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양지쪽에 나란히 누워있는 어느 인생의 무덤.
고단한 삶의 무게는 영영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것은 살아있는 생명의 본능이 옆구리를 찌르는 탓이리라.
적어도 어느것이 더 나은지는 살만 큼 산 뒤 저 세상에 가서 흥정을 해 볼 일이다.
그 살만 큼 산다는 일이 엿가락 늘리 듯 자꾸만 길어지고 있다.
평균 수명의 연장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우리의 명이 우리의 영역이 아닌것을 안다면 섣부른 생각이 오만임에는 분명하다.
이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한 신의 뜻을 이해한다면 살고 죽는 게 우리의 의지완 전혀 상관이 없어보인다.
해마다 8~9월이면 조상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잡초로 우거진 조상의 묘를 깎으며 대를 이어 산다는 것과 후대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묻쳐야 할 땅을 생각해 보고 후대에 비추어질 자신의 모습도 그려보게 되는 잠시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벌초대행이나 제사대행이라는 피켓이나 현수막이 어쩌다 걸리더니 이제는 돈벌이 수단으로 변할만큼 흔하게 보인다.
가을 추석을 전후로 일년에 한 번 하는 벌초도 귀찮은 세상이 된것이다.
처음엔 이대로 묘지를 쓰다가는 전국이 산소로 덮히고 말것이라는 경고성에 가까운 말에 그래도 그럴 수 있느냐 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권고가 아니어도 부모 사 후에 묘지를 쓰는일이 손에 꼽을 만큼 보기 어렵다.
묘지를 쓸 장소도 그렇고 이를 관리할 책임의식이 옅어지면서 굳이 관의 계도나 자연보호를 들먹이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이 난것이다.
두가지 마음이다.
부모의 사 후를 관리하는일도 바쁜 현대인들에겐 짐이라는 것과, 누구나 한 번 왔다 가는 생을 오랜세월에 걸쳐 흔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느냐 하는 반문이다.
또 하나는 우리의 삶이 개인마다의 역사이고 기록인데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끝나기 무섭게 단칼에 잘라 단절시키는게 좋은 방법일까 하는 점이다.
화장실 들어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을 한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 주머니 사정을 기웃거리며 이해타산을 하다가도 막상 자신이 그 입장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와 주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이중성이 묘지문화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아무리 사 후라도 자신의 몸이 화장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떡하겠는가.
말 대로 다 무덤을 쓰다가는 한국의 산하가 무덤으로 변한다는 말이 허풍으로 들리진 않으니.
오랜 구 세대들이 가난과 배고픔으로 고통의 세월을 산 보답으로 양지쪽에 묻쳐서 늦게라도 햇볕을 쬔다고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겠다.
묘지문화도 한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이라고 한다면 그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헛헛함은 여전히 남는다.
길어진 노후의 고단한 삶이 끝나면 양지쪽에 묻쳐서 늦게라도 햇볕이나 실컷 받아보겠다는 작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서.
어느 무덤앞을 지나다 해보는 객적은 생각이다.
정말 시끌벅적했던 것 같습니다
저 위 사진속의 두 무덤을 보니
지금 현재 우리집안은 무덤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대하여 댓글을 써봅니다
저희 엄마는 30년생이니까 살아계시면 지금 86세 그러고보니 딱 26년전에 떠나셨나봅니다
만60세 구정지나 정월 초열흘날 가셨으니 그 해 8월 생신 환갑을 못지내고 가셨지요
갑자기 고혈압으로 ...
그런데 엄마는 젊어서부터 입버릇처럼 늘 나중에 나 죽으면 꼭 화장하라고 말씀을 하였었지요
제일 많이 들었던 말씀 중 한가지 " 길가에 나뭇가지들은 주워다 땔감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사람은 죽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잉께 ... "
그런데 알고보면 엄마는 종부도 아니면서 집안의 큰일을 많이 치르셨고 그 중에는 묘지 이장하는 일이 많았는데 큰집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날은 안된다며 며칠간씩 걸려 그 인부들 밥해서 머리에 이고 산으로 날르는 일
사촌 큰아버지가 가정파탄이 나 우리집에서 기거하시다 돌아가시니 그 장례도 엄마몫 옛날에는 모두 집에서 치르다보니 조문객들 밥상 술상
아마도 그런 큰일에 이골이 나셨을법도 합니다
그런 엄마는 그렇게 힘들어도 절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미소가 고우셨던 ,,, 지금 나의 미소는 엄마의 미소 백리도 못따라감 ...
그러면서 정작 당신 죽게되면 화장식을 바람했던건 훗날 자식들 편하게도 할뿐더러
사람 한번 가면 지옥 천당 극락 그 이상의 세계는 없다하시고 종교란 죽음을 불안하지 않게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 종교도 없으셨고
사는 동안 착하게 서로 돕고 살면 된다며 평생 독신으로 장가도 안 간 시동생(아버지 동생 = 삼촌) 뒷바라지까지 다 했으니 ...
그러던 중 막상 갑자기 돌아가시니 장례문제가 거론되었지요
아버지랑 자식된 우리들은 엄마의 평소 바람대로 화장식을 얘기했더니 외갓집에서 (큰외삼촌) 난리가 났더랬습니다
서울에서 꽤 학식이 높았던 친척 한 분은 " 아 잘 생각했다면서 아버지랑 저희들에게 위로와 권유를 하셨는가 하면
막내남동생(막내인지라)은 큰외삼촌과 엄마 관 앞에서 말다툼, 큰소리까지 오고가며 울음을 터뜨렸던 ...
결국 엄마는 화장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그 후 아버지도 삼촌도 친정고모님도 모두들 화장식으로 그리고 최근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봉분이 무너져 모두 다시 화장식으로 진행을 했으니(그 경비는 우리들의 몫으로)
지금은 자식들끼리 명절이나 제사일에 모이면 그 당시 잘했다는 엄마의 선견지명에 우리도 앞으로 대대로 화장식으로 할 걸로 결정을 한 터입니다
댓글이 엄청 길었습니다
열무김치님의 글에 동요를 좀 일으켰었나 봅니다
글에서 가실님의 마음도 엿보이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 집니다.
가실님 어머님이 어떠셨을까 하는 상상도 드네요.
전 벌초도 부지런하게 잘 다니고 아버지산소도 정성껏 썼습니다만 아마도 후대는 그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엣 세대들은 반 의무감으로 어떻게든 했겠지만 이젠 그런 책임감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는 자연스런 변화일테고 하지 말라고 해도 그리 될것입니다.
사람의 사는동안도 중요하지만 사 후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엣 어르신들의 가족을 향 한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혼이 떠난몸을 어찌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흉하지 않게 처리하면 되지요.
이제 나이 들어 별로 쓸 장기가 있겠나만 필요한 사람 나눠줘도 좋구요.
뒤에 남을 자손들 힘들지 않게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화장한 후에 수목장을 하거나 훨훨 이곳저곳으로 날려보내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운전면허증에 표시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그렇게 해 두었으니
혹여나 어느날 갑자기 준비없이 이세상과 내가 이별하는 날이 오더라도
내 뜻을 따라 흔적을 남기지 말아달라 부탁 했더니
두 딸이 강력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엄마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 무덤을 가까이 두고
수시로 찾아가 돌보는 일을 하면서
자기네들에게는 왜 그런 해택을 허락하지 않으려 하느냐고요...
진심으로 서운해하며 눈물까지.보입디다.
그리고 얼마후
두 딸이 저에게 말하기를
자기네들이 알아보니 장기,시신 기증을 본인이 허락했더라도
자손들이 수락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라구요 ...
글쎄요.
아직 잘사는것도 내 마음데로 안되는거 대다수지만
잘 죽은 뒤까지 ....
내 마음데로 안되는거 ...
생은 죽으나 사나
서로 타협하며 어우러져 하나 되어야 하는
그런건가 봅니다....
벌써 죽은뒤를 이야기 하는거 어색하지 않음은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 적음이 확실하다는 ...
의미 !!!
맞겠지요???
앉아 있다가 큰아이 보고 하는 말이 아빠 나중 갈 때는 화장을 하거라 하길래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0여년이 흐른 지금은 당연지사로 저도 받아 들입니다.
시어머님께서는 나중 누가 산소 관리를 할 것인데, 내 죽거든 너그 아버지도 나와 같이 화장해서 정리 하라 하십니다.
야산 등산을 하다 보면, 아마도 문중 산이지 싶은데, 다 화장해서 작은 돌 비석 하나 세우고 봉분 없이 땅 속에 묻으니 장소가
많이 줄었겠다 싶었습니다. 앞으로 올 세월에 산소를 관리 할 자손들이 모자랄 것이라 그렇게 정리 했는갑다 하고 잘 했다 싶은 맘이였지요.
돌아가신 그 현재야 봉분을 멋지게 하고 모실 수 있다손 쳐도 앞으로 올 세월에는 하나 있는 자손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나면,
그 산소 누가 관리하겠나? 싶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내 딸도 제사 모실 사람으로 키우지 못했는데, 며느리 되는 남의 집 딸들도 다 그렇게 키워 놓았을 것이고, 맞벌이 하고 사는데,
제사 내 당대만 모시고, 절( 성당미사) 로 내 체력 모자라면 절로 모셔 놓고 갈란다 합니다.
제사, 산소 같은 것의 가치관이 변할 줄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큰 물 지고 홍토물살이 넘실 넘실 거리면서 흘러 가던 때의 강가에 있는 듯 합니다.
한때 몰래 숨어서 화장을 하던일이 이제는 대놓고 한다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구요.
맞습니다.
뒤를 보아 줄 사람이 없어요.
저역시 경상도를 오르내리며 3~4일간 벌초를 하고나면 본인이야 그렇게 한다지만 나중에 누가 이렇게 할까 싶어서 앞으로의 성묘문화에 회의적입니다.
아내는 제삿날을 일일이 기억하고 때를 따라 정성껏 제사를 차려 냅니다만 며느리는 강건너에 서있는 손님 같습니다.
이미 한 세대는 가버린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흉흉히 흘러가는 강가에 서 있는 기분이지만 별수야 있겠습니까.
시대를 따라 가야지요.
- 송학(松鶴) 이규정
- 2016.01.28 00:42 신고
- 수정/삭제 답글
늦은 저녁에 들려서
매장문화에 담아주시는 글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이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며 쉬어감에
감사드리며
즐거운 저녁 보내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효자가 되어서 장례식 화려하게 하고 무덤에 요란한 비석 세우는일이 누구를 위해서 이고,무슨소용이 있을까요?
남들에게 효자였던 것처럼 보여 지게하고 자신이 위치한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오게해서
부조라도 많이 받아 내려는 속셈이 아닐런지요?
사람이 어디서 죽든지간에 , 그 사람에게서 있었던
모든기본 질량이 이세상 어디에서도 찾을수 있으니까
성경에서도 부활할때 살아 있을때 모습으로 다시 살아 난다고 했던것 같습니다.
꼭 무덤가에 뭍힌 사람만 부활하는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너무 자식에게 효도를 강요하는일은
이전 세대까지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자식들에게 마음으로 존경은 받되 바쁜 시간을 내어서
효도를 하는일을 큰부담으로 안고 살게 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한국서는 풍수지리로 땅을 알아보고 무덤도 잘 정해야 잘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지로 사례도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것 모르고 장례문화가 다른 서양이 전세계적으로 잘 살았던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지요?
죽은자들의 무덤자리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복을 주는것이 아니고, 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것 아닙니까?
좋은곳에 무덤을 쓰는 일이 조상을 위함보다는 속내는 자신의 영달이 더 중요한 이유가 되겠지요
그렇거나 말거나 외형적으로라도 조상을 생각하는 장묘문화가 너무도 급격하게 바뀌어 버리니 한편으로 허 한 기분도 듭니다.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어요,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나 독립하면 부모세대는 사실상 그것으로 딴 세대가 되는 세상입니다.
강요하고 말고 할것도 없는 것이지요.
끝으로 써주신 말씀은 아주 명언이십니다.
때 낀 거울 닦고 나니 기분 좋네.
한번 닦으니 자꾸 닦고 싶네.
말갛던 거울, 때가 끼니 보기 싫네.
한번 보기 싫으니 자꾸 보기 싫네.
한번 마음먹는 것이 참 중요하네.
한번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좋아지고 싫어지네
오늘도 다정한 미소가 넘치는 활기찬 하루
열어가세요 건강하시구요 -불변의흙-.
고인이 된 최인호 선생이 쓴 수상록 <문장1>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제목은 '그저 잊혀지기를'입니다.
저는 윤회논리에 의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고
지상에서 수명이 다하면 흔적도 없이 잊혀지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글은 매우 마음에 드는 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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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잊혀지기를
신부님은 언제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다. 자신의 소유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임기를 채우고 다른 성당으로 떠날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셨다. 보던 책, 앉던 책상 등도 그대로 남겨두셨고 그냥 몸만 훌쩍 떠나셨다.
신부님은 아무것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몸마저도 잠시 지상에 파견되어 머물다 사라지는 형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셨다.
신부님은 심지어 자기가 다른 곳으로 떠난 후에도 그냥 그곳에 남아 있는 신도들에게 ‘아무개 신부님은 참 좋은 신부님이었다’라든가, ‘아무개 신부님은 참 멋진 분이셨다’라는 평판이나 소문이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떠나버린 순간, 그 순간 그저 잊혀지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신부님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남은 사람들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러한 의식적인 소망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아주 조그마한 위선을 심게 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주오빠와 인상이 많이 닮았다고들 한 분이어서 특별히 기억하는 모습인데 떠나셨지요
* 그저 잊혀지기를 * ...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최인호 함명춘의 대화 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언덕님 방에서 봤던가요 ...?
최인호 " 명춘아 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뭔줄 아니 ?
함명춘 " 음 ~ 사랑이오 아니 믿음이요"
최인호 : "아니다 죽는게다 "
최인호 수필집 <문장1>에 실린 겁니다.
제가 위에 써놓은 것이 전문이구요. 그러니 별도로 찾을 필요 없습니다. ^^
우리 나라를 여행하면 흔한 모습입니다
저는 수목장이 참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심각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저마다 생각이 틀리니
앞으로 화장이 대세가 될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견을 주셨는데 제가 쓴 글이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장례문화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문제여서겠지요.
날씨가 다소 풀린것 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시며
기쁘고 좋은 자리되세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보고
방글 미소드립니다 ~~~~~~~~~~~~~~(*)
아마도 도회지에서 살다보니 보지 못한 광경이라 그런가보아요
차창밖으로 바로 산소들이 여기저기 있는겁니다. 산소는 산에만 있는지 알았거든요 ㅎㅎㅎ
그랬더니 고향이 시골인 분들이 그러드라고요 자기네 땅에 산소를 쓰니 시골은 그렇다고요...
산소에 대한 생각들은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희 친정은 아주 오래전에 회의를 한게 누구든지 죽으면 화장을 해서 흔적을 안남기기로요
바다에 뿌리든 산에 뿌리든..남골당에도 안남기기로 ,,
대신 기일엔 꼭 연미사로 제사를 대신하기로요.
헌데. 너무 슬프게도 큰 올케언니가 뜻하지 않게 돌아가셨는데.
그게 참. 참.. 본인이 원한데로 바닷가에 뿌렷는데.. 보는 저흰 조카들에게 너무 안쓰런 생각이 들었지요
나이든 우리들은 부모님을 늙도록 보고 살았지만 아직 어린 조카들이 찾아가 볼 부모님이 없단게요
그후 오빠가 이년후에 가시고. 또 어머니가 가시고. 차례로 바다에 뿌려드렸지요.
이제 조카들은 기일이나 명절엔 미사를 드리고 어머니,아버지.,할머니를 뿌려드린 바닷가를 가서 바라보고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지요
어찌보면 이런것이 다 마음 먹게 달린것 같애요
지금 어머님의 하루하루의 삶이 건강악화로 인해서
힘들어 하시고 가끔 언제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다 보니 사후에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이
많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천주교 묘지로 가려고 했는데
시골 작은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묘자리를 준비하고
있으니 모시고 오라고 해서 갔는데 작은어머님과
사촌형제중 한명이 내키지 않아 하더라고요.
원래는 저의 아버지가 작은아버지께 주신 밭인데도요.
산소를 써놓고 벌초를 갈때마다 작은 어머님의 생색내기에 늘 마음이 편치않다보니 어머님돌아가시면 아거님도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실까 합니다.
해마다 아버지의 남자형제가 삼형제인데 벌초는
저와 남동생만 가서 조부모님 아버지 벌초를 하고 옵니다.
정말 요즘은 산소를 쓴다고 해도 방치하거나 대행업체에 맏기는 사람들이 많지요.
좋은날 되세요.
가문이 대를 이어 산소를 쓰는 경우엔 큰 문제가 없겟지만 묘자리를 미처 마련하지 못 한 경우엔 일 당하고 당황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웃간 큰 다툼이 없었던 당시엔 묘자리를 나누는 일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후대로 내려가며 부동산문제가 얽히다보니 이권다툼으로 번지게 되고 부모와 달리 이웃간의 인연관계가 희박한 후손들은 손익계산부터 따지려드니 갈등이 생기는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도 그런경우를 많이 보았지요.
하여 요즘 조상의 묘를 다시 화장하여 이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벌초문제도 지금의 구 세대들이 지고나면 아마 사라질것입니다.
시대탓을 하기보다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포근한 날씨지만 굿은 비 내리는 목요일 오후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오후시간 되시기 바라며
정성 담은 블로그 잘 보고 다녀갑니다.~³☆♣
묘자리 풍경이네요...
저 조상들의 묘를 후손들이 얼마나 잘 관리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하네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직년 11월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께서 생존해 계시기에 예사로 보아 념겨지지가 않는군요....
날씨가 많이 풀려 좋습니다
오늘도 기쁨이 함께 하시며
즐겁고 행복힌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
저도 처음에는 화장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럴 수는 없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티프>라는 책을 읽고나서 생각이 판이하게 달라져서 화장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것조차도 회의감을 갖습니다. 어디 수목장을 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현재의 생각입니다.
저는 생각이 자꾸 변하는 편입니다.
저야 열심히 벌초도 하고 경상도로 경기도로 쫓아 다닙니다만 자식들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당장 불호령을 내리고 닥달을 해도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내기 힘이 든 아이들을 강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어머니 장모님 계시니 생각이 많아 집니다.
아직은 화장보다는 산소를 쓰는게 도리라는 구닥다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게 얼마나 갈런지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일단은 어머니 돌아가시면 쓸 산소자리는 마련해 두었습니다.
슬슬 화장을 해야하지 않을까 갈등이 생기고 있습니다.
일이 많아 늦게 귀가하여 새벽에 앉아 있습니다.ㅣ [비밀댓글]
아무리 백세 인생이라지만 나이 일흔에 가까워지고 보니 양지에 누워있는 어느 인생의 무덤이 그냥 보이질 않네요.
선생님의 글은 부담이 없어서 더욱 좋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심에 인사드립니다.
자손들의 지극한 돌봄으로 양지가에 가지런히 정리된 무덤...
순순히 자손들의 효심이라 말하기엔..
살아계실때 그 정성으로 찾아보는 일도 하지 않다가
묘지의 기운을 빌려 잘 살아보고자 하는 못된 후손들도 더러 있더군요..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는 우회적인 가르침이겠지만 후손들 역시 그런 마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역대 대통령들께서도 산소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걸 보면 ..
조상산소를 근사하게 꾸미는 일을 성공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로망인 걸 보면 이에대한 방증이 아닐까요.
어찌됐던 이마저도 희미해져 갑니다.
삶의 흔적을 지우는 일도 오늘을 사는 고단함 못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주말, 좋은시간 되십시요.
아직 고향동네에서 보면 매장도 하지만 앞으로 누가 묘를 관리할 것인지 답답한 일입니다.
있는 묘도 파묘해서 화장하는 일도 더 많아질 것으로 봅니다.
이런 물결을 막을 필요도 없고 자연스런 현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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