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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8월...어느 연인

by *열무김치 2014. 8. 24.

군대를 다녀와 몇년간 농사를 할때였다.

내가 살고있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후미진곳에 바솟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골이 제법 깊어서 고랭지 채소농사를 하는 농가가 몇 집 있었다.
그곳에  석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양반은 지금 성우리조트가 있는 둔내 우시장에 소를 팔거나 사러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양반이 어찌해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바솟골에 살게 됐는지는 몰라도, 동네 사람들에게 귀동냥 하기론, 상당한 애처가였던 그가 부인이 갑자기 암으로 사망하자 소장수도 그만두고 사람이 거의 살지않는 골짜기로 들어 갔다는것이다.
지금은 자두가 많이 나오지만 당시엔 자두 비슷한 꼬야 (고야) 라는 과일이 많았는데 7월에서 8월 중순까지 고야를 사기위해 그 골짜기에 가끔 들어갔다.
몇집 되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고야나무가 많아서 한자루씩 따오곤 했는데 고야나무의 크기로 보아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석씨가 살고있는 허름한 집 뒤란엔 커다란 고야나무가 열 댓 그루가 넘게 있었다.
나는 시큼한 고야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탓에 조금만 땄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자루 가득 따서 그걸 지고 오느라고 비지땀을 흘리기도 했다.
석씨에겐 아들 셋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 객지로 나가고 석씨 혼자서 귀신이 나올것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그해 가을 어릴때 교회학교에 같이 다니던 현동이가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는 나보다 두살이나 아래였지만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아서 얼른보면 내가 동생 같았다.
초등학교를 다닐무렵 그애는 동네에서 이십여리가 넘게 떨어져 있는 산골 분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매주 일요일이면 누나를 따라서 교회학교에 나왔다.
얼굴이 예쁘장한 그애 누나는 몸이 몹시 허약해 보였다.
손목이나 다리가 몹시도 가늘어서 옆에서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것 같았는데 현동이는 항상 누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교회를 나오려면 이십여리가 족히 넘었지만 살고있는 곳에 교회가 없었는지 일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현동이 손을 잡고 교회에 나왔다.
교회학교에 나오는 애들이 많지 않아서 처음엔 서먹 했지만 여름성경학교에 같이 다니면서  동네 아이들보다 더 친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 하면서 자연스레 그애와 멀어졌다.
그리고 오랜간 잊고 있었는데 그애가 불쑥 찾아온 것이다.
"오랫만이네. 반갑다 야. 이게 얼마 만이냐.얼굴이 별로 변하지 않았네."
나는 현동이를 와락 껴안았다.
"날 알아 보겠어?"
'그럼, 얼굴 그대로 있는데 뭐."
"그래, 그동안 어디서 살았어?"
"응, 부산에..넌 여기서 계속 산거야?"
"그동안 군대 갔다오고, 도시로 나갈까 했는데 여의치 못해서 농사짓고 살아. 장가도 갔고.
벌써 애가 둘이야."
"어른 다 됐네 .보기 좋은데. 나도 이사 올까봐.들어와서 소나 좀 키워 볼까 해서.."
"이사? 남들은 도시로 떠나는데 왜 산골로 들어오려고 해? 그리고 농사짓고 소 키우는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그냥 부산서 사는게 장래를 봐서도 더 나을거야."
"사정이 그렇게 됐어. 홀로되신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기도 하고.."
한참동안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던 나는 현동이 아버지가 석씨라는걸 알게 되었다.
"아니, 그럼 바솟골 사는 석씨 아저씨가 네 아버지야? 뜻밖이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초등학교 마치고 바로 나갔으니..이 근방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네가 여기 살고 있다고 하기에 찾아 온거야."
"이런 흉악한 산골에 뭐하러 오냐."
 
이사를 왔다는 소식을 듣고 현동이를 찾아 바솟골로 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방안 여기 저기엔 가전제품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냉장고 , TV, 밥솥..
아니 저걸 어디에 쓴담. 여긴 전기도 안 들어 오는데.
석씨 아저씨가 아랫목에 누워 있었다.
"많이 아프세요? 무척 마르셨네."
석씨 아저씨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 보았다.
"어떻게 여길 왔어?"
"예, 현동이랑 어려서 부터 알잖아요." 이사 왔다길레 와 봤어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세간살이를 치우던 현동이는 와주어 반갑다면서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주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아가씨가  외양간 근처 바위에 앉아 있는게 보였다.
"누구야?"
"응, 앞으로 같이 살사람."
"와이프?
아니, 나보고 왜 그렇게 빨리 장가를 갔느냐고 하더니?"
현동이는 싱긋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힐끔 힐끔 그여자가 있는곳을 훔쳐 보았지만 그녀는 꼼짝도 않고 앞산만 바라다 보고 앉아 있었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분위기가 무거워서 그럴 수 없었다.
가지고 간 휴지를 건네주고 그곳을 내려왔다.
내려 오면서 보니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다.
 
5일장이 열리는 날, 현동이가 찾아왔다.
"너 카메라 있다면서?"
"갑자기 카메라는 왜? 그거 어디서 들었어?"
결혼을 하면서 필림 카메라를 한대 마련 했는데 당시 카메라가 있는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격도 비쌌거니와  취미로 사진을 한다는것이 산골에서그리 녹녹한게 아니었다.
난 그 카메라로 시골구석 여기저기를 촬영 했는데 막상 현상을 하진 못했다.
살고있는곳이 워낙 산골인데다 원주까지 한나절 이상을 나와야 필림을 현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찍기만 하고 사진을 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 카메라 들고 우리집에 놀러와라.우리 수진씨도 좀 찍어주고."
"수진씨? 사진 찍어 달래?"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어떻튼 좀 올래?"
난 그녀석 부탁 보다는 수진이라는 여자가 궁금하여 얼른 그러겠다고 했다.
"아침 일찍 올라갈께 .맛있는거나 준비해 놔라."
 
 
 

 

 

                                                                           (사진출처) daum

 

 

 
아침을 먹기 급하게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섰다.
"아침부터 카메라 들고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아내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내밀었다.
"응. 그런데가 있어."
" 콩 꺾으러 가야 하는데 사진 찍으로 갈 시간이 어딨어요. 한가 하기는.."
난 바솟골로 줄달음을 쳤다.
아침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올라 가는데 웬 여자가 큰 가방을 들고 내려오는게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현동이네 집에서 본 그여자였다.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검은 외투를 입은 그녀는 나를 보고도 땅만 내려다 보고 걸었다.
얼핏 보이는 얼굴엔 눈물이 보였다.
"안녕 하세요. 아침부터 어디를..저 지금 거기로 가는데."
그러나 그녀는 들은체도 않고 내려갔다.
조금뒤 현동이가 헐레벌떡 뒤따라 내려왔다.
"어떻게 된거야. 수진씨는 어디 간대니?"
"야, 너 우선 집에 가있어 . 내가 금방 올라갈께."
현동이는 급하게 그여자를 따라갔다.
왜 저래?
 
석씨네 집으로 올라가 한나절을 기다렸지만 현동이는 오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해서 할 수 없이 내려 오는데 현동이와 그여자가 올라 오는게 보였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기다렸잖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현동이는 뒷머리만 끄적거리고 있었다.
"다시 올라가?"
난 곁눈질을 하면서 그녀를 바라다 보았다.
"갈 수 있으면 다시 가자."
그의 눈짓에 터덭터덜 다시 그를 따라 올라갔다.
때늦은 점심을 먹고 나는 두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만산홍엽의 늦가을은 온 산을 붉은 물감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좀 웃으시면 좋겠는데. 고개를 드시면 더 좋구요."
사진 촬영을 하면서 내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녀는 웃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고개도 들지 않았다.
현동이의 손을 잡고 마지못해 다니는 듯한 모습에 난 마음이 불편 했지만 현동이가 눈짓을 하는 바람에 모른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슬펐고 긴 생머리는 아직 소녀티를 벗지못한 고등학생 같았다.
뷰파인더에 들어 온 그녀의 쓸쓸한 모습은 늦가을 단풍과 함께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도시적인 , 아주 도시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멋지네요. 단풍과 아주 잘 어울리는데요."
어쩌다 긴 머리를 쓸어 올리는것 말고는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현동아,손 잡고 어깨에 이렇게 좀 기대봐.너무 뻣뻣 하잖아."
자꾸만 옆으로 비키는 그녀를 보고 손짓을 하자 그녀가 현동이에게 몸을 기댔다.
앳된 그녀의 모습과 현동이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설득해 독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멋져요.아주 아름답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손을 들어 보였지만 꼭 다문 입술과 웃음기 없는 그녀의 얼굴은 서서히 잎을 떨구어 가는 늦가을 풍경처럼 싸늘해 보였다.
현동이의 눈짓을 따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울해 보였고 늦가을 산은 그래서 더 쓸쓸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를 정비하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자갈 투성이인 좁은 도로는 비만 내렸다 하면 파여 나가서 여간 손질을 해도 금방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도로손질이라고 해봐야 삽과 괭이로 흙이나 퍼얹는 수준이어서 사실 크게 달라질것도 없었지만 하루 두차례 드나드는 완행버스 때문에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오리나 족히되는 도로정비를 마치고 내려 오는데 아래쪽에서 수진씨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미 늦은 오후라 어디를 간다는 건 그른 시간이었다.
옷차림이 유별한 그녀가 동네사람들 복판으로 지나가자 모두들 수근거리며 쳐다 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흠칫 하는가 싶더니 이내 모른체 하고 올라갔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빠른 걸음으로 내가 따라가자 그녀가 나를 한 번 보더니 더 빠른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기요. 잠깐만요."
내가 뛰어가 그녀의 가방을 붙잡았다.
그녀는 돌아다 보지도 않은채 마지못해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 가세요? 현동이는요?"
그녀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젠 어디 못가요. 버스도 끊어졌고.. 그만 집으로 가세요.제가 같이 가 드릴께요."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비쳤다.
내가 긴 한숨을 내쉬자 그녀가 오던길로 되돌아 내려갔다.
"가방 주세요."
가방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강제로 빼앗아 들고 몇 걸음 뒤에서 따라내려 갔다.
바솟골로 들어설 무렵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내리고 있었다.
" 힘드시지요? "
힐끗 바라다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 했다.
"저기요.."
그녀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네, 하고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현동씨 한테 부탁 하나만 해 주시면 안될까요?'
"어떤거요?"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음..그러지요 뭐. 어려운것도 아닌데. 내말이라면 들을거예요. 수진씨가 말해보지 않았나요?"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이곳이 그렇게 맞지 않은가요?"
"전 부산을 떠나 본 적이 거의 없어요. 무섭고, 가슴이 답답하고.. .전 이런곳인지 몰랐어요."
그녀는 얼굴을 감싸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보기엔 여리고 착한 여자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흉악한 산골짝에 도회지 여자가 와서 산다는 건 애시당초 글른 일이였다.
현동이 이놈, 앞 뒤 재보지도 않고 저런 여자를 데리고 불쑥 올라 오다니.
그녀를 데리고 바솟골에 도착하자 술에 잔뜩취한 현동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나와 그녀를 바라보던 현동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내려오지 않고 잠자코 서있자 현동이가 그녀를 방으로 들여 보내고 나를 따라 내려왔다.
"야, 웬만하면 부산으로 다시 가는게 어떠냐. 수진씨 가만보니 마음도 여리던데 이런곳에서 갑자기 살라면 살겠어?
니가 지는게 나을 거 같다."
현동이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네가 뭔데 가라 마라야.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 그런 얘기 하려면 빨리 꺼져 ."
술에 취한 녀석은 횡설수설 지꺼려댔다.
그를 부축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그녀가 밖으로 나와 현동이를 부축했지만 술에 취한 현동이는 그녀를 뿌리치고 휭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죄송 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채 어둠속에서 서 있었다.
녀석이 술이 취해 있는지라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있을 수 없었다.
생각과 다른 현동이의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저런 아가씨를 어떻게 만났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미친 놈이지.
 
내키진 않았지만 영 소식도 없고 하여 현상한 사진을 주기위해 다시 그곳을 찾았다.
사진을 보면서 왠지 그녀가 이곳에 살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다시 들었다.
사진속에서도 그녀는 아주 우울해 보였다.
현동이는 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석씨 아저씨는 건강 상태가 더욱 나빠져서 이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낮부터 무슨 술이야. 사진 빼가지고 왔는데. 수진씨가 사진을 잘 받네."
"사진이 무슨 소용이야."
"왜? 언젠 찍어 달라더니."
" 갔어."
"가긴 누가 가?" 
"사진속 주인공."
술을 마시던 현동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난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미 정해진 순서였어. 여길 데려오는게 아니였는데."
"언제 간거야?"
"며칠 됐어. 바람처럼 갔어."
"결혼식 한 거 아니였어?"
"식은 뭐..그냥 산거지. 아버지 돌아 가시면 생각해 보려 한건데."
"어떻게 만난 여자야?'
"그냥..부산 토박이야."
"그러기에 내가 말렸잖아 .여길 뭐하러 왔어.
 저런 가전제품은 뭐하러 가지고 왔어. 쓰지도 못하는데. 딱하긴."
"그래도 설마 했는데. 자꾸 울어서 그만 가라고 했어. 나 잘했지?"
"나이도 어려 보이던데..듣기 싫겠지만  너하고 어울리지 않는 아가씨 같다."
"강원도 올라 가자고 했을때 별 말이 없기에..."
"여기가 그냥 강원도냐? 부산 아가씨가 이런델 상상이나 했겠냐구.
넌 재주가 그거밖에 안되냐? 그냥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해."
현동이는 뒤로 벌렁 드러 누웠다.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지고 간 사진을 밥상위에 슬그머니 두고 집을 빠져 나왔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섣달 몹시 추울때 석씨아저씨가 돌아 가시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장례를 치른 얼마 후 현동이가 나를 찾아왔다.
다시 부산으로 간다면서.
전기밥솥과 가전제품 몇가지를 쓰라며 마루에 내려 놓았다.
"아주 가려고?"
"글쎄 .그렇게 될것 같아."
집은 어떻게 하고?"
"형이 알아서 하겠지."
"수진씨 다시 찾아 갈거지? 네가 그렇게 잊지 못할 여자라면 놓치지 마라."
"모르겠어."
현동이는 그렇게 쓸쓸하게 그곳을 떠났다.
 
 
그해 봄, 농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집으로 어떤 여자가 찾아왔다.
가만 보니 수진씨였다.
"아이고, 안녕 하세요.여길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녀는 밝은 봄옷을 입고 굽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머리를 말아 올려서인지 전혀 딴사람 같았다.
내가 반가운 얼굴을 하자 아내가 이상한 눈초리로 나와 그녀를 흘겨 보았다.
몸빼바지에 헐쯤한 윗옷을 걸친 아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녀와 비교가 되었는지 슬그머니 떨어져 앉았다.
"저...현동씨 소식 알고 있나요?"
"아니, 부산에서 만나지 않으셨나요?"
수진씨 내려가고 석씨 아저씨 돌아 가시고 바로 내려 갔는데."
그녀는 내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럼 현동이 이녀석이 찾아가지도 않았단 말인가요?"
"이곳에 살고 있을 줄 알았어요."
"그때 이후로  저한한테도 연락이 없었어요."
한참동안 마루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던 그녀가 일어나 대문앞을 나섰다.
"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모르고 여기까지 오신건가요?"
그녀는 잠깐 미소만 보였을 뿐 총총 걸음으로 시장 쪽으로 올라갔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떠나는그녀를 잡고서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야. 그여자? 세련되어 보이던데. 당신 찾아오는 여자도 다 있네. 골샌님인 줄 알았는데"
아내가 새촘한 모습으로 물었다.
"숨겨놨던 애인이다 왜. 속 시원하냐?"
 
밭을 갈기위해 소를 몰고 밭으로 올라갔다.
안개가 제법 끼어서 산허리로 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쟁기를 메고 힘겹게 가는데 집으로 찾아왔던 그녀가 내려 오는게 보였다.
바솟골에서 내려오는게 분명했다.
"안녕 하세요? 바솟골에서 오시나 봐요."
그녀는 목례를 가볍게 했다.
청색 머플러를 두르고 짙은 감색 옷을 걸친 그녀는 전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였다. 
"가시는 거예요?"
"네, 어제는 실례 했습니다."
"내려 가시면 현동이 찾아 보세요. 수진씨 가고 나서 무척 힘들어 했어요."
그녀는 웃으며 다시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난 어깨에 둘러 맨 쟁기의 무거움도 잊은채  그녀가 보이지 않을때 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택시를 하던 현동이가 교통 사고로 사망 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두 해가 지난 뒤였다.
바솟골에 고야를 얻으러 갔는데 현동이 형이 그집에 살고 있었다.
바솟골로 돌아와 채소농사를 하고있는 현동이 형은 석씨 아저씨가 살았던 그때처럼 홀로 살고 있었다.
 
 

아~~너무도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네요!!
시대가 맞지 않은건지
세월이 기다려 주지 않은건지~~
둘 다 맞지 않았습니다.
전기도 없던 그 골짜기..
지금은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인연들이 있는 세상이어서 실감나게 읽혔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역시 간단하지가 않다는 걸 실감합니다.
그건 그렇고, 열무김치님께는 어떻게 이런 실화들이 그리 많은지 감탄스럽습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말 만 들었을뿐 그여자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지금쯤 저처럼 폭싹 늙어 가겠지요.
지나간 추억속에 저를 기억 할런지 모르겠군요.
가슴 찡한 글...
아마도 수필 작가님이신가 봅니다. 글솜씨가 수준을 넘어 서신 것 같아서요.
하하...
수필 작가가 들으면 저 쫓겨 납니다.
블로그 문 닫으면 그렇게 된 줄 아십시요.
지금이라면 벽지 농촌도 문명 이기가 다 들어오고 길이 다 뚫려서 생이별할 그런 상황은 아닌데
80년대 이야기라 애잔하네요.
열무님 글은 묘사가 세밀하여 마치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연상됩니다 ㅎㅎ
그렇겠지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 절벽의 두메산골..
도를 닦는 사람도 살지 못했을것 같습니다.
ㄱ,래도 후일 저를 찾아와 친구 소식을 묻는걸 보니 친구를 사랑하긴 했나 봅니다.
글을 따라 바솟골로 오르내렸는데 이제보니 상상속의 그 곳이 결국 제 고향 뒷골로 연결 되었네요.ㅎㅎ
애초에 시골 출신인 나 같으면 전기도 수도도 없이 살았으니 눌러 살 수도 있었을테지만 도시 사람에겐 힘들었겠지요.
그래도 서로 좋은 사이라면 조금 더 참아보았으면 후회는 없었을 것인데...
우리동네 웅이 아제는 병든 몸으로 골짝에 혼자 살다가 서울댁을 맞아 지금껏 잘 살고 있는데
그들은 인연이 아니었나 봅니다.
헉~ 뒷골..
제 살던 동네도 뒷골이 있었는데..
하긴 뒷골이라는 이름이 아마도 동네마다 다 있었을것으로 보입니다.

병든 몸으로 살아도 서울댁이 그리도 잘 사는데..
말씀처럼 인연이 아니었지요.
정말 좋은 글!
윤사장님 글은 전부 실화이면서 참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잔한 느낌이, 해피엔딩이 거의 없거든요.
정선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데 뵐 날도 있겠지요.
좋은글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친구에겐 참 안된 글이지요.
당시 제가 살던 동네는 전기기 들어왔지만 그곳은 공사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몇 집 되지 않다보니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만일 전기만 들어 왔어도 그 두사람의 운명은 바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부산 아가씨가 참 앳되고 가녀리게 보였는데 그런 아가씨가 곰같은 녀석에게 다가온 걸 보면 남녀 관계는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생각엔 그가 그녀를 찾지 않은 이유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관계임을 안 까닭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이 참 짧더군요.
ㅎㅎㅎ 소나기처럼 안타까운 글입니다.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여려가지 추억도 많으시고 애뜻한 내용이기도 하고....
오지 산골마을의 생활상 이내요.
잘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제가 쓴 글이 모두 소나기에 비유되니 좀 당황 스럽습니다.

당시 산골은 그야말로 밥이나 겨우먹는 그런 생활이어서 보태고 빼고 할게 별로 없었지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 하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기사 전기가 들어왔다한들 두사람 사이의 차이를 느꼈다면
해로가 쉽지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고야는 '여주'가 아닌지요?
작년부터 주말농장에서 여주를 기르고 있는데 타지방에서는 고야라고 부른다는군요.
오이처럼 길게 생겼는데 표면이 우둘툴한 야채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20대 때 이야기군요.
위의 답글처럼 전기가 들어와있고 근처에 이웃이 있었더라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서 해봅니다.

제가 10대일 때, 세입자 중에 식을 올리지 않고 살던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정식으로 식을 올리기로 한 결혼식 전날에 야근을 하던 남자가 프레스 기계에 끼여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어찌나 슬피 울던지 지켜보던 저도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연극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주는 저도알고 있는데 자두 비슷한 과일을 제가 살았던곳에선 꼬야라고 불렀지요.
지방 사투리거나 그 지방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그 산골짝에 부산 아가씨를 데리고 온 친구가 제가 보기에도 야속하더군요.
남녀의 연분은 아무래도 인연이 닿아야 하나 봅니다.
휴가 잘 보내셨겠지요.
선생님은 기억력이 참 좋으시네요.
고야는 저의 동네도 많았습니다.
요즘이야 자두가 다 크지만 예전에는
고야가 자두보다는 작고 신맛이 강했지요.
저의 동네는 딸만 아홉을 둔 분이 계셨는데
그집 고야를 몰래 따먹곤 했지요.
선생님은 기억력이 참 좋으시네요.
어렸을 적 기억이 많으면 글 쓰기도 좋지요.
가슴 아릿한 이야기를 잘 풀어 내셨네요.
아마도 나중에 현동이를 찾아 온걸 보면은
그녀도 현동이를 사랑 했었나 봅니다.
현동의 사망소식이 가슴을 저리게 하네요.
부산에 가서 그녀를 찾았다면 또 다른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르는데요.
선생님 소설을 써 보셔도 좋을것 같네요.
제 기억력이 좋을리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쓴 일기를 쓴 덕분이지요.

말씀처럼 나중에 찾아온걸 보면 그녀가 친구를 잊지 못했던것 같은데 막상 찾아오니 그는 떠나는, 인연의 박자가 맞지 않더군요.
좋게 보니시 감사 합니다.
소설을 쓰셨습니다
인연이 아니어서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군요
도시에 살다가 전기불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라고 델꼬왔는지
결혼이라 하고 데리고 왔으면 그냥 주저 앉았을텐데
여인이 동현씨를 못 잊어서 찾아왔건만 이미 어긋난 길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형도 그 전철을 받는듯하여 안쓰러운 마음입니다
소설 한편 잘 읽었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왜 사는게 그리도 어수룩 했는지..
좋게보면 사람냄새 나게 산것이고 반대로 보면 답답하게 산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질과 형편에 기대지 않는 순수한 사랑만으로 남녀가 만나는 그런날이 앞으로 올까요?
시골에서 살다보면 간혹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얘기거리들인데..
열무김치님은 읽는사람이 빠져 들게 엮어내시는 재주가 있으신거 같아요.
글을 읽을때마다 어릴적 시골동네가 떠 오르고 그 동네에서 살던 이웃들을 다 기억하게 합니다.
딩동~
맞습니다. 시골 어디에나 있음직한 이야기.
가끔 그때 생각이 납니다.
두사람이 전기만 들어 왔어도 아들 딸 낳고 잘 살았을까 하는..
하지만 인연은 반드시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사람 인연은 거기까지 였던것 같습니다.
실화를 엮으셨지만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동안 쓰신 글을 한데 모아서 책을 내셔야겠어요.
군대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다 기억하고 계시기에 글이되고
그 내용을 잘 엮어 나가시니 훌륭한 글이 되네요.
감동입니다.
그냥 지난 일들에 살을 붙여 글을 썼습니다만 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남겨두고 싶었다는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요즘 지난 일기장을 읽어보는 버릇이 생겼네요.
일기를 읽으면서 여러 상상을 합니다.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것 역시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이런 글들이 책을 낼만한 자료들이 되려는지..자신이 없네요.
아 일기를 쓰셨군요.
그러셨구나.
읽기를 보시며 옛기억을 더듬으시니 아름다운 글이 나오시네요.

저는 남편이 처음 위암 수술을 할때부터 메모 식으로 매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기억이 나지 않다가 일기를 보며는 그랬구나 하지요.
나이드니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는데 일기장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네요...
단편소설을 읽은듯해요^^
감사 합니다.

맑은 주말입니다.
초가을과 함께 즐거운 휴일 되세요.
이야기를 조금 찡한 기분으로 읽으면서 인연이란 고리를 연상했습니다.
단편집을 출간하시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 합니다.
격려로 알고 더 좋은 글을 쓰도록 해 보겠습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서 추억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길에 환한 이정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진과 함게 올려놓으시는 글들에서 제가 즐거워지는 기분을 매번 겪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좋은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많이 남기세요.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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