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야기 3
삶은 계란 먹기
계란을 삶아
양지에 앉아 까먹는다
소금을 넣고 삶아야 잘 까지지
아니야
찬물에 삶아야 해
무슨 소리
바늘로 계란에 구멍을 내고 삶아야지
그깟 계란 껍질이야
아무렇게 까도 될 것을
입에 넣는 짧은 순간까지
자질구레한 간섭이 코밑까지 따라붙어
저녁 굶은 시어미다
돌아 앉기도 벅찬 사절지 만한 독방에
짧게는 육 개월
길어야 일 년
공장의 공산품처럼 빼낸 알들이
때 빼고 광 내고 관광버스에 올라
디스코 파티를 벌린다
내 과거는 묻지 마세요
한 알로 해결되는 종합 영양통
삶아 먹고 부쳐 먹고 구워 먹고
아주 그냥 죽여줘요.
5일장 호떡집
봄 그리워 찾아 간
횡성 장날 골목 난전에
꼬깃꼬깃 천 원짜리를 손에 쥔
어디서 본듯한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두리뭉실 미끄러져 납작하게 눌리는
꿀 호떡 야채호떡 치즈호떡
그리던 사람 재회하듯
입맛 다시는 눈동자 그윽하다
기다린 호떡 들려지면
언니 엄마 아지매
언제 봤다고
반달눈에 매달린 남남이 꿀처럼 살가워
칼칼한 어묵국물 한 사발에
배회하던 봄바람을 불러 앉히고
덥석 한 입 베어 물면
멀리서 달려오는 기적소리
달콤하게 입 맞추던 임이 웃는다.
예쁜 도둑
한나절 퍼질러 자다가
부시시 일어난 오전 11시
모처럼 맘 편히 잤네
그래 그래 더 자거라
친정 집이 좋지
엄마 햇김치 했어?
그럼 그럼
갓김치도 담갔고 멸치도 볶았고
코다리도 졸였고 볶음장도 만들었지
너 좋아하는 파김치도 해놨어
열어 제낀 창문 사이로
머뭇거리던 2월 바람이 배시시 웃는다
예쁜 도둑님이 오셨네
가방만 큰 줄 알았더니
보따리도 크셔라
이거는 냉장고에 넣고
또 이거는 김치 냉장고에 넣고
이거는 빨리 먹어야 해
덜어 먹고 뚜껑은 꼭 닫고
손가락은 빨지 말고
예쁜 도둑이 다녀갔다
미처 손끝도 마르지 않은 엄마는
안 그래도 잘 굴러갈
비까 번쩍한 승용차문을 잡고
아까 한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한 해가 가면 달라지겠지
그러다 엄마가 되겠지
스무 살에 불던 꽃바람은
그 나이 되도록 쇠지 못하고
엄마 눈가에 맺혀 떨어질 줄 모르다.
시래기
친구와 장은
오래 묵어야 좋다지
가을을 삭혀
서풍 난간에 걸어두고
긴 긴 겨울바람에 무치면
누릿하게 배어 나오는 그 날의 哀歌
가마솥에 몸을 푼 가을의 흔적
한 올 한 올 가다듬는 연인의 머리카락
흑백영화 이별 장면처럼
진하게 흐르는 갈색 눈물이 뜨겁다
사는 일이 그렇듯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슬픔이 그린 동그라미를 모아다가
시래기처럼 말릴 수만 있다면.
손주 자랑
이봐 이봐
얘가 아주 기가 막히네
앞집 영감이 내민 스마트폰에
낯선 꼬맹이가 온몸을 꼬고 있었다
학원에 댕긴다더니 다르네 달라
여기 봐 봐
테레비 무슨 도르뜨에 나오는 그 애 같지 않아
이 사람아 좀 자세하게 보라니까
허허
까이 꺼는 암 것두 아니지
이 양반이 우리 손주 보면 기절하겠네
배운다고 되나
우리 손주처럼 타고나야지
시앗 싸움에 돌아 앉는 부처 놀음
한바탕 연극이 끝나면
담배 연기처럼 날아갈 헛헛한 이야기
꿈처럼 찾아오는 손주는 아득하다.
기적의 영양 크림
뜰 윤창환
인공지능 AI
돈 계산이야 식은 죽 먹기
명 판결은 AI 판사라지
우리 모두
변방으로 밀려 날 거야
화장품의 반란
피부 데이터 수 백만 회로
눈 가 주름 팔자 주름 턱 주름
타임머신을 타 보세요
귀 얇은 사람이 시킨 영양크림
익일 문 앞 배송이 내지른 탄성에
마누라 한숨이
한 겨울 입김으로 피어오르고
AI 화장품
AI인지 에이 참인지
한쪽 구석에 나동그라진 그날 밤
톡톡톡 빗방울 소리에
슬그머니 내다본 그곳에
머리를 틀어 올리고
펑퍼짐하게 눌러앉은 아내의 희멀건 얼굴
사분의 이박자로 두들기고 있었다
그놈의 AI 기적의 영양 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