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개울가나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아 본 경험이 있을것이다.
다슬기는 지방에 따라 골뱅이, 달팽이, 올갱이,골갱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강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크기나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맛 또한 차이가 있다.
다슬기는 1급수에만 서식 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2~30 년 전만 하더라도 다슬기는 너무도 흔해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그러던 다슬기가 간이나 기관지등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제는 아주 귀하신 몸이 되었다.
그런데 1급수에만 산다는 다슬기가 환경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1급수는 그만두고 농업용수로도 사용하기 힘들만큼 오염된 강가에 서식하는 걸 보게 되었다.
그것도 손가락 크기만한 다슬기들이 대량으로 붙어 있었는데 그걸 잡다가 왠지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서 그만둔 적이 있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환경 오염에 찌들어 사는 우리들에게 맑고 깨끗한 물은 최고의 바램이자 생명산업 窮極의 자연자원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왜 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걸까.
굳이나 과학적인 이유를 둘러댄다면, 너무 맑은 물에는 생명이 필요로 하는 여러가지 영양분이 충분치 않다는 경험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한다.
벼농사를 지어보면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데, 그냥 퍼 마셔도 좋을만큼 맑은 샘물을 농업용수로 쓴것과 강물이나 시냇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해보면 벼의 자람에 있어 상대적인 차이를 보인다.
두 조건하에 같은 량의 거름을 주어도 결과는 비슷하다.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너무 투명한 물이나 정갈하기 짝이없는 생활은 물고기나 사람이 숨을곳이 없다.
물고기도 숨을 적당한 수초가 필요하고 사람역시 분에 넘치지 않는 융통성이 있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다.
그렇다면 너무 맑은물에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은 오랜세월 상당한 경험축적으로 인해 얻어진 생활철학인 동시에 과학적인 데이터를 지니고있는 속담인 셈이다.
작금 국회에서 김영란法을 처리하면서 말들이 많다.
전에도 위헌요소가 있네 없네를 두고 설전을 벌리다가 결국 국민여론에 떠밀리다시피 통과가 되기 했는데, 막상 통과가 되자 너무 편협한 고무줄식의 누더기법이 되었다고 해서 추후 수정을 하지 않으면 법으로서의 효력에 문제가 많을것이라는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있는 상태다.
한데 그 여론이라는것이 끼리끼리나 가재는 게 편 이라는 이해관계의 틀에 갇힌 여론이 우세하다는게 문제다.
소상공인들이나 서비스업계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활동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벌써부터 아우성인 걸 보면 일반 국민들이 보는 시선과 많은 격차가 있음을 보게된다.
적당한 돈이 좀 돌아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호텔에도 가고, 골프도 치러가고, 여행사도 신이 더 날텐데 웬만한 행사의 금전적인 참여나 청탁 등이 대부분 법에 저촉이 되는 상황에 놓이니 김영란법이 올바르게 시행이 된다면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는것이다.
부정부패의 원천적인 싹을 자르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그간의 시행착오가 이 법을 탄생시키는 원인이 되었겠지만, 막상 법안이 통과되자 이러면 큰일 나겠다는 의식부터 싹트는걸로 보아 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앞으로 수많은 진통이 뒤따를것으로 보여진다.
한쪽을 억누르면 다른 한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반드시 나타 날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가 솔솔 흘러나오는 것 역시 이에대한 반증이다.
특히 성에 관한 법률을 예로 드는데, 사람들이 지니고 태어난 본능적인 욕구를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사회가 바라는대로 맑고 깨끗한 사회가 되는냐에 관한 문제는 아직도 시험대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현재 진행형이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기준은 서 있어야 되지 않을까.
법이 있는것과 없는것은 얘기다 다르다.
근간에 결정된 간통죄 폐지는 종교단체를 필두로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과의 극과 극으로 나뉘는 모양세다.
이미 기혼자들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들의 발빠른 움직임에 기다렸다는 듯 성황을 이룬다는 소식은 국가법으로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강제할 수 없다는 법 정서와는 다르게 묘 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기실, 그런게 아니어도 할 짓 못 할 짓 다 하는 세상이니 어찌보면 간통죄 폐지는 허울좋은 허수아비에 불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수아비도 가을 한때 어수룩한 참새들에게 겁을 먹게 만들지 않는가.
빗장을 푸는것과 허접한 자물통이라도 걸어 두는 건 분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디지털시대는 녹슬은 자물통이 환경 미화적인 차원에서라도 곱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동안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갑과 을로 나뉘어진 물질문명사회의 극한 대립은 사회에 대한 불신과 사람간의 드높은 장벽을 쌓아 이대로 마냥 갈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그중의 핵심은 역시 물질이다.
이걸 막아보겠다는게 김영란법의 취지인데 막상 통과가 되니 여기에 걸리적거리는 조항들과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무력화시키면 을은 그렇다치고 갑은 한마디로 사는 재미가 확 줄어든다.
그걸 좋아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게 문제다.
모든 자연만물은 사람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필연의 관계를 맺고있다.
자연의 흐름과 변화가 곧 우리들의 삶의 변화고 흐름이기 때문에 이는 만고의 진리다.
그렇다면 과연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는것일까?
1급수에만 산다는 다슬기는 세월이 변해 수질이 나빠지니 2급수나 3급수에서도 용케 살아간다.
"돈은 비료같은것으로 뿌리지 않으면 도움이 안 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한 말이다.
자본주의 의 두 얼굴을 간파한 말이기도 하다.
물이 너무 맑으면, 바꾸어 말해 세상이 너무 투명하면, 돈을 풀어야 할 부자들이나 기업이 사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침체로 이어져지는 악순환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논리다.
안그래도 소비침체로 기업이나 소비자들 모두 어려운 지금, 엄격한 법 잣대를 들여밀어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유있는 층들이 외국으로 이탈하는 탈 소비층이 되면 결국 얻는것 보다 잃는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부자들을 무조건 갑으로 몰아세워 그들의 부를 부정적으만 보는 피해주의는 결국 영세층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찌 되었던 돈이 돌아야 서로 먹고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동안 누이좋고 매부좋은 적당주의가 너무도 만연하여 그 온기가 아래로 전달되지 못하고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박탈감이 사회의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위기감이 김영란법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김영란법이 복잡한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들에게 당장은 아쉽더라도 한 번은 겪어야 할 고통이다.
설령 그 고통이 끝난뒤에 생각만큼 효력이 발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김영란법을 만들고 이를 시행해 보려는 우리사회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너무 맑은물에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은 적당주의를 정당화 하라고 있는말이 아니다.
선진국 문턱에서 더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사회에 만연된 각종 부정부패의 사슬이다.
설령 부패의 고리를 끊는 과정에서 경제전반에 마이너스를 초래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는 일정부분 국한된 일이지 미래의 이익을 놓고 본다면 반드시 끊고 가야 할 필연의 관습법이다.
우리말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라는 속담이 있 듯, 굳이 김영란법을 핑계대지 않더라도 서로가 얼굴을 들고 사람구실을 하고 살려면 필연코 넘어야 할 사선이다.
이 사회는 기존세대들만 살고 마는게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들이 지나온 역사를 호흡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참고:daum)
저로서는 물이 맑으면 물 밖에서도 고기가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숨을 곳이 없어 사람이나 새들 또는 같은 물고기 한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김영란 법은 모호한 기준을 어떻게 확립하느냐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
선생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신선하고 유려합니다.
그 말씀이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교장을 할 때, 교장회의에 모인 교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 것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다 정하면 교장은 뭐를 하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교장들은 이제 내가 교장이 되었으니 모든 걸 내가 다 정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기회가 있으면 그런 거야 당연히 학운위에서 정해야 하는 것이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 교장이 자문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는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고, 그러려면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교육부장관 중에 아주 욕을 많이도 얻어먹은 장관이 생각납니다.
그분이 교육부 전직원을 모아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봉투를 주거든 받으십시오. 그렇지만 겨우 몇만 원 가지고 자존심을 팔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그 직위를 돈으로 치면 얼마가 될까요? 10억 정도입니까? 20억? 지금 생각에 50억은 된다고 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50억을 주거든 받으십시오. 그 정도면 받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 장관은 학교 선생님들이 3만원, 5만원 돈봉투 받는 걸 가지고 신문에 기고했다가 아주 욕을 많이도 얻어먹었는데,
저는 교육부 직원들에게 그렇게 연설하는 걸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지금은 교육행정을 하지 않으니까 논외로 해야 할 것입니다.
괜히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부패지수가 세계 47위이고 태국이나 대만보다도 훨씬 부패한 국가로 낙인되어 있습니다.
이게 발전을 발목잡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절감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건 맞는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감도 상존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것은 김영란 위원장이 애초 기안한 내용과 다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기사에선가 김위원장은 '대상을 공무원에 한정'하여 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공직자부터 시작해보고 차츰 민간으로 확대하자는 의도"였다며 "뜻밖에 언론사, 사립학교 포함해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저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대상에서 뺀 부분에 대해서 그야말로 막장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보니 좀 더 생각을 많이해서 정책입안을 해야하지 않을까
전 솔직히 시의원 구의원 나아가서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사람이라서요
부패지수가 워낙 높다보니 이런 발상도 나왔는가 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데 솔직히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김영란법을 준수하며 사는지 궁금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