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구멍가게 앞으로 급하게 난 내리막길 귀퉁이에 연탄재가 수북하다.
"그라도 올 겨울게는 이만하기 천행이여.요즘 같으면 연탄 두장으로 날 만 허지"
"그러네요.그래도 가게안이 너무 추워요."
"아따, 나보다 한참이나 젊은 양반이 무신놈의 엄살은.."
점방 아주머니가 다 탄 연탄재를 들고나오며 코를 팽 하고 풀었다.
"춥거든 한 사발 하시우."
어쨌든 시커먼 주전자에 무언가 끓고 있었다.
몇 년은 써먹었음직한 거무튀튀한 컵에 따라주는 붉으죽죽한 물을 멀거니 바라보자 이내 면박이 돌아왔다.
"안 죽어. 뙈놈을 닮았나. 생각해서 주는거구만."
들크무리한 물을 마시자 코에서 싸한 느낌이 돌았다.
"왜 부르셨어요?"
"보면 몰러?"
구석 진열대에 모아놓은 물건을 집어들자 모두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빨리 연락을 하시지.."
주섬주섬 박스에 제품을 주워 담았다.
"미안해서 그러제. 그냥 가져가. 이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고.."
아무런 대꾸도 없이 모두 새제품으로 교환해 주자 점주의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너무 오래 버팅겼나벼. 종일 주전자에 물만 끓이고 앉아 있으니."
점주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콧구멍 만한 가게안에서 또 담배질이네."
어느새 나왔는지 아주머니가 또 삿대질이다.
"이제 쉬실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고 연탄난로를 응시하던 점주가 탄식하 듯 말했다.
"그러고야 싶지.이만큼 버틴것도 대단한데..그런데 이거라도 그만두면 곧 죽지 싶어."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녀분들이 잘 성장 했잖아요."
"저렇게 답답하기는..걔들이 여기 신경 쓸새가 어딨노. 지들 살기 급급해 안 본지 오래 됐구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드르륵 요란한 밀창문 소리가 나더니 청년 한사람이 슬리퍼 차림에 동동걸음으로 들어섰다.
"아씨, 담배 한 갑이랑 라이터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담배를 건네자 나를 힐끔보던 청년이 나보고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하며 나갔다.
"문이나 새로 바꿔 달던지, 가게가 무슨 안방도 아니고.. 21세기에 밀창문이 뭐야."
점주가 피식 웃었다.
"지 놈 앞가림이나 지대로 허지, 오지랖은."
더 있기도 뭐해서 일어서려 하자 점주가 붙들어 앉쳤다.
"바쁘지 않으면 더 앉았다가 가라구. 새털같은 시간인데."
이 일을 그만두면 자신은 머지않아 죽을거라고 했다.
달동네 마지막 남은 허름한 구멍가게는 그냥 가게가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삶이라고 했다.
근대화에 밀려 옛 영화는 모두 소진되었지만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을 무작정 없애 버리기엔 자신의 세월에 너무 미안한 일이라면서.
그리고 나에게 너무 미안하니 앞으로 더이상 오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의 정이 얼마인데 그럴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도리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연탄난로에 얹어놓은 주전자의 뚜껑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기는 허지. 저 시커먼 양은주전자와 연탄 난로여.
저 애물단지가 딱 나하고 어울리지 않어?"
언덕을 내려와 대형마트에 들렀다.
요란한 음악이 들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명암이 극명한 세상이 되었다.
그 간격속에 시간은 희번덕한 두 얼굴로 사람사이를 오가며 흥정을 한다.
변해가는 세상에 잽싸게 적응하며 사는게 현명한 것인지는 유보 할 일이다.
또 연말은 이렇게 가고있다.
- lejujuko33
- 2015.12.28 16:39 신고
- 수정/삭제 답글
남편친구가 엊그제 감원대상으로 그만뒀다네요
아직 애들도 출가전이고 무얼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하더랍니다
인부가 보였습니다. 그 넓은 곳을 관리 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광 가이드에게 전체에 호스를 깔아 물을 주면 될터인데,
왜 사람이 저렇게 호스를 잡고 물을 주느냐? 했더니 그리하면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 들지 않느냐? 했습니다.
뉴스에 제법 첨단의 것까지도 자동화를 했다고 밉게 보면 자랑질을 합니다.
그 자동화로 고속도로 도로비 받는 분들의 일 자리도 줄어 들고 자동화가 바람이 되었으니 그곳에서 퇴직 당하면 갈 자리도 없고,
엔간한 곳에서는 그런 일자리 퇴직자까지 관리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용역회사에 아예 내어 주고, 용역회사에서 그 일들을 합니다.
조카 중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공부란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군대 제대까지 하고 나서 직장 구할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그래서 들어 간 곳이 큰 재래시장 생필품 도매 상회였습니다.
1.5톤 화물차에 덮개를 하고 시골로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버젓한 직업으로 있었으니까요.
결혼을 하고 부부가 같이 다니면서 시작한 일이였는데, 대형 마트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니 그 장사는 사양 길이여서 접었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건강원을 하다가 다시 접고, 친구가 하는 정비업소에 나가 기술을 배워 보겠다 하다 접었고,
차 도색하는 기술을 배워서 이제는 안정된 직업이 되었습니다.
버젓하게 대학을 나왔고, 전공은 컴퓨터 쪽이고, 부전공으로 1급전기 기사 자격을 딴 청년이 중소기업에 들어 갈려 해도 경기가 바닥이니
1명정도 뽑는 곳에서는 고졸자를 뽑더라 했습니다.
용역회사에 들어가서 큰 건물의 전기부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행복을 생각 해주어 할 위치의사람들이 과연 그럴까? 싶지요.
제 블로그에도 가끔식 나라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의 댓글을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냥 몸 담고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 작은 방에서는 일상에서 긍정으로 보고 싶다고 합니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잽싸게 적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고대광실에서 살아도 잠 자야 하고, 먹어야 하고 하니 그 문제는 기본이 제일인 것이니, 잽싸게 적응한다고,
호랑이에게 물려 가기만 하겠습니까?
옛날 우리 엄니 세대분들이 우리들 키울 때의 시절에는 도시살림에 식구는 많고, 자식들 눈을 뚫어야 했고, 콩나물도 못해 먹어서
콩나물국 끓여서 김치 한가지로도 먹고 살았습니다.
세상이 이러하면 각 가정의 엄마들이 제대로의 위치를 굳건하게 지켜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살기 마련이어서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어려워도 참아내고 살았던 옛 세대와는 달리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이내 쓰러지고 마는 우리의 자식들이 걱정이지요.
요즘 젊은이들의 스팩은 예전과 비교 불허입니다.
아는것도 지닌것도 많은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살아야 부모세대들도 편히 잠을 잡니다.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로 들어주신 조카분의 성공담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변하는 시대에 재빨리 적응해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수긍을 합니다.
또 그래야 하겠지요.
신자유주의는 공산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의 강력한 정부 개입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까닭에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합니다.
한국 사회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 체제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시시콜콜 기업에 간섭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로 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체제는 오늘날 성장과 분배의 문제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분배로 방향을 잡으면 위에서 보여진 달동네 구멍가게의 비극은 줄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장이 없는 분배는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해서 고민은 깊어만 갑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모두 굴러떨어질 것 같은 불안정한 생활 말이지요.
전쟁의 잿더미에서 이만큼 살게 되었으면 기적이나 다름없지만 그 기적같은 삶을 영위하기가 만만치 않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 하는 기업정책이 분배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기업이 돈을 벌어 쌓아두어도 그 낙수효과가 미미한 상태가 지금이라고 봅니다.
개인연금이나 기초연금이 너무도 부실한 마당에 분배에 기댈 언덕이 고집이 센데다가 국가도 통제하기 힘 든 상황으로내 몰리지나 않을까 그게 두렵습니다.
열무김치님은 정말 글재주가 대단하셔요.
글을 읽으면 푹 빠져 상상이 가게 만드시니...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대한미국 수도 서을
동네별로 삶의 퍼즐을 맞춰보라고 하면
대체 어떻게 맞춰질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열무김치님이 올려주신 글을 읽으면
내 어릴적 살던 시골 풍경이 떠오르지만
지금 서울의 어느 구석엔 저런곳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새로 도시화가 된 서초 강남 송파 를 제외하고는 전 구역이 다 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년말
제목이 쓸쓸하니 내용도 쓸쓸합니다
어떤차 였을까요?
년말
노부부의 구멍가게
연탄날로 위 보글보글 끓는 물 주전자
거무틱틱하다는 그 차 맛
16년에는 해 맑게 웃는 모습만
오고가는 안부로 창출 되기를 바라네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사람얼굴을 그려 나가듯이
글을 쓰시는 분들이 표현하는것도 똑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열무김치님께서 인물 한사람 한사람 표현하시면 그 사람이
어떤사람인지 인물이 살아나는군요.
표현해 나가는 과정을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읽는분들이 알고 싶어하고 그 사람을 보고싶어 하게 하는것이
글쓰는 사람의 솜씨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군요.
점방 아주머니도 만났고 ,또 점방안에도 들어갔다 온것처럼
생생하게 표현을 하십니다.그런 솜씨는 타고 나신것 같아요.
좋은 작품들을 이렇게 블로그에서 읽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며칠 안남은 2015년 잘지내시고,새해에도 좋은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격려의 말씀으로 듣고 블로그에서나마 열심히 써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블로그의 댓글들을 읽다보면 건성으로 쓴 글도 보이고 본문을 거의 읽어보지도 않고 눈대중으로 쓴 글도 보입니다.
늘 정성을 다해 댓글을 써 주셔서 용기를 얻곤 합니다.
다시한 번 감사를 드리고 새해에도 늘 좋은 이웃으로 남아 주시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푸른하늘님도 행복한 연말연시를 맞이 하십시요. [비밀댓글]
마포대로 가로수 밑 둥치에 시계수리 40년 경력, KBS MBC 출연 등 화려한 경력을 표시한 표지판이 연일 보입니다.
그 화려한 경력이 차가운 거리에서 너무나 쓸쓸해 고칠 만한 시계가 없는지 생각해보며 걸어가지만 그럴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무언가 억울한 느낌이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서글픔만 안겨 줍니다.
그렇게 다니시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미음이 시려옴을 느껴보네요
명암이 극명한 두 세상의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는듯 합니다~~
사람들 정서가 따라가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복고풍이 유행하고 그것을 또 상품화하여
이용하는 사람들
어쨋든 돌고돌면서 사람들은 살아가게 되네요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인데
버티고 있으면 아직은 한계라 아니라고~~
이시대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그냥 버티면서 살고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희망을 잃으면 우리사회가 희망이 없지 않겠습니까.
전국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푸른하늘님도 희망 전도사 입니다.
이웃집을 본것같은 푸근함과 짠함이 교차됩니다.
다시 태어나서 어린아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이도저도 모르는 우리 손주녀석마냥..
해는 듭니다만. 겨울이라 그런지 히뿌연한게 영 회색빛이 그렇습니다만.
그도 마음자락 탓이겟지요?
또 기운내서 하루 멋지게 시작해보렵니다
몇번을 이야기 하지만 열무김치.닉이 참 좋습니다 ^^
늘 좋은날 이시길 빕니다..
늘 느끼지만 꾸밈이 없으면서도 맛깔나게 글을 잘 쓰십니다.
참 멋지십니다. 일도 열심히 하시고 글도 열심히 쓰시고...
한번 꼭 만나뵙고 싶은 분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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