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부터 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직접 할 수 없어서 사람을 쓰고 있지만 나무를 베어 내면서 감회가 새롭다.
벌써 40년이 훌쩍 지나갔기 때문이다.
저 나무를 식목할때가 1974년~75년 이었다.
당시 국가의 치산녹화 사업에 편승하여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지만 당시로서는 후일 내 생전에 나무를 베어 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비교적 잘 자라는 낙엽송을 심었지만 세월이 흘러 막상 나무를 베고나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마치 영화의 필림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40년은 분명 간단한 세월이 아니지만 따스한 양지쪽에 앉아 졸면서 스친 봄날의 꿈 같다.
나무를 심고, 잡목을 베어내고, 제초작업에 비료주기, 가지치기등의 순서를 거치기는 했지만 사는일에 바빠 허둥대는동안 수없이 지나간 계절과 햇볕, 하늘,계곡을 배회하는 바람 , 이름모를 산새들과 짐승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나이테 수 를 늘려나간 나무들.
저 나무들은 그냥 목재가 아닌 산속의 이야기들을 담은 전설이다.
잘려진 저 나무에 다래끼에 어린묘목을 담고 산비탈을 헤메던 그날이 아직도 선연하고, 양갈래 머리 길게 땋고 욕심없는 미소로 열심히 나무를 심던 산골아가씨가 오버랩 된다.
세월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지만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수많은 시간들이 축적되어 물리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나무가 그 표상이 아닐까.
그러나 긴 세월을 보상할 만큼의 수익은 나지 않는다.
인건비며 운송비등이 많이 올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나무는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맑은 공기와 쉼 을 제공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그 이상의 대상이다.
나는 나무를 심은 게 아니라 맑은 자연을 심어 키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고야...
이렇게 잘난 척, 고상하게 허세를 부린다고 해도 얼굴이 두껍지 않음은 40년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며 자라준 저 나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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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이 담담하게 읽어가던 제게 급반전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전설은 만들어지고 또 지워지고... 통속하나 봅니다.
저희 목장에 나무도 오리나무 물오리 나무 아카시아 를 조림용으로 속성수를 심어 50년이상 되었지요
속성수가 푸르름으로 빨리 치산녹화는 되엇지만 수종갱신을 하디 해야 할듯 싶은데
인건비가 무서워 엄두를 못냅니다.
34년전에 초지조성 허가받고 겁두없시 나무베어내고 풀심은게 이곳에 살기위한 시작 이엇지요
나무를 베어낸 모습을 보니 그시절이 생각 납니다.
옛날 지리산 자락에도 니키타송을 많이 심어놓아서 산을 베렸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몇백년 묵은 적송이 목재로 잘 쓰이지만 울창한 산림만을 위해 니키타송을 심은건 영 달갑지 않다 하셨거든요.
어린 기억에 박힌 소나무의 기억은 친자 구별하듯이 좋은 소나무 나쁜 소나무로 구분하는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글속의 내용을 옳게 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잡설한번 늘어 놓았습니다.
70년대에도 일본에서 건너온 리키타소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지금 남아있는 나무들이 많지 않은걸로 압니다.
우리나라 적송은 나무의 결이나 쓰임새가 좋지요.
다만 자람이 더디고 병충해에 약해서 방제를 했음에도 한때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현재 강원도 깊은 내륙이 아니면 거목을 만나기 힘이 들지요.
적송은 소나무의 겉 부분에 붉은빛이 강하게 돌아서 쉽게 구분이 갑니다.
잘 보존을 해야 하는데 면적이 갈수록 줄어드는군요.
좋은 소나무는 몸이 곧고 결이 좋으며 몸에 붉은빛이 도는 적송이 최고지만 미적인 시선은 곧은 나무보다는 가지가 우람하고 유선형이며 뒤틀리거나 기형적으로 자란것을 더 알아주니 사람 마음은 참 알 수 없습니다.
정말 열무김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네요. 이곳에 올 때마다 감탄하고 갑니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또한번 합니다. 나무를 꽤 많이 심으셨던 것 같아요.
나무를 베어내서 처리하는 일도 보통일이 아닐거 같습니다.
하시는 일이 저렇게 많은데 어쩌면 블로그도 이렇게 부지런히 잘 하시는지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가을이면 황금색에 물들었던 풍경들 ....
베어내고
훗날 저 자리에 뭘 하시려구요?
공장이 들어서고
아스팔트가 늘어지고
그런 개발지역 되려나 보죠?
현기증 나네요..
아무래도 수입이 더 손쉽다보니 그리됐나 보네요
사십년의 결실이 풍요롭습니다
자연이 팔할을 키웠다해도 이할은 돌본 사람의 공이겠지요
나무가 곧게 자라서 쓰임새가 많겠어요
라 하시는 말씀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정말로 장해서 장하시다라 박수 칩니다. 제 맘이 그렇습니다.
낙엽송은 원래 저렇게 반듯 반듯하게 자랍니까?
아이들 그릅 다리 길쭉하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춤을 추는 것이 참 보기 좋던데, 아마도 저렇게 반듯 반듯하게 나무가 자란
숲으로 들어 가셨을 때, 열무김치님께서는 저 나무들의 율동도 이야기도 다 보고 들으시는 감각이 있으시지 싶습니다.
경제적으로도 40년 세월이 보상이 충분한 결과 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요.
속성수에 속하는 나무니 많이들 심습니다.
긴 세월에 비하면 경제적 가치는 좀 그렇습니다만 어찌됐든 맑은 공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런일도 나눔이라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과거 헐벗었던 우리나라 산림을 생각하면 지금 많이 푸르러 졌지요.
날로 심해가는 미세먼지등의 환경공해를 생각하면 나무는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모두의 귀중한 자원인데 우리들은 그런것에 무감각 하거나 잘 모릅니다.
앞으로 숲의 가치는 더 소중해 질것인데 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강원도 영월 쪽에서 강을에서 기상이 늠늠한 소나무를 보았고, 강릉에서도 보았습니다.
나무이지만, 경외심이 일어 납니다.
블로그에서 본 것이지만, 낙엽송 숲의 단풍이 노란 색으로 고왔습니다.
저희 세대는 시골에서 초등학생인 때 나무 심으러 동원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도 부산이어도 나무 심기고,
송충이 잡기에도 동원 되었습니다.
들판의 모가 녹색으로 자란 풍경을, 볼 때, 숲을 볼 때 그 자연들에게 감사한 맘을 갖게 됩니다.
정말로 숲의 가치가 맑은 물의 가치가 희귀해져서 그 가치를 알게 되기 전에 우리들이 알아야 할터인데요.
40년이상 키우던 낙엽송을 베어내는 기분이
애지중지 키웠던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맴 같을거라
생각든다. 가끔 고향에서 나무심었던 얘기하더니 그나무네. 낙엽송은 어린시절 늘 보아왔던 나무라 왠지 정감이 간단다. 아묻튼 그곳에 좋은 묘목을 심어 후손에게 물려주길 기대해본다.
내년 쯤 다시 나무를 심을것인데 이제 그 열매는 후손들이 보겠지.
아니, 후손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누린다고 보면 되겠지.
숲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우신 김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경제적으로는 그리 좋지는 않군요
수입목이 더 좋으니까요.
나무값이 아무리 싸더라도 경제적인 이득을 생각하지 말고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숲이 없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우리생활은 단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겁니다.
우리 세대로서는 생애의 가장 활발한, 뭐랄까 핵심이 되는 기간을 차지하는 세월이었으니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고,
저 같아도 저렇게 베어져 나가는 나무를 보면 허전하고 눈물겨울 것 같습니다.
정책이 좀 장기적이면 이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여유로운 관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습니다.
파종 묘목 나무
아 ~ 60년대 후반 조합에서는 논 밭을 임대로 얻어 파종을 하고 어린묘목을 심어 길러서 사월이면 산에 산에 나무를 심는일이 참 많았는데요
그 당시 리기다소나무를 많이 심었고 어느 해는 유실수를 심는다 해서 밤나무 묘목도 많이 심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계산을 해보니 딱 50년전이군요
그러니 지금쯤 벌목작업을 할때가 되었나봅니다
40년동안 땅에다 투자를 했더라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은 공기를 내어준 나무가 고맙기도 하다는 긍정적인 말씀에 감흥을 받습니다
땅값은 많이 오르지 않았을까 ?
문득 쓸데없는 수입원을 따져보게도 되네요 ㅎㅎ
수고많으셨습니다 열무김치님
오르긴 했지만 큰 의미가 없답니다.
강원도 내륙의 산을 살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강원도의 산림은 금전적인 가치보다는 간접적인 이득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당장에 주머니사정이 먼저인 우리들로서는 공기를 맑게 해준다거나 쉼을 제공한다는 등의 얘기는 그저 추상적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랜세월 산을 가꾸고 지키노라면 말로 설명이 되지않는 무언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숲에 가면 모두들 좋아하지만 나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요.
얻기만 하려는 우리들에게 긴 세월은 너무도 멀리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40년 이상 잘 살아온 낙엽송들이 참 멋지고
저렇게 귀한 작업을 하시는 분이라니, 열무김치님도 정말 대단하게 보입니다.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같습니다!^^
저 나무인가 보네요.
나무를 베어냈으니 또 다시 나무를 심으셔야겠네요.
예전에 어느 잘나가던 건설사 사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산에다 많은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의 가치가 쉽게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었고 그 가치가 무한한
기쁨이라던 생각이 나네요.
4월도 늘 행복한 날 되세요.
조림사업이 대를 이어야 빛을 볼 수 있는데 얻는 이득이 보잘 것 없는 듯 싶습니다.
간벌 등으로 관리가 잘 되어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다면 더 많은 수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낙엽송은 속성수가 아닌 듯 너무 굵기가 가늘어 보이네요.
오랜 기다림 후에 다가 온 나무 수확 앞에서 조금 허탈한 마음이 드시겠습니다.
우리동네에 그 당시 국유림 조림할 때 저도 울력으로 따라다니면서 편백을 심엇죠.
그 편백나무는 속성수라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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