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겨울이야기4.. 연말을 맞는다는 것

*열무김치 2019. 12. 8. 10:08

 

 

 

달동네 경사진 길에 눈이 내리면  오르내림이 불편한 곳들이 많다.

번듯한 길이야 제설장비도 잘 구비되어 있고 눈 내리기 바쁘게 염화칼슘을 뿌리는 등 신속한 처리가 이루어지지만 달동네 골목길은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몫이다.

그곳 사람들에게 겨울은 하루라도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나 역시 그곳을 오르내리는 일이 썩 반갑지 않지만 별 수 없이 가야할 경우가 생긴다.

"아니, 꼭 불러야 오나? 여름엔 툭하면 오더니 낯을 너무 쉽게 바꾸는 거 아녀?"

"에이, 아시잖아요. 여기 올라오기 힘들다는 거. 오늘도 억지로 왔구만."

"거, 그러는 거 아니여. 윤 씨 이제 봤더니 겉 다르고 속 다르네."

"아, 됐구요. 안 오려다가 사장님 생각해서 왔구만 빨랑 커피나 한 잔 타줘요."

"여기가 무슨 다방도 아니고 커피는 맡겨놨나?"

"그럼 그만 갈까요?'

"어이구, 그것도 무신 사업이라고 유세를 떨어요 유세를."

달콤 쌉싸름한 커피를 마시며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먼발치로 또 눈발이 날렸다.

"아, 안돼 빨랑 내려가야겠네."

"멋대가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양반아. 저 정도 눈에는 세살배기 애기도 오르내려. 엄살은."

"여기 사는 양반들은 숙달이 됐고 전 왕초보잖아요. 흐흐"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방문을 삐끔이 열더니 거들었다.

"저기, 어제 밤 먹다 남은 과메기 있는데 한 잔 하고 갈라우?"

"저를 실업자 만들라구요?  여기서 먹여 살리면 한 잔 하구요."

"저놈의 뻥은...16도 짜리가 무슨.."

그냥 내려가기 뭐해서 세 명이 앉아 상추에 과메기를 싸서 먹었다.

"역시 공짜는 더 맛나다니까."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낡은 밀 창 너머로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겨울에 여기에 누가와요? 난 그게 정말 궁금해."

"누가 오긴. 그래도 여기가  요 동네 유일한 구멍가겐데 그럭저럭 찾아오지."

"누가요?"

소주를 털어 넣던 점주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이야. 각자 사연들도 많고. 여기 효자품목이 쐐주라니까. 저거 봐. 다른 건 안 보이고 쐐주 병만 잔뜩 있잖아."

"무슨 이동네 사람들은 술만 마시나?"

"모르는 소리 말어. 저건 그냥 쐐주가 아니고 자식보다 더 효자여."

"빈병은 얼릉 보내지 무슨 재산이라고.."
"뻔이 알면서, 겨울게 여가 힘들어서 가을게 쐐주 잔뜩 들이고 명년 봄이나 돼야 사니까 그때 보내야지 별수 있나."

"그런데 전 왜 오라가야 해요. 가을에 한 번 부르고 말지."

"거그는 병아리 오줌만큼 사니까 글치. 유통기한도 짧구."

"에이, 여기를 안 오는 날이 되면 아마 내 일도 끝날 거야. 하니까 빨랑 걷어치워요."

"윤 씨가 날 좀 멕여 살리면 안 될까? 이젠 이 짓도 지겨워."

아주머니가 눈을 흘겼다.

"난, 저 양반이 짐짝이야. 진작에 도망을 갔으면 팔자가 달라졌을텐데."

 

점점이 보이던 눈발이 자욱해지더니 이내 서 너 평 되는 마당이 하얗게 덮였다.

화물차 덮개를 내리고 차에 오르자 점주가 쫓아 나왔다.

"밀린 게 얼마여?"

"꽤 많은데..원래 쐐심줄이잖아요."

"하여튼 말 뽄새 하고는. 다 끊어 줄라고 했는데 쐐심줄 자존심은 남겨놔야겠네."

도망가는 점주를 따라 얼른 쫓아 들어갔다.

"흐흐.. 연말이 고와야 새해도 복 받습니다. 100프로 완납이요~"

빼앗다시피 받아 든 만원 짜리 다발을 흔들자 아주머니가 방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저 양반이 과메기를 잘 못 먹었나. 그 걸 뭐 하러 다 줘. 이달에 나갈 돈이 얼만데."

차에 오르자 눈발이 더 굵어졌다.


"고마워요. 마감도 잘해 주시고, 복 받을 겨. 나 빨랑 내려가야 해. 늦으면 119 불러야 한다니까."

" 그래도 부르면 오니까 기특해서 준거지 윤 씨 면상 봐서 준거 아니여. 얼굴에 구르무라도 좀 찍어 바르라고.

원, 그 얼굴이나 내 얼굴이나."

 

사람 사는일이 거기서 거기인 몇 남지않은 달동네의 겨울은 여전히 정제되지 않은 약속으로 남았다. 

훈풍불어 꽃 피어나면 다시 새끼손가락을 걸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왜 맨날 가만있는 얼굴을 자학 하세요? ㅎㅎ
괜히 그러시는거죠?
읽는 사람 재밌으라규....
대구살적에 눈 내린 마당에 역마살낀 과장님이 공수해온 과메기랑
통삼겹 숯불 구이 해먹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사장님이 어쩌다 눈 내린 날이면 먼저 멍석을 깔아주었지요.
얼큰이 취해서 퇴근하던..ㅋㅋ
신혼시절 부산에 달동네도 연상이 되네요..
한방중에 보면 낭만 가득인데
생업이 달린 일은 언제나 고단함이 고드름 되어 수심 가득입니다
눈 내리면 마냥 좋은...제가 미안해지네요..
하하..
병원 다니는 동생말이 좀 보아줄만하게 고치려면 견적이 무지많이 나온답니다.ㅎㅎ

하루가 다르게 도시가 발전하지만 도시 뒤안길엔 늘 달동네가 있고 그곳의 삶들이 존재합니다.
다녀보면 다 괜찮은데 그곳 분들에겐 겨울은 정말 마의 계절입니다.
많이 줄었지만 연탄을 때는 집들은 연탄재를 버리는 일도 큰 일과구요.

첨단의 시대를 살아도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데 그렇다고 행복의 척도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정식으로 계산하고 양심으로 살고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구,
때로는 바보가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빙판이 되고, 눈이 오고 하면 가기도 힘든 곳에서 밀린 대금 받으셔서 다행이십니다.
이 겨울 건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열무김치님은 생각하시는 것이 그래도 후한 쪽으로 생각하셔서
건안 하시게 살아 가실 것이다 하고 생각하지요.

사진이 참 좋습니다.
가는 가지 끝까지 생명이 동면하겠지요.
봄이 되면 새싹이 올라 올 것이구요.
어느정도 까지는 포기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건 손익계산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지요.
그래서인지 손해를 많이 보는편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먹고살았으니 큰 이익을 본 셈입니다.

추위가 물러가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오네요.
다음주 그렇다는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저가 생각하는 것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악착스럽게 계산을 따지지 못해서 친정 엄니께서 미구등신이라 하셨지요.
그냥 그렇게 살아도 아이들 공부시키고 밥 먹고 살았는데라고,
어쩌면 건안하게 살아 가는 것에 대한 작은 댓가 이라 생각하자 합니다.
[비밀댓글]
선생님!
늘 생동감 넘치는
선생님 글은
살아서 꿈틀거려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간접경험(?) 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댓글
자주 못달아도 용서하셔요.

댓글을 잘 못다는
오직 소통하는 분은 파란편지 선생님 한분이에요.


추운계절
안전운전 하시고
사모님과 행복한 겨울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영혼의 맑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밀댓글]
아이고 아닙니다.
이렇게 오시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위로가 됩니다.
비공개로 해 놓으셔서 글은 보지 못했지만 따스한 분이실거라는 짐작을 해 봅니다.

가끔 놀러 오세요.
새로운 한 주 평안하시길요.
[비밀댓글]
한편의 소설처럼 달동네 풍경이 그려지는 재미난글이네요
네.
여전히 달동네는 남아있고 그 가운데서도 나름의 방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월 중순으로 가는 월요일입니다.
한 주 행복하세요.
아직 그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한 세상입니다.
또 어디엔가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훈훈한 느낌입니다.
그 이야기의 가운데에 열무김치가 등장하니까 실감이 더해집니다.
말하자면 그 생활이 하나의 작품이니까 색다른 '행위예술'이랄까요?
조심조심 다니시기 바랍니다.
얼마 남지않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그런 곳에 색깔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사실 제게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찾아갈 일도 점점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점점 잊혀져 갑니다.
특히 겨울이 더 그렇습니다.

봄이 와야지요.
그래야 그곳에서 희망이 돋습니다.
사진에
눈을 멈추고;;
다음엔요?
dada는
난독증 증세가 ㅎ

좀 긴글은 도중에
잡생각으로 감기고;;;

그래서
단문정도의 IQ 수준;;
저하고 비슷한데요.ㅎㅎ
진단결과

매우 정상이십니다~!
진단을
요로코롬 짧은 시간에

손목 좀 오래 잡꼬
또 오래 잡꼬 그래야 ㅎ&&
클나요~
그렇게 오래도록 잡고 있으면 추행범으로 직바로 잡혀갑니당~~
사람냄새나는 얘기 잘 읽었습니다
딴세상같아요...

사진속의 나무도...석양도...
딴세상 맞습니다요.
석양에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이니 딴세상 아닐까요.
70년대 제 살던 동네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연말이어서 그럴까요?
따스한 이야기인데 쓸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이곳엔 달동네가 제법 많습니다.
그들만의 삶이 있고 소외된 사람들도 많아서 아직 우리사회가 보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걸 실감합니다.
서울에 가면 화려한 빌딩숲 뒤편으로 여전히 80년대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곳들이 있더군요.
단편영화 한 편을 보는듯 그려지네요.
추운 날...
따뜻함을 전해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
情이 솔솔 풍깁니다.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