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나면 늘 다니는 등산로가 있다.
온통 시멘트 바닥인 도심의 집 근처를 벗어나면 구불구불한 황톳길이 나오고, 그길에 들어서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들뜨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터벅터벅 좁은 흙길을 걷노라면 마음이 가라 앉으면서 단순해 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평안함이 어디서 오는걸까.
약 4km 에 이르는 등산로는 걷는 내내 심심하지 않은 풍경들을 내게 내민다.
그중에 봄에 만나는 진달래는 특별하다.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나는 토종 꽃이지만, 짧은 봄날에 연분홍으로 피어 우리들의 향수를 불러내다 소리없이 지는 꽃이다.몇송이를 보다가 무리로 피어나는걸 보면 느낌은 아주 달라진다.부드러운 나비의 날개짓 처럼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분홍 꽃잎이 나이들어 마른 장작개비처럼 굳어버린 딱딱한 가슴에 서정의 비수를 꽂는다.바람처럼 가버리는 봄날에 만나는 지나버린 첫사랑 같은 연인이다.누가 이런 마음을 가져다 줄것인가.
그러나 올해는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할것 같다.동계올림픽이 확정 되면서 영동고속도로 확장사업이 한창인데,마침 진달래 운무가 봄날을 구가하던 자리로 터널이 뚫리게 된것이다.공사가 진행 되면서 등산로는 폐쇠되어 멀찌감치 우회하게 되었고, 꽤나 오랜세월 몸집을 키우던 진달래 나무들은 최후를 맞았다.모조리 파헤쳐진 야산이 흉물스레 입을 벌리고 분주하게 중장비들이 돌아 다니며 굉음을 내고 있었다.이제 이 근처를 지나면서 꽃의 손짓이나 산새가 들려주는 작은 오케스트라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대신 바람처럼 지나가는 자동차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빌어 봐야지.
가까이서 늘 바라보던 것들이 사라지는게 한편 서운하다.사람이나 동식물도 한창인 때가 있고 떠날때가 있으니 그런 눈으로 보면 이는 자연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자꾸 마음 둘곳이 없어져 간다.변하는게 정상임에도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가슴으로 받아 들이기 힘들다.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들 마음이 닫혀 간다는걸 겉으로 드러내기 어렵다.모두들 모르는체 살다가, 주변에 내 이웃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 하거나 고독사를 해야 표면으로 드러난 인심을 탓한다.그리곤 자신이 마음을 닫고 살았다는걸 느낀다.모든게 변해야 정상인것일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내려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도, 이제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청춘들도, 산업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역군들도 가끔은 혼자서 자신을 삭일 공간 말이다.
우리는 미래를 일구어 간다는 구실로 우리들이 숨어 들어가 숨 쉴 공간을 너무 많이 없애 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스스로 고독하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말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도 숨 쉴 공간이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지요.
- ★ 미다스 kan7ry
- 2014.03.06 19: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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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글 읽고 갑니다. 글을 읽으면 사람이 보이고, 가볍지 않음을 , 열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자주 그 글을 읽어 가는 듯 합니다.
저에게 선물로 주셨지요...
거실과 테라스를 오가며 정성들여 키웄더니
봄마다 진달래가 예쁘게 피더군요
넘 기쁘고 좋아서 팔짝 팔짝 뛰기도했지요...ㅎ
몇년 그렇게 키우다 그만 실수로 보냈네요...
어찌나 안타깝던지 진달래를 참 좋아하고
보면 넘 좋으면서도 한편 맘이 늘 애리기도 하답니다
봄날의 사정을 한껏 느끼시면서
거니시던 등산로가 패쇄되고...
봄이면 피어나는 연분홍 진달래의
애련한 어여쁨도 느끼지못하게 되셨네요...
그리되는 까닭이 분명함인데도...
그러네요...봄날 유감이네요...
봄날의 이생각 저생각읋 해보며 다녀갑니다^^
깜짝깜짝 놀랄때가 많습니다
더 많을 관광객들을 유치하기위한
개발이라지만 안타까움에 걱정이었는데~~~
평창올림픽을 찬성 하면서도
이런 아쉬움이 있군요
늘 다니던 등산로가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자취를 잃어 버리게 되었군요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무던히도 속상한 일들이 하도 많아서요~~
가능하다면 자연을 덜 훼손하면서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안타가운 심정으로 읽어 봅니다
산새와 물소리가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을수 없게 되었는데도
우리의 삶은 이런 모든것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네요.
윤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는 밭은 동계올림픽으로 인해서 좋아지는 곳이 있는지요?
머지않아 필 진달래를 기다립니다.
그나마 윗부분이 훼손되진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대신 봄마다 화사하게 피어나던 진달래는 이제 볼수없게 됐네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오랜세얼 이길을 다니던 사람들에겐 커다란 상실 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곳은 제가 살던곳과 거리가 먼 편입니다.
어떤 기대심리는 있을지 몰라도 부동산적인 면이나 교통편으로 크게 달라질것도 없고 또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미 근처는 서울사람들이 상당수 사 놓은거라 지역민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그러나 동계 올림픽과 부동산이 앞으로 무슨 관계가 될런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자칫 피해가 날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도시의 개발로 소싯적 제 고향이나 유년시절을 보내던 공간이 모두 사라졌으니까요.
우리도 이젠 개발 일변도가 아니라 환경과 어울리는 그런 방식을 찾아야만 합니다.
- 청청수 -
저는 삶 자체에 지쳐 있었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많이 찾았다면 저의 어떤 면 때문인지는 지금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찾는 사람들만 해도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해서 스스로 찾아나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학생들은 단 한 명도 사귀지 못하고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나는 날, 그 역에 진달래빛 투피스를 새로 맞춰 입은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고왔습니다.
그런데도 한 번인가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만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잊고 살진 않았습니다. 때로, 얼굴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 고운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배움으로 인해 포기하는것이 많으셨던것 같습니다.
잃는게 있으면 얻는것도 있으니 사실 억울할건 없습니다.
그러나 아쉽고 허전헌건 사실입니다.
봄날의 유감 좋은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토요일에 일년여만에 야외로 나가서
냉이며 씀바귀 지칭게를 캐왔습니다.
요즘은 자주 느끼게 되는게 시골이나 도시나
별반 다른게 없다고 느껴질정도로 오히려
시골도 무분별한 개발이 많고 도회지 사람들도
많이 오고 가지요.
머지 않아서 봄이 오겠지요.
늘 건강 하세요.
- pathfinder
- 2014.03.11 04:56 신고
- 수정/삭제 답글
그래도 어딘가에는 개발의 발이 닿지 않은 그런곳들이 있으니
위안으로 삼아야겠지요
오늘 하루속에 기쁨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비교적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저도
요즘의 변화가 아쉬운 적이 많습니다.
아무리 긍정을 하려해도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시간이 갈수록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제가 사는 이곳도 수질오염으로 이제 단 한군데만 약수터가 남았고 그마저 폐쇠되면 아무곳에도 갈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다니던 등산로도 자꾸만 범위가 줄어 듭니다.
휴일날이 되어도 마땅하게 나설곳이 없다면 이는 참 슬픈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납니다.
할수 없지요.
개발이 먹고 사는일과 연관이 깊으니..
저곳에도, 오늘은 촉촉하게 봄비가 스며들겠군요
이렇듯 정겨운 풍경들이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음 아려 오지요, 특히나 정들었던 산책길이
잘려 나간다니, 이제는 그 풍경들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선생님!
절절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머물러 갑니다
봄비 촉촉하게 젖어드는 오후
따끈한 차 한잔 즐기시며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선생님!
배우는데전부 노인들이라 정말 웃긴답니다.
거기서도 제가 제일 고령이구요.
말귀를 못알아 들으니 선생님들 속이 터질거예요.
학생 20명에 선생님 4분이 가르치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요.
저는 컴을 했기에 조금 알아듣을수가 있어요.
무릎이 아파서 요즘 무릎에 주사를 맞으며 약을 먹고있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3번을 맞아야한답니다.
의사는 수술을 하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절대로 수술은 하지 말라고하네요.
견딜만큼 견뎌볼 작정입니다.
한참 넉두리를 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비밀댓글]
세월 참 빠른 듯 하지만
어제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렇듯 계절도 가끔가다가 말썽을 부리는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애면글면 살다가 피우는 곷이
향기가 더 좋자도 그러던가요~~~
봄이 오는 길을 확실하게 보여준 춘설 사이로 안부 놓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자연경관을 해치는 대신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거듭했지만 여기저기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산야.
동계올림픽을 보면서도 뒷면을 보지
못할뻔 했군요.
진달래가 떠오르겠어요...
추억속으로 사라져간 것들이 참 많기도 하지요
섭섭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오히려 잘 된 일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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