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연가**
밀 익는 마을
망초꽃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농사를 망치는 망할놈의 잡초여서 망초대라고 부른다지만 옅은 보라색으로 꽃이 피어나면 미움이 좀 가셔진다.
산뽕나무. 오디가 익어간다.
6~70년대
마을의 장사꾼들이 잘 익은 오디를 사들였다.
지금이야 뽕잎보다는 웰빙 식품으로 불리는 오디를 수확하기위한 목적으로 개량된 뽕나무를 심지만 당시엔 누에를 치기 위해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수요가 많아진 뽕나무 묘목을 얻기 위해 새카맣게 잘 익은 오디를 사들였는데 우리는 그 돈을 벌어보겠다고 종일 뽕나무에 매달려 씨름을 하곤 했다.
가격도 상당해서 한 되 정도 따 가면 제법 짭짤한 용돈이 생겼다.
그러나 개구장이 들은 오디를 따서 파는 것 보다 먹는 게 더 많았다.
달달한 간식거리가 거의 없었던 그때의 달콤한 오디의 유혹은 돈보다 더 강렬했다.
입이 시커멓토록 오디를 따먹곤 친구들 얼굴에 문질러 주는 장난질을 많이 했다.
얼굴에 보랏빛 오딧물을 잔뜩 바르고 욕심 없이 오디를 따먹던 친구들의 얼굴이 그립다.
농사를 많이 하는 집에서는 누에를 한 장에서 서 너 장까지 치는 집이 있었다.
누에 한 장은 누에씨를 붙인 종이의 크기를 말함인데 누에 한 장을 길러 나중에 고치를 따면 보통 12~15말 정도 분량의 누에고치를 얻을 수 있었다.
같은 누에씨라도 나중에 고치 수확량이 차이가 나는것은 어떤 뽕잎을 먹였느냐에 따라 누에고치의 크기나 질 면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농토가 많고 동네에서 하품깨나 하던 집에서는 밭둑이나 논가에 실한 뽕나무가 있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뽕잎을 따다가 누에를 쳤다.
하지만 소작농이거나 전지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누에 한 장은 어림도 없고 한 줄( 한 장의 사분의 일) 아니면 많아야 반 장을 쳤다.
그럼에도 누에가 석 잠을 자고 마지막 잠을 남겨두면 먹이활동이 강해져서 누에들에게 줄 뽕잎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는데 작은 누에가 하루동안 먹어대는 양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뽕잎이 달리면 이집 저집 보자기를 싸들고 산으로 내달렸다.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산뽕을 따기 위해서였다.
가까운 산에 있는 뽕나무는 여간 재빠르지 않으면 차례가 오지 않았다.
뽕잎 찾아 삼만리..
살을 좀 보태면 산뽕잎을 따려고 수십리 깊은 산속을 헤메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종일 산속을 헤메며 딴 산뽕잎 보따리를 메고 이골 저골을 헤집다가 땅거미 밀려들어 집으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었지만 그때부터 더 고단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에잠박에 쌓여있는 누에똥을 걸러주고 깨끗한 마분지나 신문지를 깐다음 누에를 옮겨주고 하루종일 따 온 뽕잎을 얹어주었다.
그 과정이 수월치 않아 밤 늦도록 작업을 해야 했는데, 청소와 이동을 마친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마치 소나기가 오는 듯한 소리는 하루동안의 피곤함을 잊게했다.
그러나 영양분이 턱없이 모자라는 산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는 몸집도 작고 누에고치도 작아서 집뽕을 먹고자란 누에보다 소출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밥술이나 잘 해결하면 모든 게 무사통과였던 시절
농사 말고는 소득원이 거의 없었던 때의 누에고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아서 농가엔 가뭄의 단비였다.
누에고치를 수매하는 날.
농협 수매장엔 모처럼 때 빼고 광을 낸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아가씨들이 분 냄새를 풍기며 모여 들었고, 자신이 길러낸 누에고치의 등위가 매겨질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벼 수매의 등급에 따라 가격이 틀려지 듯 누에고치도 같아서 등급에 따라 가격차이가 심했다.
산뽕잎을 먹고자란 누에고치가 수매관의 눈에 띌리가 없는지라 등급이 좋게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검수관의 눈치를 살피며 애원조의 눈길을 보내지만 이내 허탈한 표정이 되곤했다.
운동화, 흰 고무신, 화장품, 고등어, 꼬까옷, 막걸리, 자장면...
누에고치를 팔아 생긴돈으로 누릴 수 있는 모처럼의 호사였다.
뽕잎을 열심히 따고 심부름 잘 하면 누에고치 팔아 원하는거 해 주마 약속을 받았던 그 때..
얼굴 시커멓던 그때의 아이들은 손에 첨단의 핸드폰을 들고 비까 번쩍한 승용차를 몰고 살았던 마을로 간다.
입이 까맣토록 오디를 따먹던 기억도, 천진스럽게 웃던 친구도, 엄마를 도와 뽕잎을 따고 내 등에 등목을 해주던 누이도, 논과 밭 어귀에 서있던 뽕나무도 모두 옛 이야기가 되었다.
5월 빛나는 녹음앞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서있는 산뽕나무를 보니 드는 생각이다.
머위 (머구라고도 함) 는 보통 낮은 습지나 야산근처에 자라지만 특별한 경우도 있다.
해발 700고지 깊은산에 자생하는 머위는 키가 크고 줄기가 굵으며 실하다.
잡목들이 우거진 곳에 자라다보니 햇볕을 받기위한 쟁탈전은 이녀석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큰 키로 자라는 것 같다.
키작은 머위만 보다가 아이 키 만한 머위를 보니 마치 열대우림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들다.
삶아놓은 머윗대
음식을 만들면 담백한 맛이 난다.
취나물, 산에서 캔 더덕과 도라지
더덕재배가 늘면서 산더덕을 만나기 어렵다.
5월이 깊어간다.
이맘때 쯤이면 깊은 산속의 개울도 여름으로 달려간다.
*오대산
*오대산 천년숲길
5월 숲
숲에 들었더니
내 무릎
누으라고
사는 일
바쁨을 핑계로 피해다녀도
여전히 쫓아와 서있는 삶의 허수아비
숲에 숨어 우는 바람
가슴에 그리던 해맑은 그림
마침내
해바라기가 된 바로 그 바람소리
세월에 밉보인 얼굴로
엉거주춤 섰더니
설계도를 불쑥 내미는 숲
5월 가슴에 부는 바람을 잡으라고
490
먼저 사진을 여러번 보고
그다음 글을 보지요
ㅎㅎㅎㅎ
저도 사진을 여러번 보고(숨 좀 고르느라^^)
글을 읽습니당!
열무김치님, 숨어 우는 바람소리 몰래 들었습니다.
망초가 농사를 망치는 풀이라고 푸대접을 받았던 것이네요?
개망초...꽃이 계란후라이처럼 귀여운데, 이름이 풀(草)이라니ㅠㅠ
김치님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나 봅니다
힐링이나 정화된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숲 말고 그런 느낌을 가질때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보는 일...삶의 설계도를 받는 느낌,
누에를 한달 바짝 길렀지요
밤에 뽕을 먹는 소리 사각 사각 참 특이하지요
누에똥은 거름에 쓰고
정말 누게 등수에 따라서 가격차가 큰듯했어요
벼농사를 주로 하는데
봄가을 두번 누에 치면 정말 거금을 한꺼번에 만질수 있었나봐요
부모님들께서 아주 좋아하셨던 기억 납니다
누에가 잠을 잔다고 4번잠을 잔다고 했나
하루정도는 뽕잎을 안먹고 쉬는걸 잠잔다고
문득 김유정문학관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몇 번이나 다녀왔고, 한번은 그 산기슭을 돌아다녀보며
온갖 푸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 기억들 때문인지 열무김치님 글들이 시나 수필이나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굳이 한 장 골라서 가지라고 하시면 제일 아래의 사진을 갖고 싶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진이라면, 저 물에 들어가서 민물고기를 잡아야 하겠지요. ㅎㅎ
천년숲길은 이름도 멋지네요.
푸른 청보리밭도 낭만적이고,
흰찔레꽃,흰산수국꽃도,하얀 마가렏꽃도
5월 푸르름속에서 이상하게 순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저희집 마당에도 머위가 자라는데, 어떻게 먹는지 몰랐는데 줄기도 먹는가 봅니다.
장갑까고 저도 저렇게 해봐야 겠습니다.^^
아침 6시30분쯤 되었는데,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립니다.아침에 기온이 선선한가 봅니다.부엌으로 가봐야 할시간입니다.^^
뽕나무나 오디 구경은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즈음부터 뜸부기 소리를 들은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산뽕나무라고 하는 것도
이대근과 이미숙이 출연했던 영화 '뽕'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저는...밑에서 두 번째
오대산 천년 숲길, 저 사진이 좋습니다.
저는 세번째이기도 하고, 처음이었다 해도 돌자갈 보이는 저 계곡물 사진으로 할렵니다.
물 내려 가는 소리, 저만하면 넓은 계곡물인데, 여름에도 발 잠시 담갔다 내었다를 해야 할 정도로 차거운 물,
양편의 숲이 있고,
봉이 김선달님은 재껴두고 김삿갓님께서는 뭐라 하실까? 좋은 시 한 수 하시겠지요.
저 경치 보고, 어찌 시 한 수 지으시지 않으실까? 라고 웃습니다.
저의 고향에도 대마를 키워 길쌈을 해서 베도 짜고, 목화를 키워 무명베도 짜고, 누에도 쳤습니다.
저는 어려서 도시에서 가서 큰 벌레를 왜 키우나? 무서웠고, 소나기처럼 뽕잎 먹는 소리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뽕잎 따는 이웃집 처녀 고모를 따라 가면서 잘 익은 오디를 따서 저를 주었습니다.
그 밖으 것은 몰랐는데, 나락처럼 수매를 하고 오신다는 것을 알기는 했습니다.
농촌에서 만져 볼 수 있는 큰 돈이였지요.
올려신 글을 보니 뽕나무도 밭둑에 심으려면 밭도 많아야 해서 누에도 살만한 집이라야 많이 칠 수 있는 것이다 싶고,
왜 한장 이란 말을 사용 했는지를 몰랐는데 알아졌습니다.
지금 그 시절처럼 살아라 하면 그리는 못 살겠는데 그립습니다.
그러나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탓에 맑은 물이 연 중 흐르고 수량도 일정한 편이지요.
가을풍경이 압권입니다.말씀처럼 저런풍경앞에 서면 마른 장작개비 같은 사람도 시 한 수 나올만 합니다.
당시 농촌에서 몫돈을 만져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누에치기였지요.
지금은 한정된 농업으로 자리가 바뀌었지만 누에는 벌레라기보다는 농촌의 구세주 같은 노릇을 했으니까 가치로 치면 위대한 곤충입니다.
저의집도 누에를 자주 쳤는데 뽕나무가 많지않아 고생을 많이 했어요.
말씀처럼 ,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 하지요.
추억은 당시의 고단함도 아름답게 단장해서 보여주는 마력이 있습니다.
비쫑~
새 울음소리
개울을 지나는 맑은 물소리
예쁜 풀꽃들 웃음
5월연가...
들려 오네요^^
웬지 맑게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예쁜들꽃과 맑은 물과 향기날리는 아카시아..
그리고..음악..시.
봄으로써 애써 뭔가를 만들어 쓰지 않아도 보고만 있다가도 좋은 곳 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
저 계곡에 발 담그고
배고프지 않을정도의 주먹밥 한덩이 그리고 제가 가끔 마시는 캔막걸리 하나
괜찮지요
발 담구어도
단 목간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으면 클 납니당~
저곳은 청정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곳이라 보는 즐거움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캔 막걸리?
술 잘 드시나요?
제가 살았던 고향 평창엔 복분자, 딸기, 강냉이 막걸리가 유명합니다.
맛이 좋아서 자꾸 마시다가 나중엔 뿅~
자리에 오를 것이니 이기기릉 좋아하는
사람은 바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 일을
지키는 것을 병(물병)을 지키는 것처름하고
맛을 지키는 것은 성을 지키는 처름 하라
쾌청한 아침 뚝섬한강 공원입니다
록엄이 욱어지고 온갓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는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아름다운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불변의흙-
마치 살랑대는 새각시 한 숨같아요..
이런 찬란한 계절을 보내주신 신께
감사하는 마음^^
오대산, 천년숲길을 걷고 싶네요.
아직까지 오대산을 가보지 못했는데...
오대산 가게 되면~~~
혹시 오대산 가까운 곳에 사신가요?
열무님 사시는 동네 가면 연락이라도 한번 취해보게
핸드폰 번호 알려줄수 있으신가요?
이것 대시인가요? ㅎㅎ
블러거 남자분한테는 처음이네요. ㅎㅎ
더더 친해지고 싶어서요~ ㅎㅎ
일방적으로 알려달라고 하면 죄송하니~
제 번호는 010-4929-3415 입니다.
[비밀댓글]
애들 주르르 끌고 내려가 물에 손 담그던 기억이 나네요
저리 넓지는 않았지 여겨지지만
또 저리 반하도록 곱다란 빛갈도 아니었던거 같은데
우발적으로 내려간거 같아요
생각도 없이 반사적으로요 ...^^
물소리도 담아오고 싶었고
그 둘레 미리와서 자리잡고 울던 새소리도 담아오고 싶었고 ... ^^
아침밥 먹고 돌아 앉으면 따온 오디 굵고 잔 것으로 선별하고
작고 못난 것은 효소 담고 술담고
선별된 것들은 주문 받은 곳마다 택배 보내고 하느라..
하루 25시가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심은 뽕나무 아니지만
위 글 읽어 내려오며
그 밭에 뽕나무 심으셨던 지금은 고인이 된 그 분이
예전에 이런 생활을 하셨겠구나 .....알게 되며
..
그 때의 그런 삶이 지금에 와서 나에게
짭짤한 부수입으로 이어지니
윗 글 속에 머물며 ....
난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가늠 됩니다.
오디 선별하며 작은것들 못냄이들 어찌나 주워 먹는지
요즘 저의 입술은 늘 시커멓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