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야기4.. 연말을 맞는다는 것
달동네 경사진 길에 눈이 내리면 오르내림이 불편한 곳들이 많다.
번듯한 길이야 제설장비도 잘 구비되어 있고 눈 내리기 바쁘게 염화칼슘을 뿌리는 등 신속한 처리가 이루어지지만 달동네 골목길은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몫이다.
그곳 사람들에게 겨울은 하루라도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나 역시 그곳을 오르내리는 일이 썩 반갑지 않지만 별 수 없이 가야할 경우가 생긴다.
"아니, 꼭 불러야 오나? 여름엔 툭하면 오더니 낯을 너무 쉽게 바꾸는 거 아녀?"
"에이, 아시잖아요. 여기 올라오기 힘들다는 거. 오늘도 억지로 왔구만."
"거, 그러는 거 아니여. 윤 씨 이제 봤더니 겉 다르고 속 다르네."
"아, 됐구요. 안 오려다가 사장님 생각해서 왔구만 빨랑 커피나 한 잔 타줘요."
"여기가 무슨 다방도 아니고 커피는 맡겨놨나?"
"그럼 그만 갈까요?'
"어이구, 그것도 무신 사업이라고 유세를 떨어요 유세를."
달콤 쌉싸름한 커피를 마시며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먼발치로 또 눈발이 날렸다.
"아, 안돼 빨랑 내려가야겠네."
"멋대가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양반아. 저 정도 눈에는 세살배기 애기도 오르내려. 엄살은."
"여기 사는 양반들은 숙달이 됐고 전 왕초보잖아요. 흐흐"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방문을 삐끔이 열더니 거들었다.
"저기, 어제 밤 먹다 남은 과메기 있는데 한 잔 하고 갈라우?"
"저를 실업자 만들라구요? 여기서 먹여 살리면 한 잔 하구요."
"저놈의 뻥은...16도 짜리가 무슨.."
그냥 내려가기 뭐해서 세 명이 앉아 상추에 과메기를 싸서 먹었다.
"역시 공짜는 더 맛나다니까."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낡은 밀 창 너머로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겨울에 여기에 누가와요? 난 그게 정말 궁금해."
"누가 오긴. 그래도 여기가 요 동네 유일한 구멍가겐데 그럭저럭 찾아오지."
"누가요?"
소주를 털어 넣던 점주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이야. 각자 사연들도 많고. 여기 효자품목이 쐐주라니까. 저거 봐. 다른 건 안 보이고 쐐주 병만 잔뜩 있잖아."
"무슨 이동네 사람들은 술만 마시나?"
"모르는 소리 말어. 저건 그냥 쐐주가 아니고 자식보다 더 효자여."
"빈병은 얼릉 보내지 무슨 재산이라고.."
"뻔이 알면서, 겨울게 여가 힘들어서 가을게 쐐주 잔뜩 들이고 명년 봄이나 돼야 사니까 그때 보내야지 별수 있나."
"그런데 전 왜 오라가야 해요. 가을에 한 번 부르고 말지."
"거그는 병아리 오줌만큼 사니까 글치. 유통기한도 짧구."
"에이, 여기를 안 오는 날이 되면 아마 내 일도 끝날 거야. 하니까 빨랑 걷어치워요."
"윤 씨가 날 좀 멕여 살리면 안 될까? 이젠 이 짓도 지겨워."
아주머니가 눈을 흘겼다.
"난, 저 양반이 짐짝이야. 진작에 도망을 갔으면 팔자가 달라졌을텐데."
점점이 보이던 눈발이 자욱해지더니 이내 서 너 평 되는 마당이 하얗게 덮였다.
화물차 덮개를 내리고 차에 오르자 점주가 쫓아 나왔다.
"밀린 게 얼마여?"
"꽤 많은데..원래 쐐심줄이잖아요."
"하여튼 말 뽄새 하고는. 다 끊어 줄라고 했는데 쐐심줄 자존심은 남겨놔야겠네."
도망가는 점주를 따라 얼른 쫓아 들어갔다.
"흐흐.. 연말이 고와야 새해도 복 받습니다. 100프로 완납이요~"
빼앗다시피 받아 든 만원 짜리 다발을 흔들자 아주머니가 방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저 양반이 과메기를 잘 못 먹었나. 그 걸 뭐 하러 다 줘. 이달에 나갈 돈이 얼만데."
차에 오르자 눈발이 더 굵어졌다.
"고마워요. 마감도 잘해 주시고, 복 받을 겨. 나 빨랑 내려가야 해. 늦으면 119 불러야 한다니까."
" 그래도 부르면 오니까 기특해서 준거지 윤 씨 면상 봐서 준거 아니여. 얼굴에 구르무라도 좀 찍어 바르라고.
원, 그 얼굴이나 내 얼굴이나."
사람 사는일이 거기서 거기인 몇 남지않은 달동네의 겨울은 여전히 정제되지 않은 약속으로 남았다.
훈풍불어 꽃 피어나면 다시 새끼손가락을 걸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괜히 그러시는거죠?
읽는 사람 재밌으라규....
대구살적에 눈 내린 마당에 역마살낀 과장님이 공수해온 과메기랑
통삼겹 숯불 구이 해먹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사장님이 어쩌다 눈 내린 날이면 먼저 멍석을 깔아주었지요.
얼큰이 취해서 퇴근하던..ㅋㅋ
신혼시절 부산에 달동네도 연상이 되네요..
한방중에 보면 낭만 가득인데
생업이 달린 일은 언제나 고단함이 고드름 되어 수심 가득입니다
눈 내리면 마냥 좋은...제가 미안해지네요..
정식으로 계산하고 양심으로 살고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구,
때로는 바보가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빙판이 되고, 눈이 오고 하면 가기도 힘든 곳에서 밀린 대금 받으셔서 다행이십니다.
이 겨울 건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열무김치님은 생각하시는 것이 그래도 후한 쪽으로 생각하셔서
건안 하시게 살아 가실 것이다 하고 생각하지요.
사진이 참 좋습니다.
가는 가지 끝까지 생명이 동면하겠지요.
봄이 되면 새싹이 올라 올 것이구요.
그건 손익계산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지요.
그래서인지 손해를 많이 보는편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먹고살았으니 큰 이익을 본 셈입니다.
추위가 물러가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오네요.
다음주 그렇다는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늘 생동감 넘치는
선생님 글은
살아서 꿈틀거려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간접경험(?) 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댓글
자주 못달아도 용서하셔요.
댓글을 잘 못다는
오직 소통하는 분은 파란편지 선생님 한분이에요.
추운계절
안전운전 하시고
사모님과 행복한 겨울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영혼의 맑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밀댓글]
또 어디엔가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훈훈한 느낌입니다.
그 이야기의 가운데에 열무김치가 등장하니까 실감이 더해집니다.
말하자면 그 생활이 하나의 작품이니까 색다른 '행위예술'이랄까요?
조심조심 다니시기 바랍니다.
눈을 멈추고;;
딴세상같아요...
사진속의 나무도...석양도...
연말이어서 그럴까요?
따스한 이야기인데 쓸쓸하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