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던날의 스케치
"비가 오는날은 좀 쉬시지 . 보다시피 사람도 없어."
썰렁한 바람과 함께 들어서자 이내 커피잔을 내민다.
"이런 날 부침개거리 사러 많이 온다던데."
"그것도 옛날 못 먹을 때 얘기지, 누가 이런 날 부침개를 부쳐요. 누구 좋으라고."
커피잔을 홀짝이며 인적이 끊어진 썰렁한 아파트 골목을 바라 보노라니 마흔줄의 여 점주가 잠시의 정적을 깨트린다.
"비오는 날은 여기가 도시가 맞나 싶을때가 있다니까."
"이렇게 썰렁한 날 뭐하러 나다녀요."
"아이구야, 그럼 집안에 이불쓰고 누워있지 뭐하러 오셨을까나."
"사장님 걱정돼서. 흐흐.."
바람을 타고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렸다.
창가쪽에 서서 아파트 사이로 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왜, 첫사랑 생각나요?"
실눈을 치켜뜨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첫사랑이 지금 이 꼬락서니를 보면 댓바람에 줄행랑을 치지 않겠어요?'
"허긴..오늘 아침엔 머리도 감지않고 오셨네. 쥐가 집을 짓겠어."
쪼르르 들어온 꼬맹이가 이름도 없는 작은 과자캡슐을 만지작거리자 이내 소프라노 음성이다.
"얘, 너 돈 얼마 가지고 왔어. 오백원으로 안돼."
고사리손을 펴고 100원짜리 서너개를 보이자 이내 아이의 등을 떠민다.
"가서 엄마한테 그거 열개 달라고 해. 지난번에도 시켰잖아."
등 떠밀려 나가는 아이의 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올려다 본다.
"왜 나를 쳐다보니?"
"흐흐..쟤가 보기에도 사장님 얼굴이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거지. 딱 보면 모르겠어요?"
슬리퍼 차림의 아주머니가 수다스럽게 들어섰다.
"콩나물 500원어치 하구 두부 한 모 줘."
"500원이 뭐야.애들도 안 그러는데."
"돈 없어. 먹을 사람도 없는데 500원어치도 많은 거지."
"그렇게 못 팔아. 그냥 1,000원어치 가져가."
하얗게 눈을 홀기던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긋는다.
"그럼, 500원 외상."
대답할 겨를도 없이 아주머니가 바람같이 나갔다.
"와, 저 아줌씨 동작 한 번 빠르시네."
점주가 혼자 왈왈거리던 TV를 신경질적으로 껐다.
"얄미워 정말. 염치는 아예 국끓여 먹었다니까."
몇 점의 물건을 정리하고 입점할 품목을 적는데 늙스구레한 사내들이 들어왔다.
"안 준다고 했잖아요. 얼른 나가세요."
"돈 준다니까.우린 손님이야 손님.."
"필요 없으니까 얼른 나가세요."
"오늘은 현찰이야 현찰. 쐐주 두병이면 되니까 이러지 말자구."
출입문을 열고 몸싸움을 하던 점주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어쩌라구.
날보고 내 보내란다.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끼어 들라니.
"저기요. 다른데 가셔서 사서 드세요. 주인이 안 판다고 하네요."
"뭐야 당신은.."
볼것도 없이 삿대질이다.
이미 거나해진 얼굴은 싸늘한 날씨임에도 붉은빛이 역력하다.
미적거리자 점주가 매몰차게 출입문을 닫아건다.
다음에 오라는 손짓과 함께 빨리 가라는 눈짓이다.
차에 오르자 일행 중 한사람이 차문에 매달려 주먹질이다.
"그냥 가면 되나? 네가 이 가게 기둥서방이냐?"
"이런.."
부아가 확 치밀어 올랐지만 년배가 한참이나 위 인듯한 사내에게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출발 하려고 했지만 그 중 한 사람이 차앞을 가로 막았다.
"미쳤어 미쳤어. 노인네가 "
광경을 바라보던 점주가 뛰쳐나오자 차앞을 가로막던 사내가 보행로 옆으로 고꾸라지 듯 주저 앉았다.
빨리 가라는 눈짓에 출발은 했지만 백밀러에 보이는 점주와 사내들의 몸 싸움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유턴을 했다.
아무래도 그냥 도망을 가기엔 다음에 점주를 보기가 좀 어정쩡 할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마트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어거지가 날아왔다.
"내말이 맞다니까. 내가 저양반 되돌아 올거라고 했지"
"자꾸 이러시면 신고 합니다."
"하이고야..경찰을 부른다구. 불러, 불러 보라구. 좀 편하게 살아 보자구"
은연중에 나온말에 나도 깜짝 놀랐다.
이미 두사람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점주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한쪽에 서 있었다.
사내들의 행색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냉장고에서 소주 두 병을 내와서 같이 한 잔 하자고 거들자 주춤거리던 그들이 점포 한 쪽 구석으로 나 앉았다.
골뱅이 안주를 따놓고 소주를 따르며 안주를 권하자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워쩐 일이여? 신고 한다더니. 이양반 이제보니 수단꾼이네. 쐐주 두병으로 효부를 보시겠다?"
점주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 보았다.
눈치를 살피는 손님 몇이 다녀가고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자 술잔을 권하던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사내가 일어섰다.
"고맙수. 얻어 마셨으니 가야지. 이러면 될것인데 저 여편네가 성질이 영 지랄이야.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그렇게 보지 마시유.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야."
내가 웃자 점주가 빨리 끝내라는 눈짓을 보냈다.
사내들이 나가자 가게안이 이내 조용해 졌다.
저녁시간도 멀었고 사람들이 오기엔 애매한 시간이라고 했다.
"뭐예요, 저분들?"
"저분은 무슨..저기 건너편 건설현장 노무자들이지."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요."
"술을 작작이 마셔대야지. 얼굴이 삭아서 그렇지 노인들이 아니예요."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표현이 그게 뭐예요. 얼굴이 무슨 천조각도 아니고."
"고상한 척 하기는. 하고있는 일도 고상한거와는 거리도 멀면서.
그나저나, 오늘보니 직업을 바꾸셔야겠네. 프로야 아주."
"술꾼에게 술 준거 뿐인데 프로는 무슨. 사장님 말따나 나도 삭았어요. 소줏값 외상인거 알지요?"
"금방 닮았네. 소줏값 안 받을테니 당분간 오지 말아요."
5,000원짜리 한 장을 내밀자 거스름돈 대신 사탕봉지를 내민다.
"무슨 사탕? 내가 애도 아니고.."
"영업 하는 양반이 저렇게.. 오늘이 화이트데이잖아요. 누구한테 첨 주는거예요. 아직 애인한테도 안 줬는데."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거 아닌가?"
"그걸 아는 양반이 그렇게 분위기가 없어요? 꿈에라도 좋으니 어디 한 번 줘 보셔."
"그럼 , 이거 도로 받든지."
"저런 양반하고 사는 아줌씨도 보나마나야. 내가 인복이 없다니까."
사탕봉지를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은 건설현장이 부도가 나면서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하고 이곳을 떠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끔씩 가게를 찾아와 행패아닌 행패를 부려서 그동안 신고도 해보고 나름의 방법을 구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짓거리도 얼마 하지 못 하겠다는 여 점주의 푸념을 귓전으로 흘리며 마트를 나섰다.
"요새 저런 사람들 너무 많아요. 한때는 멋진 사람들이었을텐데.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테구.
모르겠어.어떻게 하고 사는 게 제대로 사는건지."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초록 바람이 불게다.
꽃은 피고 바람은 부드럽지만 이래저래 팍팍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도 사람이 아닌 푸르른 계절이 우리를 살린다.
봄바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부드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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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그 온기가 남은 곳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조심하는 마음으로 다니셔야 할 듯합니다.
열무님이 하도 글을 재밋게 쓰셔서 읽는 내내 낄낄대고 웃었어요
괜찮치요? ㅎㅎㅎㅎ
그런데 소설적으로 좀 각색을 하신거예요? ㅎㅎ요즘도 콩나물 오백원어치 사러 오는사람도 있는지요 ㅎㅎ
너무 사실적인 대화내용에 보지않아도 눈에 그려져요
그래요 그들도 한때는 멋진 사내들였을텐데..
집에선 그 사내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텐데..얼마나 속이 터질까요
또 뭣이든 팡팡 돌아가야 열무님 주머니도 두둑해지실 거구요
저런양반 하고 사는 아줌씨도 보나마나야~하는 대목에서 ㅎㅎㅎ
괜시리 짝궁도 내려뜨리길 왜 떨어뜨리십니까 ㅎㅎㅎ
아침 생각안하고 걍 웃어봅니다
좋은날 되시구요~^^
즐감하고 갑니다
품을 파고 들어서 춥지요. 따뜻함의 봄비 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날의 일진까지 더 춥게 느껴지는데, 그날의 사진은 아니지만,
꽃은 참으로 화사 합니다.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뭐 특별한 것 있냐? , 하는 뜻도 되고, 위로 쳐다 볼 필요가 없다는 말도 되는데,
요즈음은 일할 자리도 없으니까 사람 사는 것이 층층인 듯 합니다.
추운날은 따뜻한 국물이라고 잡수시고 다니셔요.
대낮에 이유없이 와서 시비거는 사람(입주민)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정년퇴직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
쓰신 글에서 비슷한 면들을 발견합니다.
저의 경우...
옛만큼 못하지만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봄꽃이 눈부시게 어여쁘고
봄날의 햇살이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오늘은 하루종일 흐리고 비가 내립니다.
아들녀석 수학여행 떠난곳은 어떤지모르겠어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라는 것도 점점 잊혀질 것 같아요...
얼굴이.삭아서.
얼굴이.천조각도.아니고.
(요 부분에서 엄청 웃었습니당^^)
그나저나 사탕은 사모님께 드렸나요?ㅎㅎ
돈값이 떨어지니 이 정도가 정상 가격 같지요.
요즘 돈 가치 너무 없네요.
한입 고구마 10킬로 오늘 더 보냈어요.
지난 번은 애견 간식용인데 입금을 너무 많이 하셨네요.
그러실 필요 없는데..
고구마농사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텐데 그런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마늘농사 끝나시면 올해 마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삭막해 보여도 아직은
정이 남아있는 곳이 많지요.
저 점주 아줌마도 사람은 착해보이시네요.
세상의 벽과 부딪혀 살려니 조금은 거칠게 살아내야 하겠지요.
좋은날 되세요.
그것은 봄볕이 떠난자리에 아직 다 못 떠난 겨울 잔해가 다시 들어 앉는 탓이겠지요.
빈곤도 그래요
봄 볕은 짧고
겨울 잔해는 여전히 쌀쌀하고
폭군으로 변해가는 노동자들 주머니에
빨리빨리 양지꽃 피어나고 노랑 나비 날아 들기를 바래요...
이래저래 노동자들만 죽어나는 세상입니다
이사람도 못살겠다 저사람도 못살겠다 팍팍한 우리네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