ
덕분에 흐뭇하니 ~ 미소 머금어 봅니다 ㅎ
- 캠핑버스여행/허기성
- 2016.05.15 19:07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전국적으로 벼락과 돌풍이 동반되겠고,
남해안과 제주도에는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겠습니다.
이 밤 야심한 밤 늦은 심야 밤차로
비박 배낭 둘러메고~ 목포찍고 신안일대 섬 탐방을 하며
경매토지 현장 답사등 두르르 2박 혹은 3박 일정
걍~그냥 떠나려 했는데.....
비 비님이 내 발길을 묵네요 ㅠㅜ
ㅈ ㅏ알 다녀 오셔요 하는 이도 없는 너잔아!
가는 너가 서글프니 발길 잡아 주시려는 눈물인가요?
가는 길..아쉬워 하루를 늦추라는 산뜻한 희망의 봄비련가
비내리는..휴일밤 푸념 한소리 겸 방문 인사 글 남깁니다^*
실한 토종닭에 민물고기 매운탕 별거 안 넣고 고추장만 넣어도 맛있겠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천렵을 많이 다녔지만 저 물고기는 정말 엄청나게 잡으셨군요.
저희는 늘 반찬이 없던 터라 잡은 물고기는 거의 집에 갖고 와서 탕을 끓여 먹었지요.
때론 어머님께서 찬거리없다고 등 떠민 적도 기억납니다.
참 좋은 시절이었지요.
정선에서의 도락과는 달리 삶의 현장이었거든요.
오늘도 역시 좋은 글 많이 보았습니다.
이곳은 땡볕인데 . . . 더위 조심하십시오.
- 청청수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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