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근처에 어느 농가가 기르는 닭들
자유롭게 돌아 다니니 갇혀서 사는 닭들과는 표정부터 다르다.
내가 사는 근처엔 썩 괜찮은 등산로가 있다.
요즘은 보통 둘레길이라고 부르는데 둘레길이라고 하기엔 산이 높고 그렇다고 등산을 한다고 하기도 애매한 곳이다.
오솔길도 여러군데 잘 나있는데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정도로 제법 가파른곳도 있어서 두어시간 운동 하기엔 안성마춤이다.
이 등산로는 이름이 꽤 알려져서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면 수도권에서도 사람들이 제법 찾아온다.
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등산로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너댓명의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다.
그럼 나는 신이나서 물어보지도 않는것까지 설명을 하고 안내를 해준다.
친절도 하셔라...복 받을꺼야..
길을 걷노라면 시골에서나 만났음직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도 분홍빛 미소를 짓고 나팔꽃 비슷한 메꽃도 길 여기저기에 눈인사를 한다.
화려한 풍경은 아니어도 꾸밈없는 작은 자연을 바라 보노라면 모처럼 맞은 휴일이 더없이 푸근하고 여유롭다.
일주일간 누적 되었던 스트레스나 피로들이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스스로 내려 앉는다.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는가.
모내기철이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며 깔끔을 떠는 요런 녀석들도 멀지 않은곳에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바로 몇백미터가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경계심이 강한 녀석이지만 아주 가까이만 아니라면 굳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이제 이녀석들도 사는 요령을 터득한 게다.
작은 언덕을 넘어 좀 가파른 산에 오르기전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은 작은 습지 노릇을 한다.
여러 수생식물이 자리를 하고 새생명이 태어나는 자궁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다른곳에서 볼 수 없는 잠자리도 이곳에 오면 일찍 볼 수 있다.
이제 새로운 비행을 위해 날개짓을 시작하는 어린 잠자리의 초여름이 싱그럽기만 하다.
나지막한 산에는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자라는데 입구엔 잣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서 오르는 일정구간 햇볕을 보기 힘 들 만큼 울창하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은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오갔는지 가끔은 나무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그래도 나무들은 불만이 없다.
그건 인간들의 욕심이겠지만 신이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니 나무들도 충분히 이해 하리라.
나도 음악을 좋아 하지만 자연이 들려주는 이런 생음악을 어느 음악에 비교할까.
인간이 만든 음악이 분명 우리들의 마음을 맑게 만들고 변화시키지만 저 깊은곳의 영혼까지 훔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마리 작은새가 무보수로 들려주는 지저귐이 때로는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 볼 수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예삿일이 아님에도 우리들은 그냥 스쳐 지날때가 대부분이다.
쉰다는게 과연 어떤것일까.
사람들 틈에 끼여 내가 살아 있다는걸 느끼는 경우가 많다.
보고, 먹고, 즐기는 휴식은 때로 내몸의 세포가 제대로 분열을 하고 없어질때 제대로 사라져주는걸 감사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그것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행위일때 강한 오르가즘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 오르가즘은 늘 허전하다.
그 갈증은 회를 더할수록 더 맛나는 음식을 찾아 떠나야하는 식도락의 여행이다.
자연에서 쉼을 얻는다는건 단순하다.
그래서 좋다.
잠시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 어머니집의 툇마루에 누워서 얻는 그런 단순함이다.
아무런 맛도 없는 맹물이지만 첩첩산골 계곡에서 만나는 옹달샘물을 마시고 우리들은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한결같이 말한다.
어..물 맛 좋다.
평생 친한 벗 한명만 사귀어도 성공한 삶이라는데 가까운곳에 좋은 등산로 한군데만 있어도 복받은 삶이 아닐까?
세금을 내라고 독촉도 하지 않고, 왜 늦게 오느냐고 잔소리도 하지않는 언제나 대 환영인 오솔길..
이 길을 걸어가며 마음의 때도 벗겨보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헛소리도 뱉어본다.
그놈의 돈 좀 못 받으면 어때..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내가 져 주어야지...
내가 너무 흥분했지..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굴참나무 한 그루가 스승이다.
등산로 오르는길옆의 보리밭
해마다 보리를 심는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아련한 풍경이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붙든다.
6월 보리밭
초여름에 만나는 또 하나의 가을이다.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지나는 사람들마다 한번씩 쓰다듬고 간다.
이 아름다움을 몰래 심었을 뭇 손길이 얼굴을 보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등산로를 오르는동안 흔하게 발견되는 개망초꽃들의 향연..
한송이는 모르되 무리로 피어나니 그 운무가 뛰어난 배경을 이룬다.
다만 우리의 토종 꽃들이 저렇게 무리로 피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다.
등산로 중간쯤이다.
사람 한두명 간신히 비켜 갈 길이지만 오붓하니 정겹다.
터벅터벅 아무런 생각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착 가라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다음 그림에 지루함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산딸기
등산로 주변에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가 많은데 오솔길에 도토리가 수북하게 떨어질만큼 많이 달리는 해도 있었다.
약삭빠른 다람쥐나 청설모들이 아직 익지도 않은 도토리를 먹겠다고 쪼아 내렸다.
몇년전에 이곳에서 도토리를 몇 말 가까이 주워 도토리묵을 해 먹었는데 산짐승들을 만난 뒤로는 다시는 줍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겨울에 산짐승들이 먹을 먹이도 놓아 준다는데..
모진 겨울도 봄에게 양보할 부드러움은 숨겨 두었다
.
칼바람 부는 1월이지만 봄꿈을 미리 꾸어본다.
묵은때 훌훌 털어 버리고 새해를 꿈꾸는 1월..
쉼을 찾아 오르는 등산로에서 언제나 변치않는 자연을 만나 듯 올해도 무탈한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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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학(松鶴) 이규정
- 2014.01.04 13:36 신고
- 수정/삭제 답글
늦은 오후에 들려서
여유로움을 즐기는 닭
보리밭과 함께
고향의 향수가 느꺼지는 풍경
오랜 추억과 함께 감상하고 쉬어감에
감사드리옵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라옵니다
2014년도 금년에는
건강과 더불어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지시길 기원합니다.
- 일산 백송드림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어느 좋은 수필이 담긴 수필집을 발견한 서점에서 느끼던 그 정서로 읽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 '디지털 시대니까 이젠 수필도 사진을 따라가는, 혹은 글을 따라 사진을 보여주는 이런 글을 읽고 배우고 써보는 국어 시간이면 좋겠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쉴수 있는 곳이 있다는것이 큰 행복입니다.
자연의 소리만큼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고 하지요.
저는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윤선생님이 이른봄? 계곡의 흐르는 물을 동영상으로 올리신 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물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집니다.
아파트 숲에서 살다가 싱그러운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눈과 몸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지는 조금 걸을수 있지만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내려 올때 너무 아픕니다.
대문의 사진이 넘 멋집니다.
정말 멋져요.
요즘 딱 맛는 사진이네요.
- Captain Lee
- 2014.01.06 03:36 신고
- 수정/삭제 답글
고은 한주 여세요
새해도 건강하시고 하시는일 두루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 겨울에 진달래를 보며 지난해 즐거웠던 봄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멋진 등산로를 가까이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저도 봄이 기다려 집니다.
봄이 되면 왠지 좋일이 생길것 같은 예간이 듭니다.
- ★ 미다스 kan7ry
- 2014.01.06 20:30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그렇다고... 결국 , 사회의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다시 치유가되지 못해서
정말병을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 자연이 바로 약이지요.
감사합니다
평생 친한 벗, 한 명과도 같은 오솔길을 갖고 계시는군요.
축복 받은 삶입니다. ^^
- Captain Lee
- 2014.01.08 09:25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시루봉에 눈 꽃 정말 좋은대
항상 건강 하시고
추위에 감기 조심 하세요
영상과 글을 읽다 보니
정말 고생은 되지만 쓸만한 등산로이군요~~ㅎㅎㅎ
가까운 곳에 이렇게 산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삶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지요
산을 찾게 되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산에서 느끼는 감정은 모두가 비슷할 것 같기도 하구요
쉼이라는 단어와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도 산이 주는 기운이 아닐까 생각하여 봅니다
시시각각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이지만
산은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이니~~
대문 설경이 정말 절경입니다, 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이제 저도 슬슬 기지개를 켜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날마다 건강 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순조로운 새해 되시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실 때마다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선생님!
가지가지 숲속에 보물이다모여있네요
올한해도 대박 나시고 건강하시고 ~
행복한날 되세요 ~^^
복 많이 받으시겠습니다. (^0^)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등산로와는 확연이 차이가 나는 길입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길을 걷듯 호젓한 등산로를 걷다보면
정말 갖가지 생각과 마음에 심고 오는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승이 되어준 굴참나무와 자연이 들려주는 청아한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오솔길을 걷는 열무김치님이 부럽습니다.
그러기에 말간 글을 쓸 수 있는 심성도 깊어지신 것 같아요.
졸졸 흐르는 시냇물 따라 멋진 풍광을 보며 글 여행 잘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길 빕니다^^*
여름에도 햇볕을 가려주는 숲 때문에 다닐만 합니다.
시에서 여러가지 운동기구도 갖추어 주고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는데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번 오시지 않겠어요?ㅎㅎ
등산을 하면서 계절마다 관심을 찍으셨군요.
한장한장 최고의 작품이십니다.
6월초에 남면 두위봉을 갔다가 뻐꾸기 소리가 나길래
소리 때문에 일부러 동영상을 찍었는데 간헐적으로 들릴 뿐
예전같이 고즈넉하게 오래도록 울어주지를 않더군요.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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