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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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단체의 체육대회가 있던 날.
행사장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개회식 문제로 목적한 체육대회가 늦어지고 있었다.
행사를 빛내 줄 내빈들이 늦게 도착한 것이다.
꽃 한 송이씩을 단 내빈들이 자리에 앉자 이번엔 인사를 나누고 축사를 하느라 한시간 가까이 지났다.
진행요원을 맡은 우리들은 순서가 밀리면서 몸이 달았다.
다음 선거를 의식한 것일까.
각 단체장들의 지루한 축사가 이어지자 예의상 운동장에 서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회식이 끝나자 뭐를 어떻게 해 볼 사이도 없이 바로 점심시간으로 이어졌다.
점심시간,
사람들은 주민들이 서로 즐기자고 연 체육행사에 제발 내빈이라는 사람들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행사장에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야 뭔가는 있어보이고 행사측에서도 어깨에 힘을 주었지만 합리적인 모임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외형적인 모양세에 신경을 덜 쓰는 쪽으로 가고있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들은 악수를 청해오며 명함을 내밀었다.
어찌됐던 여러 모양의 감투의 위력은 대단하며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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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인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문단이 어수선하다.
비단 문인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성추행 문제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만큼 인기차트(?) 에 올라있다.
문인들도 사람이니 무슨 특별한 잣대를 들여 밀 이유는 없지만 그나마 여느 분야와는 좀 구별되지 않겠느냐는 범인들의 시각이 문제다.
성추행이란 말이 입장에 따라 모호한 경우도 있지만 sns의 힘이 막강한 세상이니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려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이번 성추문 사건은 더 지켜볼 일이다.
아직 사실관계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껄끄럽기만 하다.
한국문단에 영향을 끼치는 파워작가들이 순수한 펜의 힘에 기댄 일종의 治外法權 의 지위를 누린다면 이는 문학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겠다.
문학이 정치 경제적인 입김에 제지를 당하고 우리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외면하게되면 그것은 문학이 아닌 정신문화의 沒落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입맛에 부응하는 괜찮은 著書를 내야 이름값이나 밥벌이에 유용한 세상이니 항차 직업으로서 문학을 꿈꾸는 문학도들에겐 생각이 많을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글을 써서 밥을먹는 일이 고달프기에 보기에 따라 이미 정점에 서있는 이름있는 작가들의 파워는 막강하다 하겠다.
목적하는 등단이나 문인의 길로 들어서려는 젊은이들이 문단의 기성세대에게 이를 원인으로 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문학이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까?
초장부터, 소설이나 시는 글일 뿐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라고 작정하고 달려 들어야 하나.
적어도 문인들은 서열관계에서 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노파심이다.
작은 끈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문학도를 꿈꾸는 입문자들에게 처음이라도 순수문학을 위한 문은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미 아카데미상에 버금가는 그래미상을 여러 번 받은 노장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이 화두다.
소위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은 그의 노랫말은 미국 교교와 대학교재에 실릴 만큼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알려지자 세계는 물론 한국문단에도 파열음이 일었다.
좋게 말하면 노벨문학상의 융통성이 넓어졌다는 것이고 언짢게 보면 소설과 시로 대변되는 문인들의 자존심이 구겨진 것이다.
문학을 다양한 방면에서 바라보려는 노벨위원회의 폭넓은 시각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 밥 딜런에게 문학상을 줌으로서 노벨상의 극치미를 이끌어 내려는 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정작 수상자인 밥 딜런은 노벨상수상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노벨상에 한이 맺힌(?) 우리들로서는 아리송하지만 상을 받고도 남을만한 문인들이 즐비한 한국문단을 들여다보면 한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필자 뿐 만이 아닐 것이다.
뭔가는 한자리 감투를 써야 먹고사는데 지장도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세상의 불편한 순환이 문학계에도 여지없이 적용되는듯 하여 드는 객적은 생각이다.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아이들은 어른 되나/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하얀 새는 쉴 수 있나/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전쟁을 해야 사람들은 영원한 자유 얻나/ 오 내 친구여 묻지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중략)/ 얼마나 여러 번 올려봐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나/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쳐야 사람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죽음의 뜻을 아나/ 오 내 친구여 묻지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밥 딜런의 대표곡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노랫말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안곡으로 불려 지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1990년대까지도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반전, 인권, 자유, 평등 등을 표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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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나 단체 한두 군데는 가입하여 활동을 한다.
각자의 삶이 다르니 서로의 다름을 대하는 사람들에겐 또 다른 학습의 장이다.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 역시 가히 폭발적이라고 표현 할 만큼 활동범위가 넓어졌다.
게다가 종교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활동은 대단함을 넘어 기이할 만큼의 파워를 자랑한다.
어떤 모임이 파행을 겪는 건 첫 번째가 금전문제다.
아무리 결속력이 좋다가도 금전문제가 삐걱이면 마치 춘삼월 눈 녹듯 내려앉는다.
두 번째가 사회적인 감투문제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보니 은연중에 사회적인 높낮이가 작용하고 여기에 서로간의 자존심이 대립하게 된다.
특히 경제적인 자존심 대결은 나이에 따르는 연륜도 무색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각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여간해서 회복하기 어렵다.
세 번째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이다.
오랜 세월 우리들은 정치적인 색깔론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고 작금에 이르러 많이 옅어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작은 모임이나 단체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치적인 양분관계는, 같은 고향 , 같은 학교, 같은 지역이라는 아주 고약한 진영논리에 쉽게 함몰된다.
개인들이 모인 작은 모임이 이러한데도 나라의 정치적적인 색깔에 대해 비판일색이다.
가장 큰 원인제공자는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할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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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 성실하게 살았지만 마땅히 내세울만한 명함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자녀들의 혼사문제나 취업문제가 닥치면 내세울만한 게 없는 명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속을 긁는다.
너그 아부지 뭐 하시노?
코미디 소재로까지 등장한 이 말은 현실의 꼭지 점을 콕 찌르는 말이다.
구세대보다 소위 N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더 민감하다.
자신의 스펙에 알파 플러스가 되어야 하는 처지니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결혼이나 취업에 부모가 한 가닥 하는 자리에 있다면야 싫어할 까닭이 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도 오랜 경험이 응축된 생활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회 선두자리에 서있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일이 갈수록 힘 드는 세상이다.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갑 질 논란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떠도는 개 돼지 발언도 갑 질의 전형적인 결과물이다.
너의 못난 것이나 궁핍함은 부모를 잘 못 만난 탓이지 사회 탓이 아니다 라고 항변하는 갑질 논란은 당장이 급한 젊은이들에게 심한 좌절감을 안겨준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표현되는 현대판 계급제도는 본인의 의지보다는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인 신분으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회에 대한 반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기 짝이없는 일이다.
직선적으로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출세나 명예, 부, 사회적인 위치 등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오랜세월 숱한 외침과 속박이 불러온 안타까운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자주성을 배제한 줄 세우기 식의 교육이 불러온 예견된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내미는 명함이 오로지 사회적 위치의 줄서기가 아닌 각자의 삶이 녹아있는 떳떳한 증표가 되려면 후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이것 말고는 이 고질병을 고칠 그 어떤 명약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돈, 돈, 하다가 여기까지 왔고, 그런데도 여전하니까 말이 필요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런 줄 알았더라면 돈 모으는 일에 매진할 걸 그랬다 싶어진 게 저의 최근 심사입니다.
서글픈 일인 줄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서 다시 산다면 저는 돈을 최고로 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돈이 사람을 쫓아야지 사람이 돈을 쫓으면 화가 온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웠는데요.
결국 종점에 가서는 돈 문제에 걸리겠지요.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젭니다.
그냥 돈, 돈, 하다가 한많은 생을 마치는 경우가 대다수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요즘 젊은이들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른들이 돈, 돈, 하다가 더 어려운 환경을 만들지 않았나 싶고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그 돈의 노예가 된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 돈의 위력을 엄청나게 잘 쓰는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교회에서도 돈이 많으면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국이야 돈으로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런 걸 굳이 문제삼는 사람은 참 유치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건 부를 지닌 사람마다의 차이이니 뭐라 할 수 없겠습니다만 교회에서도 돈 많은 사람은 알아줍니다.
귀신같이 알아주지요.
당장에 표시가 나니까 당연합니다만.
직위를 얻는데도 유리하지요.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흥종교단체들도 물욕없는 항차의 신세계를 외치다가도 성전이라고 좋은 건물을 짓거나 매입하고 여기저기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옆으로 갑니다.
분명한 것은 유독 돈 문제를 거론하는 종교단체에 매달리면 모두 헛수고라는 점입니다.
특히 기독교는 성서를 목숨처럼 아는 사람이라면 돈(재물) 과는 상극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돈을 너무나 좋아해서 하나님 , 예수님은 서열 3번입니다.
우리 사회가 돈이 어른인 사회이지요. 물론 어른이란 위상이 무너져서 그런 비유도 맞지도 않지만요.
감투를 한자리라 할 수도 있는데, 그 한 자리가 갑질이 되고, 금수저가 되고, 더런 넘의 세상입니다.
지난번 저의 마음아린 인연 이 생각납니다...
너그 아버지 뭐하시노 ......제가 학교 다니며 선생님께 친구들 부모님께 이 말을 들을 때에는 ...
예 지금 입원하시고 ...예 요즘도 누워 계시고요...네 요즘도 일 못나가시고 자리에 누워 계시는 날 많습니다.....
저는 이런 대답을 하며 사춘기 시절을 보냈었네요 .
그러며 ..친구도 내가 밀어냈고 이웃도 내가 밀어냈으며 친절도 내가 밀어냈습니다...스스로 사람들과 어울림 외면하며
꽃을 쫒았고
책 속에 머물기를 선택 했었지요...
철든 후 누구에게도 "너거 아부지 뭐하시노? "난 이런 질문 한번도 안 했지 싶습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당신 아버지 뭐하십니까? 물어 온다면
당당하게 대답 합니다 천국국민 되신지 37년차 이십니다.^^
요즘 하도 금수저 흙수저 하니까 그 축에 끼지못한 아이들이 주눅이 든 것 같아서 원인제공자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에 조카아이가 장가를 들었는데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이러더랍니다.
오빠( 요즘은 신랑을 아예 오빠라고 부릅니다.) 가 하도 가려먹고 깔끔을 떨어서 부잣집 금수저로 알았는데 알고보니 별 볼일없는 가난뱅이어서 막상 결혼은 했는데
앞으로 큰일이라고 말이지요.
매부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말씀처럼 더런 세상입니다.
그 근간을 살펴보면 여러원인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뿌리깊은 성리학에서
찾아볼 수 있지않을까해요...
청빈한 삶을 살다간 그아말로 선비들도 많지만
대부분 당파에 기대어 출세욕을 과시하며 당대를
휘어잡아야만 살아남았던 과거역사가 증거겠지요..
암튼 밥딜런의 노밸문학상이 시사해준바가 참으로 크네요..
그 상을 받고도 정작 본인은 내켜하지않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입니다.
출세도 성공도 좋지만 한 사람의 위대한 지구인으로
사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국민성을 키우는 대한민국이 될수있다면 좋겠다는..
열무김치님의 심도 깊은 글에 생각이 깊어집니다요~
말씀하신 게 상당부분 옳습니다.
힘있는 편에 서지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당대의 시회구조가 오늘을 잉태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밥 딜런이 노벨상 수상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노벨위원회에서 밥 딜런에게 비난을 퍼부었다는군요.
자신들이 수상자를 발표하고 반응이 없으니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 형편으로만 본다면 노벨상도 일종의 갑질을 할때가 있네요.
문화센터에서 반장을 뽑아줬더니만 수강생 명단과 연락처를 주면서
본인을 회장이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회장이라 불러라 이거지요!
아니 동호회장도 아니고 독서회장도 아니고 같이 수업 받는 마당에...
사람들이 써 있는 대로 회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반장이라 부르기도 했네요.
한 학기라고 해야 고작 서너 달인 것을...
대학 시절 해외 유학으로 박사를 받으셨던 분도
자기는 교수가 아니니 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했던 분이 문득 떠오릅니다...
모두가 부장 사장입니다.
부장님..사장님..
그런데 모두들 좋아하고 이를 즐깁니다.
어찌됐던 사장이라고 부르니까요.
행복감을 준다는 면을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습니다.
그런다고 세금이 붙는 것은 아니니까요.
언젠가 친구녀석이 명함을 주기에 들여다 보니 거창하게 OO회 회장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게 무슨 회장이냐?
응, 노인근로 한 열 분 트럭으로 모시고 다니는데 거기 회장이야.
제가 언급한 경우는 다른 반들은 다 반장님하는데 그 반만 회장님 하고 있으니 어색했지요.
어느 장소든 강의를 하면 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렇지만
열무김치 님 말씀대로 좋은 게 좋자고 하면서도 말입니당...하하^^
박범신 작가는 사과문을 다시 올렸군요. 얼마 전에 '나이 든 탓'이라고 해서 한방 먹더니만...
박진성 시인도 문학과지성사까지 나서서 사과했지만 문단병폐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건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만나본 적이 있는데 무슨 대학교수 명함에 어찌나 다른 직함이 많은지 앞뒤로 빼곡하게 돼있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대학교수라는 직함 하나면 충분할텐데 왜 다른게 필요했는지
게다가 대학 학과장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어찌나 거드름을 피시면서 상대방을 아랫사람 대하는 듯 하니
저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 좀 걱정되더만요
아 언제나 이런 갑을관계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제가 알고있는 양반이 모 의원에 출마를 했는데 전의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협회장서부터 시작하여 자그마치 스무개가 넘는 이력이 붙어 있었는데 문제는 그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저로서는 그저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출세하는 게 좋기는 합디다.
아마 갑질 문화는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겁니다.
그러면 갑에속한 사람들은 사는 재미가 확 줄어들테니까요.
오래전부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는 걸 보면 이 문제는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김영란법이 시작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많은 영향이 있으리라 봅니다.
아마도 권력욕 때문인 것 같습니다.
행사전에 한말씀 하시는 분들을 전 나리라고 부릅니다.
나리들이 행사에 많이 오시면 지루하기도 합니다.
다 맞습니다 고개 끄덕입니다
영감님 지금도 아스름한 눈빛으로 후회합니다
그 어느곳의 어수룩하게 쌈직했던 그 땅
그거 구입했더라면 지금 우리애들 아파트 한채씩 척척 사 주었을텐데 ....
내가 잘못 산거 같아
나 하나라도 꼿꼿하고 말짱해야지 했던게 지금은 모두 후회스럽다고 .......... ^^
자신의 성희롱을 담은 이야기를 펴낸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전 직장에서 '성희롱 방지 교육' 강사 경험이 있는지라
그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씁쓸했는지 모릅니다.
그 시인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논리를 안고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해당 책에 관한 느낌을 적어둔 적이 있습니다. ( http://blog.daum.net/yoont3/11301740 )
저는 지금 우리가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시간이 나서 가서 읽고왔네요.
젊고 예쁘고 귀여우면 모든 남성들의 눈길을 받고, 그러다 힘있는 사람들의 성 대상이 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아서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가 지금이 아닐까..다소 과장된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작가는 남성들의 이런 파괴적인 구애가 없다면 지구는 진작에 망했을거라고 썼더군요.
남성들이 재력을 가지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성을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피끓는 청춘시절에야 조물주가 허락한 사랑의 범위를 뛰어넘는 모험도 필요하겠으나 본연의 임무가 끝난 뒤의 노로의 사랑은 무겁게 가라앉아 삭힐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
내나이가 어때서..
사랑을 위한 약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데 ..
살아온 여정과 사고, 그 사람이 갖는 지식과 삶의 스팩트럼이 아무리 예술적이라고 해도 나이어린 소녀와의 사랑이나 스킨쉽은 추하게 보입니다.
글에서 쓰셨던데..
자네가 예술을 알아?
정말 서글픈 현실입니다.
감투를 쓰기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분들도 계시고
그까짓 감투가 뭐라고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꼭 저래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데
감투가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서열관계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님의 말씀처럼
사회 각 계층마다 순번처럼 정해져있는 서열과 감투에서 벗어나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고 행사를 진행하는
그러한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큽니다
특히 문학계의 감투는 외려 글쓰기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보아온 사람이라 글쟁이는 글로 승부하고
펜으로 세상을 이기는 문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의미 깊은 글에 머물게 됨이 행복입니다
가을비 내리는 오늘도 빗길 조심하시고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의 주위에 온갖 비선실세들이 나라를 망칠것이다"라고요. 정확한 멘트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리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권력이란것이 그렇지요. 아무리 청빈하게 사람을 대하겠다고 해도 자신이 감투를 쓰면 지시하는 쪽이지
따르는 쪽이 아니다 보니 거스르는 말, 행동에 달가워할 사람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성이 중요하기 하지만요.
요즘 비선실세라는 자들이 온통 나라를 말아드시고 있습니다. 노작가의 허물어진 추태가 고약하기는 하나
똥냄새나는 권력의 끄나풀들의 코미디가 더 울분을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