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는 것
잘 못 놓으면 떼구르르 굴러갈것 같은 비탈밭에서 이웃집 할머니가 가을 그리움을 캔다.
"고구마가 잘 됐네요. 여기에 밭이 있었네요."
"밭이 있기는..내가 어거지로 일군거지.
적적하기도 해서. 그래도 고구마 싹 값은 했어 . 하도 가물어서 버릴 줄 알았는데."
하늘을 향해 누운 보랏빛이 눈이 부시다.
"혼자선 충분히 드시겠어요."
"뭔 애로 혼자 먹어.누가 찾아오면 이놈으로 마중은 해야지.
올 사람도 없지만.."
밭고랑에서 삭힌 세월이 기특하다.
"나같은 늘그니 누가 좋아해.
그래도 이놈은 대 여섯번 왔다 갔다 했다고 날 알아 주네.
대견하지."
**기다림
"사교 모임에 참석하는 성의 반의 반 만 해도 1년에 예닐곱번은 찾아 뵈었을거예요.
설 , 추석 말고는 그냥..."
장례를 끝내고 그녀는 섧게 울었다.
딴전을 보던 그녀의 오빠 내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 비슷 해요. 오빠만 그런게 아니고.."
"아들이 뭐라고 매년 가을마다 보따리 보따리 챙기고 기다렸는데, 다 소용 없는 일이지."
오랜 기다림과 짧은 만남
그러다 저세상 가면 정 없는 사람들은 그뿐이다.
그 세대들이 자꾸만 세월 끝으로 가버린다.
그리움 삭이며 기다리는 사람들
낙엽처럼 지기전에 그 기다림이 무디어 지지 않기를.
***아내
"늙어 쭈그러 지면 제일 마지막엔 미우니 고우니 마누라가 남아서 쳐다보고, 고약한 냄새가 나도 개 가 앉아서 날 바라보지. (벤저민 플랭클린)
역설적이지만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일 수록 고독해지기 쉽다고 한다.
남 여 나이가 7~80이 넘으면 그 여자가 그 여자고, 그 남자가 그 남자인, 외모와 정신이 동일선상에 놓인다는데.
특히 남자들은 먹을거나 잘 챙겨주고 자기 안요나 바라는, 거의 아이 수준이 되어 간다.
가을은 아내를 깨닫는 계절이다.
청순했던 여름날을 지나 생의 옷깃을 여미는 계절.
나보다 먼저 바람막이가 되는 사람..
아내다.
먹을거 달라고 떼 쓰는, 또 다른 아이가 되어가는 남자들을 달래는.
**** 문풍지
시월이 오면 여름내 발겨진 문종이를 걷어내고 풀을 먹인듯한 두툼한 한지로 방문을 발랐다.
저렇게 근사한 문양은 아니어도 문고리 안쪽과 바깥쪽으로 가을꽃을 덧대어 제법 운치를 살렸다.
국화, 맨드라미, 코스모스, 때로는 곱게 물 든 단풍잎을 넣기도 했다.
평소 무뚝뚝 하고 말씀이 없었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저런 감성이 숨어 있다니...
문고리를 잡을때마다 슬며시 미소짓게 만들었던 풍경
시월에 떠오르는 아릿한 기억 단편이다.
***** 얼굴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변해가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 하는건 어쩌면 슬픈 일이다.
외출을 하려다 손거울을 들고 한참이나 이리저리 얼굴을 비쳐보는 어머니를 보았다.
머리를 매만지시고 얼굴을 쓰다듬고...
아마도 거울속엔 당신 얼굴보다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가 외려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나이 들면서 아이의 얼굴이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움은 이에 대한 보답이다.
저 천진스러운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변덕스러울 뿐 자연의 법칙은 참으로 공평하다.
******단풍
태기산을 넘다가 만난 단풍
혼자 급한불을 피우고 제가슴을 녹인다.
아무도 오지않는 깊은 산골에 동그마니 집을 짓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있다.
왜냐고 묻는 사람이 바보다.
드러내지 못하는 사연은 누구나 있으니까.
내가 살았던 평창 어느 깊은 산골에 사진촬영을 간적이 있었다.
우연하게 들른 외딴 산골집엔 머리가 하얗게 센 여인이 홀로 살고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니 이유를 물었고 그바람에 차 한 잔 을 얻어 마셨다.
퇴직한 남편이 작은 사업에 손을 대면서 남은 재산이 다 없어질 상황이 되자 이러다가 돈과 사람을 같이 잃겠다는 판단에 무작정 이리로 들어 왔다고.
그러나 마지못해 들어온 남편은 이런저런 핑계로 밖으로 나다니더니 이젠 아예 따로 나가서 산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이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칠거라고 했다.
남편도 외로워 지면 결국엔 돌아 올거라고 하면서.
또 하나의 솔베이지송을 준비하는 그녀는 덩그렇게 타들어 가는 골짜기의 단풍을 혼자 맞고 혼자 보내고 있었다.
고산준령의 하늘, 골짜기를 배회하는 바람, 새, 다람쥐,고라니...
찾는이 없어도 가을이 들여준 붉은빛엔 우리도 모르는 관객이 있는것이다.
그러게요 자기 자식한테 하는 것 십분지 일만 부모님께 해도 잘하는거라지요
자식들 학습증진이라는 명목하에 여기저기 잘도 데리고 다니지만 부모님은 잘 모시고 다니질 않잖아요
참 늙는다는 것 가끔은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 50대는 ~ 아내의 곰국 끓이는 냄새가 날 때(곰국 먹고 달라지겠나).
* 60대는 ~ 해외여행을 가자고 할 때(떼어놓고 올까봐).
* 70대는 ~ 이사 간다고 할 때(가는 곳도 안 알려주고 놔두고 갈까봐).
어쨌든 두렵긴 하지만 벤자민 플랭크린의 말처럼 세 친구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니
이 또한 복받을 일이 아닐까 합니다.
면이나 빵 같은 걸 피하려 하니까 난데없이 감자, 고구마를 많이 찾는데, 그것도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말립니다. "그럼, 뭘 많이 먹어야 하지?" 하고 물으며 채소와 현미밥이라는 답을 스스로 생각해냅니다. 이야기가 딴 길로 왔습니다. 저 할머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눈이 시린 하늘빛을 한참 바라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효성 만들기'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리움 삭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외면해 놓고는
죽어서 저세상으로 간 뒤에는, 찾아간 '한두 시간'은 생생하게 남겨서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찾아가지 않은 '긴 긴 세월'은 잊어버려서
모두들 잘난 체하고, 모두들 효자처럼 나댑니다.
"그러다가 저세상 가면 정없는 사람들은 그뿐"
"그뿐"만도 아닐 것입니다. 박완서 씨의 어느 작품에서 "거짓말도 자꾸 하면 스스로 참말처럼 믿게 된다"는 글을 봤습니다.
메밀밭은 참 곱습니다.
이사 얘기를 하니까 생각납니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 아내에게 이사를 맡기고 저녁에 집을 찾아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 언덕님 저 글 보며 아찔하다는 느낌입니다.
채소 현미밥 많이 드세요.
저의 어머니 경우 채식을 주로 하시는데 역시 어르신들은 채식이 좋습니다.
아직도 시골 일부엔 초상이 나면 마을에 있는 상여를 써서 장례를 치르는데요.
이젠 거의 대부분이 장례식장으로 가서 삼일장 후 화장을 합니다.
전에는 그게 좀 어색 했는데 이젠 당연한 일이 되어서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요.
또 전국이 묘지로 덮인다는 우려도 있었듯이 시대에 따라 이도 변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해서 앞으로 수목장도 인기를 끌거 같군요.
이제 벌초를 할 후손도 자꾸 줄어들고 돌보는이 없다면 이 방법도 좋을것 같습니다.
시골에 남아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역시 외롭다는 말을 자주 하십니다.
일년에 한 두번 찾아가는 자식들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외려 기르는 개가 자식보다 더 가까울 수가 있지요.
모르지요.
몇억씩 나누어 줄 재산이나 있으면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 오려는지요.
어떻게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전해오는데 나쁜 건 가장 잘하는가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밖에서 식사를 했는데, 참석자 중에 공무원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동방예의지국이란 중국에서 나온 말인데 변방의 여러 나라(속국) 중 자기네들에게 조공을 제일 잘 바쳐서 그런 말을 해주었지 예의는 누구에게 무슨 예의를 지켰느냐?"는 취지의 말을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이건 차라리 추락 혹은 타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할머니 정말 대견해 하시겠어요.
역시 단풍이 화려하네요. 우리 나라엔 지금 단풍 산행이 한창이겠어요.
- ★ 미다스 kan7ry
- 2014.10.04 13:43 신고
- 수정/삭제 답글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삶이 멈춰버렸네요,.
어려서 문풍지를 바르면, 화사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것으로 장식은 했지만, 화려한 꽃은 안하더군요..
저희는 손가락에 침묻혀 문풍지 뚫은 기억이....(ㅎㅎ)(ㅎ)
한바탕 가을앓이를...
나이를 먹어도 가을앓이는 쉬지를 않는군요...
그리움.. 기다림...세월...
시월...애잔함을 느껴보는 계절입니다
여전히 젤 좋아하는 게절 가을이네요^^
즐거운 휴일 되시며
온 가족이 화목하세요
감사 하는 마음 전합니다 ~~~~~~**
노인들 관광팀을 인솔했는데 사진을 찍으라고 권하자
"내 곧 죽으면 애들이 태우느라고 고생할텐데 사진은 뭐하러 많이 찍어?"
안타까운 대화였습니다.
문풍지도 쉽게 찾아볼 수앖는 요즘인데
가을이 창가애 머물러 있네요...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듯 달라져보이는
요즘이 너무 좋은계절인거같아요^^
한주도 환하게 보내시구요~
고구마 캐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대적 흐름이 아닐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내보다 남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집 문풍지가 저리 아름다울까요
문득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ㅎㅎ 내 어린 시절보다 더 고운 문풍지입니다 ^^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것이지 먼저 죽고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순서가 바뀐들 딱히 달라질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산골에 가면 아직도 문종이로 문을 바르는 집이 남아 있더군요.
새로 건축을 하는 집은 일부러 한옥문을 다는집도 있구요.
좋은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글 기대 합니다.
옆지기이고
그마저도 결국은 혼자 남게 되겠지요
사람도 알고보면 참 외로운존재인가 봅니다.
단풍은 눈이 시리도록 예쁘고
고구마를 캐는 할머니의 모습은
눈이 시리도록 외로워 보이네요!!
그리움을 캐시는 할머님의 구부정한 등...제가 그리워하는 등이기도...
열무김치님...울 엄마께서 젤 맛있게 담그시는 김치가 열무김치인데...
아직은 얻어먹고 있어 행복하네요~ㅎ
아직도 열무김치를 잘 얻어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시골이 고향인가 봅니다.
올해는 모든 열매들이 풍년입니다.
산짐승들이 올겨울은 사정이 좀 낫겠어요.
좋은글 주셔서 감사 합니다.
시골출신이기도 하고 고향을 떠난지 오래지만, 기억속 고향은 가끔씩 저의 꿈속에 나타나
저의 삶에서 지치지 않는 그리움으로 자리잡고 있답니다..
어제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님과 장도 함께 담그고 불때서 시레기도 삶으면서 이런 저런 상념을 푸념해 보았답니다...그 전쟁이야기가 ..(ㅎ)
제마음은 언제나 저 파란가을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처럼 늘 나부낌니다요..(ㅎ)
그래서 ....
친정엄니께서 열무김치는 정말 잘 담그세요...물론 전 그 솜씨를 물려 받지는 않아서 덕분에 잘 얻어먹고 살고 있구요...(ㅎ)
풍년의 덕을 곳곳에서 다 누릴수 있다면 저도 참 기쁘겠어요(~)(~)(^^)*
바르시던 친정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맞아요 저희 엄니께서도 문고리
부분에 예쁜 들꽃이나 대나무잎을 한지로
덧 바르곤 하였지요..
시월 고운나날로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ㅎ
고구마 밭으로 달려가 한주로 담아오고 싶어지네요.
너무나 고구마 케고 싶은 맘 ............글 쓴후에 고구마 다시 보기 하렵니다
그럼 좀 주시려나 ㅎㅎㅎ 안녕하시죠.
올해 고구마 농사가 가뭄이 심해 별로였답니다.
다른 곡식들은 모두 잘 되었는데.
좋은 주말 맞으시구요.
찾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창호지로 문을 다시 바르는 일이었습니다.
단풍잎으로 문양을 넣으시고...
조모님을 일찍 저세상 보내시고 그자리에 손자릉 앉히셨지요. 늘 그립습니다.
분위기가 다 똑같네요.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지나가던 어느 장애인 소년이 일으켜 세우고 집까지 데려다 드리고
가끔 찾아와 할머니의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젊어서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이나 외롭게 하셨던 분들
아니 모든 남성분들이 정말 나이가 들어 갈수록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내야 할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주둥이로 떠벌리는 사람이나 교양이 없는 사람은
멀리하고 싶다라고 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누군가를 경멸을 한다면 누군가도 당신을 경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맘이 편치가 않네요.
문풍지 정말 멋지네요 .저 어렸을 적에도 가을이면 문종이를 새로 바르면서 꽃이나
대나무잎 낙엽등을 바르곤 했던 생각이 납니다.
편안한 날 되세요.
표현 할수 없이
마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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