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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무제

by *열무김치 2013. 11. 21.

뭐야...김 빠지게..

아니나 다를까 공장장은 한창 열을 올리던 관광 디스코 메들리를 끄기 무섭게  능수버들 늘어지는 곡을 틀었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듸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뭐예요. 지금이 봄인데 무슨 황금 물결이야.. 그놈의 가을잎 타령은.."

부공장장이  마이크를 빼앗아 다시 디스코 메들리를 틀었다.

"아니, 왜그래..남 노래 하는데 이사람이 진짜.."

"분위기란게 있잖아요. 왜 방해를 해요."

술김에 그러려니 했지만 이내 고성이 오가고 멱살놀음으로 이어졌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마시던 술병들이 깨지면서 누가 다쳤는지 피가 여기저기 묻었다.

간부진들이 뜯어 말렸지만  이미 감정이 격해진터라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야 , 임마. 그래도 내가 공장장이야. 네가 그렇게 빽이 쎄냐?"

 

1994년.

작은 회사에 부서에도 없는 부공장장이란 직함을 달고 그양반이 내려오면서부터  회사 분위기는 늘 찬바람이 돌았다.

대리 진급을 한 나는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여간 거북한게 아니었다.

부공장장은 공장장이 지시한 내용을 본사를 핑계로 대며 번복하기 일쑤였고 내 위의 과장은 틈만 나면 두사람을 씹어댔다.

"빨리 관둬야지 .더러워서.."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내려온 부공장장은 회사 대표의 형이라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부공장장이란 직함을  준것도 사무실 직원들에겐 떨떠름 했고,  엄연히 공장장이 있는데 그는 마치 자기가 공장장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지시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 누구 장단에 춤을 추라는거야. 빌어먹을.."

김과장은 나만 만나면 욕지거리를 하며 입을 내밀었다.

곧 그가 공장장이 될거라는 소문이 나는지라 회사 직원들은 공장장 보다 그의 눈치를 더 살폈다.

공장장이 처음 내려 왔을때 모든 직원들은 좋아라 했다.

무슨 큰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있었다는데  첫 인상이 참 좋았고  업무력도 뛰어나서 회사 일감도 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사실 그보다는 그의 친화력이었다.

비록 열악한 회사였지만 직원들의 생일 파티를 마련해 축하해 주고, 남보다 더 열심히 일 한 사원들에게 포상 휴가나 격려금을 주는등의 변화는 공장장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그 믿음은 일감이 폭주해 야근을 자주하는 일이 생겼음에도 사원들의 불평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신록이 피어나는 5월에 전 직원이 버스를 타고 단합대회를 나섰다.

모두들 신이 났고 늦은 오후까지 술판과 노래판이 이어졌다.

노래 한마디 해 보라는 권유에 공장장이 나섰는데, 술이 얼근한 공장장이 한창 달구어진 춤판에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이란 노래를 꺼내 들었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래도 공장장이 부르는 노랜데 누가 감히 태클을 걸까.

모두들 1절도 아닌 2절까지 인내하며 들었다.

"옴마...공장장님 분위기 있으셔 .최고 최고...역시 우리들과는 다르다니깐요."

얼굴이 벌개진 아줌씨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박수를 치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때 까지는 참 좋았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모임과 회식자리에 노래방에 갈 일이 자주 생겼는데 ...

문제는 머리가 갸웃 해 질 정도로 공장장의 노래는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  한 곡 이었다.

"공장장님 다른 노래도 좀 불러 주세요."

아줌마들이 강권을 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공장장은 절대로 다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 오면서 참 괴상한 양반이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어느날 그 이유를 물어 볼 기회가 생겼다.

그양반이 주말에 서울로 가서 휴일을 보내고  월요일 일찍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오면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왕 가는거 같이 가자면서.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가끔씩 기름값 하라며 쥐여주는 재미에 난 월요일마다 공장장을 태우고 출근을 했다.

"공장장님 , 직원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다른 노래로 좀 바꿔 보세요."

눈치를 보며 웃으며 말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공장장은 아까와는 달리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회사 대표가 공장 신축 문제로 꽤 많은 간부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대표라고는 하지만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서 요즘 말하는 그룹의 재벌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장 규모가 작아 수출물건을 만드는데 기계와 일손이 달리자 운동장 복판에 건물을 짓는 공사를 벌렸는데 회사 대표가 그를 구실로 전에 없던 방문을 여러차례 했다.

대표가 내려 온다고 사원들은 업무를 끝내고도  밤이 이슥하도록  청소를 하고 정리를 했다.

높은 사람이 온다고만 하면 군대나 사회나 이놈의 요란법석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대표가 내려오면 사무실 직원들은 바짝 얼어서 종일 서 있었다.

그날 오후, 대표는 사무실 직원들과 저녁을 끝낸후 맥주로 입가심을 하자면서 호프집에 들렀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예정에도 없던 노래방에 들르게 되었다.

모처럼 대표가 참석 한데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은근히 잘 보이려고 직원들이 아부성 발언과 함께 평소 보이지 않던 기묘한 자세로 노래를 불렀다.

"오..김과장 그렇게  안봤는데 보통이 아니네. 아니, 일 안하고 노래만 부른거 아니야?"

듣기엔 별 볼일 없는 노랜데도 서로 치켜 세우기에 바빴다.

뻘쭘하게 앉아있던 부공장장이 나서더니 베사메무쵸 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제꼈다.

공장장과 같이 앉아있는 분위기가 영 어색했는데 그가 노래를 부르고 막춤을 추자 분위가 달아 올랐다.

그바람에 눈치만 슬슬 보던 직원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다리를 꼬아대자 점잖게 앉아있던 대표도 직원들의 권유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하지만 대표가 부른 노래는 생긴 외양과는 달리 막가파 수준이었다.

김과장이 폼나게 한 곡을 뽑은 뒤 그만 두었으면 좋으련만 결국 공장장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가만보니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같은 눈치였다.

설마하니 이번엔 다른 노래를 하겠지.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고 아니나 다를까 일편단심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이 흘러 나왔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위엔 어느새 황금물결....

차라리 음색이 서글프면 그맛에 넘어 가겠는데 이건 그게 아니었다.

갓 쓰고 고무신 신고 자전거 타는 모습이랄까..

좌우간 아주 희한한 음정과 박자였다.

모두들 공장장을 멀거니 바라다 보았다.

............

"좋아요..좋아..가을은 아니지만 분위기 있네요"

대표가 박수를 치자 모두들 안도하는 분위기로 같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일은 대표가 돌아간 뒤 3차로 잡은 맥주집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

내려올때 부터 감정이 좋지 않았던 공장장과 부공장장은 분위기를 깼느니 어쨌느니  티격태격 하더니 결국은 주먹이 오가는 싸움으로 번졌다.

이미 지긋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험한꼴이 벌어지자 공장장이 작심 한듯이 말했다.

"야 임마, 네가 대표 형이면 형이지  엄연히 이 공장의 대표는 나야.

네가 뭔데 사사건건 감 놔라 배 놔라야. 짜식이, 넌 위 아래도 모르냐?  낙하산 주제에  뭘 깝쳐 .남의 덕이나 보는 무능력한 놈이..

내가 그런 노래를 부르건 말건 네놈이 보태준거 있어?"

"뭐야? 니가 무슨 대기업의 연구직으로 있던 놈이야..촌구석 공장으로 좌천된 놈이.."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은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공장장은 보따리를 쌌다.

내려온지 1년을 겨우 넘기면서였다.

공장을 떠나던 날, 공장장은 무슨 까닭인지 나를 불러 터미널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부공장장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던 나는 김과장에게 눈짓을 하고는 공장장 짐을 챙겨 승용차에 실었다.

사무실 직원들과 생산직 사원들이 근무시간임에도 경비실로 배웅을 나왔다.

부공장장은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 중에는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공장장은 일일이 악수를 하고 차에 올랐는데 백밀러로 보니 부공장장이 한쪽 귀퉁이에서 물끄러미 바라다 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거..내가 터미날 갔다오면 쥐랄 하는거 아니여?

마음이 부대꼈지만 할 수 없었다.

공장이 멀어 지면서 공장장은 눈을 감은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물어보고 싶은말이 목전까지 올라 왔지만 말을 꺼내기엔 침묵이 너무 무거웠다.

아까운 사람이 밀려 나는구나 싶은 마음 뿐이었다.

터미널에서 짐을 부린 뒤 공장장은 내손을 잡으며 말했다.

"힘이 있어야 돼. 윤대리도 잘 하라구. 그동안 고마웠고."

총총이 버스에 오르는 그를 보며 무어라 표현하지 못할 답답함이 밀려왔다.

 

"공장장 동생이 대학교때 사고로 죽었대지 아마..

그래서 그양반 그 노래만 불렀나?

빽이 좋기는 좋네.저런 허접대기가 공장장 차지하는거 보면.."

캔 뚜껑을 덮는데 별다른 솜씨를 보이던 전씨 아줌마가 떠드는 소리를 들은건 공장장이 떠난 후 며칠 뒤였다.

 

 

 

 

 

 

 

 

 

뛰고 날라 보아도 종착역엔 모두가 같은 유니폼인데
어이 그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요. 니마음 내마음 되어 살면 궂은 날도 즐거울 것을...
그렇군요.
그런데 모두 가버린뒤에야 알아서 그게 탈이긴 합니다.
아 공장장 떠나는것이 마음이 아프네요!!
이것은 힘도 아니고 완전 핏줄이네요!!
그것이 힘인가~~웬지 서글퍼지는데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ㅎㅎ
날이갈수록...
그노래만 부르던 공장장님~~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꼬~~^^*
반가워요.
당시 나이가 꽤 있었으니 지금쯤 호호백발 노인이 되었겠는데요.
슬픈 사연이 있으셨네요
그래서 십팔번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부르는 노래대로 가수도 그리 된다하고
사람도 노래를 밝은 노래를 불러야 일이 지대로 잘 풀린다는
우습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릴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하하..
우연의 일치지만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이상하지요. 그렇게 날아들어온 사람이면 자중하는 게 일반적인데
실은 그런 부류들이 더욱 설치고 날르지요. 세상 사람들 정말 희한합니다.

그런데 분위기 있는 글을 읽어내려오다가
갑자기 견공이 "띠바"하는 걸 보고서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냥...그 때 그분의 떠남이 사진같지 않았을까..
ㅎㅎ~
차에 실려 아주 이사를 가버리는 견공도 굴러온 돌에 찍혀 나가는 모양입니다 ^^*
세상이 학연 지연이 아니면 인재도 등용되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나봅니다 ㅜㅜ
글 참 재미있게 쓰시네요 ㅎ
그래도 저 개 주인은 아주 의리있는 사람 같은데요.
개 집까지 싣고 가는걸 보니..
학연 지연은 여간해서 버리기 힘든 문제라고 봅니다.
정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것 같네요.
인생의 희비곡선이 느끼는 글입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잘지내고 게신지요.
항상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세잎클로버님이랑 언제 얼굴한번 뵈야지요?
한번 만나야지요.
그럴 계기를 찾아 보아야겠습니다.
한 편의 잘 쓴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세상살이는 어디서나 불합리함이 양념처럼 스며들어 있군요.
감사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정이 많잖아요.
가끔은 이게 배신을 할때가 많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는 내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임을
다시금 실감나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맥을을 총동원하여 줄서기를 거듭 하느가 봅니다
세상 참 가짢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습니다ㅓ, 선생님!
아마도 이 문제는 기차 레일처럼 서로 만나지 못할것 같습니다.
남자들의 사회생활이 힘들지요.
회사에서 이눈치 저눈치 보면서 살아간다는것....
집에 들어온 남편을 편히 쉬게 해주는 부인이 있다는것은 행복.
요즘은 여자들이 더 힘들다고 반대로 남자들이 편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남자들 장가 가는것도 전보다 훨씬 힘이 드니 농담은 아닌것 같습니다.
직장의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시대가 있었지 않나합니다
빽이면 다 되었던 시대 그래서 슬프게 떠나야만 했던 시대
지금도 그렇겠지만 전과는 다르게 변했을리라 봅니다
관부가 아니더라도 직장 동료끼리도 사소한 감정가지고 많이 싸우지 않았나합니다
좋은 공장장님이 떠나는 순간 직원들은 사기가 떨어졌겠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딱히 팔이 안으로 굽는건 변함이 없지 싶네요.
아무래도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두고싶은 사람들 심리는 같을테니까요.
참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실감나는 글맛에 덩달아 좋아졌다가 슬퍼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직장생활의 고통을 잘 알지는 못하나
적어도 채근하고 종알대지는 않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끝에 남은 여운이 슬픔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네..지금까지 지켜본 클로버님의 성향으로는 그러고도 남음이 있을것 같습니다.
당시 그 경험을 한 뒤 제 생각도 변화를 겪은것 같습니다.
경제 사회에서 이런 일들은 보편적인 일임에도 사람들 마음은 그게 불합리 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그 위치에 가면 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정치에도 같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 않을까요.
그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텐데요.
이거 '실화'입니까, 콩트입니까?
실화라면?
설마, 윤대리님께서 다니는 회사?
아, 정말...
어쨌든 재미있습니다.
오래전 직장생활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통폐합되어 회사가 가버렸지만 상당기간 제가 몸 담고 있었지요.
아하! 그렇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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