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문을 열면 바로 앞집의 2층 복도가 보인다.
도심의 집들이 고만고만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웃과 불편한 모습도 공유해야하는 처지가 되다보니 가끔은 원치않는 일도 생긴다.
저녁을 마치고 답답해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앞집 2층 복도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 세 명이 쪼르르 나오더니 담배를 피워물었다.
늘 상 보던 풍경이니 시선을 얼른 다른데로 돌렸다.
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곤 했지만 그게 참..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언젠가 부터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 여학생 세 명이 보여주는 모습은 좀 그랬다.
세 명 다 담배를 피워 물고 요란하게 웃고 떠드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마 가래침을 아랫층 으로 뱉은 모양이다.
아랫층에서 뭐라고 욕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남학생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의 대화는 처음과 달리 이내 험한 욕지거리를 주고받는 싸움으로 변했다.
듣자니 생전 처음듣는 욕도 나왔고 남학생보다는 숫자상 우세인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크고 험악했다.
내가 한마디 하려고 나서자 아내가 나를 잡아끌며 얼른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나서서 해결할 능력이 있어요?"
싸우는 소리가 요란해지자 주인이 올라왔다.
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요란해지기에 또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들어보니 여학생들은 그 집에 사는 학생들이 아니고 앞집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온 학생들이었다.
남학생이 열을 올리자 나이 지긋한 주인이 서로 사과하라며 여러 번 타일렀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더니 급기야 한 여학생이 신발을 벗어 남학생에게 던졌다.
잠시 머리를 감싸 쥐고 섰던 남학생이 여학생들을 밀치며 발길질을 해댔다.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서 아내의 만류에도 얼른 앞집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가보니 여학생들은 취기가 역력했다.
주인할아버지는 고얀 놈 들이라며 얼른 이집에서 나가라고 역정을 내고 있었고 그 집에 사는 여학생은 그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주춤거리던 내가 연세 많은 어르신이 타이르는데 그만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나를 빤히 바라다보던 여학생이 대뜸 하는 말이
"늙은이가 무슨 벼슬이예요?"
...............
그 이튿날 문제의 그 학생들이 주인할아버지에게 사과를 한 모양이다.
술 바람에 그랬으니 너그럽게 용서를 해 달라며 빌더라고 했다.
한창 바람 때 의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 라 고 생각하면서도 취중에 내뱉은 노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왜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이럴까.
2~3대가 모여 살던 시대엔 어른이라는 위치가 집안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역할을 했고 아랫사람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순종했다.
집안의 어른을 바라보는 마음의 바탕이 장시간에 걸쳐 연습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있다.
밉건 곱건 자주 보고 부딯쳐야 어떤 모양으로든 마음이 간다는 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 후 우리는 여러 이유로 그런 교육과 연습을 하지 못했다.
산업화 바람이 불고 탈 이농의 현상이 극명해지면서 핵가족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지금에 이르러 개인주의가 뚜렷해진 세상이다.
가난한 시대를 산 부모들은 자신의 불행했던 삶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없지 않아 자식들을 대부분 풍족하고 자유분방하게 길렀다.
많아야 한 둘인 자식세대들은 핵가족화 되면서 대부분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가까이 하고 살 수 없다.
늙은 부모와 한 집에 사는 일이 사회구조상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자식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들어 늙은 부모와 살기를 꺼려한다.
듣자니 근래 들어 손자나 손녀를 낳으면 맞벌이 부부들은 남의손에 아이를 맡기기엔 고비용이 부담이고 안심찮아서 다시 부모와 합가를 하는 현상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그 필요성이 줄어들고 도움을 주던 부모가 늙으면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보자면 끝이 없지만 그런 사례들이 너무도 많으니 문제다.
혼신을 다해 자식을 교육시키고, 부모 늙어지면 그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는 순리적인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자식들에게 재산이나 금전을 물려주지 말라고 무슨 큰 진리를 깨달은 양 말한다.
부모를 모신다는 전제하에 재산을 물려주었으나 돈만 받아먹고 모르쇠로 나온다고 물려준 재산을 반환해 달라는 재판을 건 부모도 있다.
극단적인 예겠지만 부모 자식 간 에 재산을 전제로 한 법정싸움을 할 정도로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피폐해 있다.
전국적으로 요양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니 요양원에 가는 일이 이제 정식 코스로 굳혀져 가는 모양 세다.
요양원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노인시설은 필요한 복지 제도이다.
또 앞으로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노인수요에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숙명 같은 대상이다.
또한 자식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요양시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 될 수도 있기에 여기에 일률적인 잣대를 대고 옳고 그름을 논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제도적이라는 구실로 자신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위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노인들을 이 시대에 가장 합리적이다 라는 제목을 붙여서 이를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해보는 소리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변하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핑계에 익숙해지고 이를 비빌 언덕으로 삼아버린다.
자신도 그 대상에 속해간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어하면서도 말이다.
거기에 편승해 아이들의 교육제도 역시 이를 수용하거나 포용하지 못했다.
조부모가 이방인이 된 게 전혀 이상한일이 아니게 된 셈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祖父母를 꿈에 떡 맛보기로 만나다 보니 연로하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외계인에 가까운 존재다.
그런 교육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옛 방식대로의 훈계나 타이름은 줄세우기 주입식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겐 일면 낯설고 괴이한 일이다.
전혀 연습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그들의 언행과 행동은 당사자들에게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면서도 예전엔 이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분노한다면 이것도 참 딱한 노릇이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우리기 때문이다.
집 앞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낯 선 어른을 조심 하라던가 , 어느 어른이 아이에게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면 당장에 신고를 하는 등의 극도로 예민해진 사람들의 반응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 앞 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유치원때 부터 가끔이라도 어른들을 마주하는 교육시스템을 만들필요가 있다.
가령 어르신들이 계신 경로당이나, 양로원, 요양원등을 방문하여 재롱잔치를 한다던가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명목상으로라도 만들어 어르신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분명 부모들의 원성이 대단하겠지만 제도적인 틀이 자리를 잡으면 안 될일도 아니지 않는가.
부모들 역시 가정의 애경사를 이용하던 다른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조부모를 자주 만나게 해야 한다.
실제로 1년 동안 거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이래놓고 효를 말하고 그것을 요구하거나 그렇지 못한 세태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찌됐든 서로 보고 부딪쳐야 서로에게 할말도 생기고 추억도 생긴다.
그래야 노인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게 되고, 최소한 자신의 도리를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며 바라보는 시선 또한 부드러워 진다.
우리는 지금 그 걸 하지 못한다.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 잘 하면 다른 건 엉망이어도 무사통과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정작 책임을 질 어른들은 세상이 이 모양이니 보고도 모른 척 , 내 자식 문제만 아니면 시선을 돌려버린다.
노인의 삶?
어쩔 수 없어요.
그들의 삶을 염려하고 공생해야하는 따분한 울타리 안에 나를 가두기에는 내 젊은 날이 너무 짧아요.
어쩌겠어요.
그분들도 젊은 날 이 있었고 자기의 인생을 즐겼을 것인데 그 후일에 대한 해답을 왜 젊은이들에게 묻습니까?
각자의 생은 각자의 몫이지요.
강요하지 마세요.
어떤 모양으로든 각자 주어진 대로 살다가 때가되면 가는 것인데 그것을 사회도덕이나 양심법으로 계산하여 그 몫을 분담시키려 하지 마세요.
나도 늙으면 내 노후를 분담해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냥 각자 알아서 살다가 죽으세요.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노인문제를 다룬 기사에 달린 어느 댓글이다)
늙은이가 벼슬인가?
발칙한 이 질문 앞에 각자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이미 머리와 피부와 수염에 넌 이미 늙었다고 쓰여져 있
는 자로서 더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으로서
늙은이는 벼슬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
람들의 권리는 다 평등하니까요.
하지만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것은 맞습니다. 아이들의
횡포나 무개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함을 아이들이 반드
시 깨닫게 해야 할겁니다. 아마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
런 교육이 절대 필요해 보입니다
가끔 저희 아버님도 나이젊은 사람을 야단치시곤 합니다
전 기겁을 하죠.. 그 사람이 정신나간 사람이면 어떡할려
고 그러시냐고 말씀드리면 소리를 더 크게 올리십니다.
아마 절 믿고 그러시는지 모르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거
받아들이시기 싫으신 모양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저에게 돌아가실때까지 그러실 겁니다. 이
미 바뀔 방법은 없어 보이고 그때까지 제 힘이 더 버텨내
길 바랄 뿐입니다.
늙은이가 벼슬이냐고 따지는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이 마땅히 생각이 나질 않네요
같이 살아도 거의 조부모하고 대화가 없고 심지어 밥도 같은 상에서 먹어본게 언제적인지 모르신다는
푸념을 많이 들었거든요
손주도 열살 이전의 손주고 그 후론 친구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느라 심지어 부모님도 본숭만숭
자기가 뭐나 필요해야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 하느라 아는척한다는 이야기도 많지요댁
우리 세대가 샌드위치 세대라는 말도 있는데 좀 서글퍼집니다
이웃집 건너편 이층집에서 일어났던 일로부터,한국의 젊은이와 노년층간에 세대 격차에 대해서
논의가 되는것 같은데,요즘 부서진 가정들이 한국에 많다 보니,제대로 가정교육을 못받은 젊은층들이 많지요.
각기 다른 세대간의 융합도 격변하는 한국경제의 발전 및 개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도시로 모이는 현상때문에 사정상 서로 떨어져 살다보니 그것도 쉬운일은 아니라서
어른을 공경하고 대하는 것을 가르쳐 줄수 있는 곳은 학교인데,도덕시간도 없앴다고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배울기회가 적어지다보니 어른에게 함부로 하는 일들이 빈번한가 봅니다.
새로 도덕시간을 교과목에 넣는다는 말도 들었는데 지금쯤 다시 넣었는지요?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도덕불감증인 사람들의 나라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6~70대는 전체를 생각하느라 여기저기 중재에 나서지만
1~20대 애들은 개인만 생각하니까, '내 일에 간섭하지 말아라!' 이런 의견이겠죠?
중간에 낀 304050은 중용도 못 지키면서 회색분자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충돌에서 옳고 그름보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아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데,
'늙은이가 벼슬인가?'는 입으로 발사하는 합법무기라서 총 맞은 것처럼 아플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젊다고 유세하냐?'라고 맞받아친다고 걔네들은 들은 척도 않을 테니ㅠㅠ
일단은 가족이라 생각할 수가 없게 보고 자랐을 겁니다.
또 본가나 외가에 명절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다녀 와서는 양가의 조부모들에게 세대차에서 오는 시각이 달라서
또는 어느 정도 부담이 될 일이 있어 가지고, 불평불만을 어머니, 아버지가 토로를 하신 것만 보고 자랐는데, 무슨 애정이 있겠습니까?
누가 이 댓글을 보고 다 그런 것은 아닌데, 편향되게 이야기 한다고 하시면, 그러신 분들이 많으면 더 좋은 것이구요.
아마도 앞으로는 저 정도로 싸우고, 말리면서 하는 바른 말을 늙은이가 벼슬인가? 할 정도로 사회는 변해 가니,
직접 나서기보다는 경찰에 신고 하는 사회로 변해 가겠지요.
이번 경우는 어불성설이지요. 어찌 여학생이 술이 취해서, 남학생과 싸움을 하고, 그래서 주인할아버지께서 그만 싸우라고 만류의
말씀을 하신 것을 늙은이가 벼슬인가?
세상살이가 점점 무서워 집니다.
이게 뭔가 보자 싶었습니다.
댓글도 봤습니다. 어안이 벙벙하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살펴볼 때의 추천 상위 댓글 몇 개만 옮겨보겠습니다.
제가 뭘 이야기하는 것보다 생생한 전달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 그래도 조금이라도 걸어 다니고 운동하는 노인네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맨날 술이나 처먹고 동네사람들과 싸움질이나 하고
돈 욕심은 하늘을 찔러서 돈 버는 데에만 죽자 사자 매달리는 노인네들 보면 미련해 터진 게 보인다.
그 지랄하고 몸 아프면 누워서.. 국가가 또는 동네에서 뭐 안 해주나 하고 뭐 바라기나 하고.. 쓰레기 노인네 된다.
- 노력할 테니 부모님 잘 모시게. . 남의 자식들에게 쓰레기 취급 받지 않게
- 늙어서 수명 길어지는 것도 천벌이다.. 적당히 살다 죽는 게 복이다..
- 오래 살아 머할 건데? 나도 피곤하고 자식들도 힘들고
요즘 아이들은 개인주의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면 자신을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훈계한 사실만 기분나빠하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부터 교육을 잘 시켜야 하는데, 가정교육이 많으 느슨해 졌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판에서 잘못 자란 묘목(苗木)을 잘 키울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니 재배하는 사람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선은 원만하고 웃음이 충만한 가정 속에 건전한 소년생활을 보내는 것이 인생의 교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교육이 부재한 사회구조가 가장 큰 문제겠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발등에 떨어져서야 허둥대지 말고, 일찍부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데에서부터 이 사회의 정화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성취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작금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곧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입니다.
이 다섯가지 도리 -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교육이
어릴때부터 가정에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부족한 탓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발전하고 변한다해도
이 다삿가지 교육이 바로 서 있는 사람들이 더블어 같이 사는 세상이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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