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느 가을날

*열무김치 2016. 9. 3. 00:03

몇 해 전,

추석을 며칠 앞두고 모 대형업체의 매장에 대량의 납품 발주를 받았다.

"이상하네. 그곳에서 이렇게 많은 양의 물건을 주문한 적이 없잖아."

미심쩍기는 했지만 평소 결재도 그런대로 되었던 곳이라 일단 사무실로 찾아갔다.

"어이구, 웬일이야. 이렇게나 많은 주문을 하다니."

나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납품 담당자는 그날따라 밝고 명랑한 얼굴로 응대를 했는데 문제는 거기서 출발하고 있었다.

"너무 많지 않을까?"

"형도 참, 매출을 많이 잡아 주는데도 문제가 있어?"

"그런 뜻이 아니잖아."

"오랜 간 거래를 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타 업체를 배제하고 형 물건을 받기로 한 거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의 납품상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느 정도의 추석매출이 급했던 나는 평소의 신용이 괜찮았다는 이유만으로 잠깐의 고민이 끝나기 무섭게 거액의 물건을 들여 밀었다.

", 결재는 추석 전에 50% 해 주고 추석 지난 뒤 나머지를 입금해 줄께."

평소와 달랐으면 심사숙고를 해야 했음에도 매출욕심에 선불 금 없이 납품을 하고나자 걱정이 밀려왔다.

 

추석을 하루 앞두고 50% 결재를 받기위해 사무실로 찾아 갔지만 담당자는 보이지 않았다.

"결재 때문에 왔는데 어디 갔나요?"

"무슨 결재요?"

"어끄제 납품한 거 오늘 50% 결제하기로 했습니다."

"그 물건은 아직 하나도 판매 한 게 없는데 무슨 결제를 오늘 한다고 그럽니까?"

"오늘 결재 약속을 해서 왔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담당자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어디에 있다가 오는지 담당자가 사무실로 허겁지겁 들어왔다.

"아니, 김 실장,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이 그렇게 됐으니 추석 이튿날 결재를 하겠노라 평소와 달리 비굴할 정도로 매달렸다.

"물건 다시 반품 할 테니 그리 알라 구. 거래금액이 얼만 줄이나 알아? 말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직원을 불러 납품했던 물건들을 차에 실으려 하자 곧바로 매장 대표가 쫓아왔다.

"아니, 사장님 , 우리가 거래를 한지 얼만데 이러세요. 결재 한다니까요. 우리가 언제 돈 안 줍디까."

갑자기 매장대표의 행동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면 처음부터 말씀을 하셨어야지."

"걱정 마세요.제가 누굽니까."

매장대표는 나를 가로막고 통 사정을 했다.

실랑이 끝에 대금 중 20%를 수금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 내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추석을 보내고 그 이튿날 늦은 시각에 전화가 걸려왔다.

농협에서 근무하다 퇴직 후 작은 가게를 하는 강 씨였다.

"윤씨,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이요?"

", 등잔 밑이 어둡네. 자네가 물건 많이 대주는 OO업체에 화재가 나서 지금 난리야."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부리나케 쫓아갔지만 이미 매장은 화재로 전소되어 철 기둥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매장에 있던 제품 조각들이 그으름을 뒤집어 쓴 채 시커먼 입을 벌리고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대리점 관계자들이 수심어린 얼굴로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니 윤씨,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아는 거 있어?"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 이예요."

큰 규모로 우유 납품을 하고 있는 오 사장은 얼굴빛이 거의 흙색이었다.

다행이 내가 납품한 물건이 적재되어 있는 창고 일부가 남아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납품했던 물건은 거의 사라졌고 이미 경고 팬스와 함께 모 은행의 딱지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화재가 난 뒤 9월 달이 다 흘러갔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리점 대표들이 모여서 대책회의를 갖고 변호사를 사는 등의 나름의 방법을 강구했지만 이미 치밀하게 계획된 화재사건에 대응할만한 뾰족한 방법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담보를 걸고 거래를 한 대리점들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엉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일을 위해 담보액만큼의 거래를 한다는 게 매출압박을 받아야 하는 의 위치에 있는 도매업자들로서는 거의 불가능 했다.

오랜 거래관계의 관행은 시간이 가면서 정도 이상으로 희석되기 마련이어서 법률적인 구제방안도 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고의에 의한 화재사건으로 매장 대표는 결국 구속되었고 문제는 더욱 꼬여갔다.

거액을 잃은 나는 시름에 잠겼지만 그렇다고 그냥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나를 믿고 따르던 입고 담당자가 나를 속였다는 생각에 자괴감과 함께 환멸감이 밀려왔다.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그에게 오랜 시간 정이 들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동안 지내온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큰 타격을 가하는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잇속이 오가는 거래관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인가.

 

가을이 저물어 가는 10월 중순

평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 저예요."

그였다.

난 한동안 말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 미안해요. 다른 말은 만나서 하기로 하고 내일 주문진으로 좀 와요."

급하게 주문진으로 차를 몰았다.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주문진 바닷가에서 만난 그는 몹시 초췌해져 있었고 나를 만나자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까지 보였다.

"왜 그랬어?"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울기만 했다.

"우는 모습 보여주려고 오라고 한 건 아닐 테고, 어떻게 된 거야?"

자기도 속았다고 했다.

절대로 나를 속일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도와주려고 했는데 매장 대표에게 당했다는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자네 경력이 얼만데 그런 눈치도 못 챘다는 말이야?  대표와 자네가 한솥밥을  먹은지가 얼만데."

"작정하고 달려드는 데 방법이 없더라구요. 형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 부른 이유가 뭐야."

그는 얼마간의 돈 을 내어 밀었다.

"당한 것도 분하지만 그동안 형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생각에 정말 괴로웠어. 정말이야."

나는 그와 함께 바닷가 백사장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움과 설레임의 가을바다는 시커먼 입을 벌린 채 무심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내 마음이니 받아줘. 결재 담당은 나였잖아.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 거 같아.

다른 사람에겐 연락도 못 했어."

억지로 넣어주는 돈 봉투를 받아들고 주문진을 나왔다.

오대산으로 넘어오는 진고개 를 넘다가 중간에 차를 세웠다.

이런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고 만사가 귀찮아져 있었다.

산중턱 도로에 앉아 멍하니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만추의 산허리는 온통 붉은 색으로 滿山紅葉 을 이루고 있었다.

좋아하던 가을색이 이렇게 보이다니.

평소 가슴 설레던 찬란한 단풍은 하루아침에 얼굴색을 바꾼 채 너무도 쓸쓸하게 서 있었다.

한참동안을 멍하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얼마간을 그렇게 맥 놓고 바라보자 곱게 화장을 한 나무들이 마치 나를 타이르는 것 처럼 보였다.

 

자네 욕심 때문이야. 이건 누구 탓도 아니라구.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그 일은 여기에다 버리고 얼른 집으로 가게나.

 

 

 

 

 

 

 

그래도 그 고통속에서도 몇해가 흘러간거네요?
그 울분을 삭히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ᆢ
이미 지나간 일이되었지만 잊을수 없는 쓰린 기억이기에 또 쓰게되는 것이지요
정말이지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고 뎀비는 사람한테는
속을수 밖에 없겠드라고요 ᆢ

저희도 오래전에 ᆢ그니까 저희가 가전대리점 했을때
늘상 오던 남편친구가 있었어요
그친구도 오디오 수리점및 전파상을 했었지요
한때는 잘 나가던 회사 개발실에 근무도 할정도로 똑똑했던 사람이고 참 착한사람이라 친구를 넘어 아주 가까운 형제 같앴어요
하루에 한번 아니면 이삼일에 한번은 꼭 들려놀고가기도 하고 그렇게 가깝게 지냈지요
어려울때 우리 물건판 대금도 빌려주고 받고 신용도 좋았었죠
그때 언제쯤 준다하고 사천쯤 빌려갔었고
그러고도 그날 아침까지도 왔다간사람 ᆞ
그날저녁에 남편이 전화를해보니 안받드라고요
웬지 느낌이 이상하게 든 남편이 그집을찾아갔을땐
이미 그 집은 텅 비어있고
동네방네 수소문 해보니 공항? 차
그런게 짐을싫고 가는걸 누가 봤다데요
공항으로 달려가보니 누가 가르쳐주는이 하나없고ᆢ
제동창중에 강력계 짱이 있어 어렵지만 알아봐달리했더니 그친구도 또 윗선에 부탁하여 알아본결과
카나다로 이민떠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친구가 뒤로 슬금슬금 준비하고
여기 저기 죄 돈빌려 튀었어요
그때 중ᆞ고등 딸도 있었는데 ᆢ
그런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남편은 화를 삭히느라 얼마나 힘들어했는지요
저는 그 화를 삭히게 하고 마음 접게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ᆢ
이제 시간이 가니 아득한 옛일같이 남의말같이 하게 되었어요
그친구 자기노부모님 한국 계신데 못들어오지요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ᆢ
열무김치님도 다시는 그런일 안 당하시겠지요?
돌다리도 두둘기시리라 믿고 또 믿습니다 ㅎ
호형호제하던 사람으로 부터의 배신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물론 고의성은 없다고 할지라도 내가입은 타격이 크고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정말 죽고싶을 만큼의 충격이지요.
저도 예전에 건축일을 하면서 그런일을 수 없이 당했지요.
소송을 걸어서 승소를 한들 없는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친구녀석과 동업을 했는데 자기가 사무실쪽의 일은 다 알아서 할테니
공사는 네가 책임져 달라고 해서 일을 했는데 돈이 나오는 날 친구녀석이
돈을 챙겨서 튀는 바람에 인부들 노임을 해결하느라고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서 아버지 돌아가시기 얼마전에 전화가 와서 보고 싶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들 식구를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12일인가 후에 전화를 했더니 날마다 술만 마시다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의 충격은 돈갖고 튀었을 때 보다도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부인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는 나에게 큰 죄를 지었다면서 늘 괴로워 했다고 하더라고요.
편안한 밤 되세요.
가을에 듣는 얘기는 이렇게 슬픈 얘기들이어야 하나 봅니다.

모든게 보는이의 마음에 달렸지요.
아무리 아름다운경치라도 마음문이 닫혀있으면 보이지 않아요.
마음이 우울하면 슬프게
마음이 즐거우면 아름답게
부디 올 가을이 열무김치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길 바랄께요.^^*
열무김치님!
저 아름다운 가을 빛 사진은 아름답기도 하고, 또 하루 하루 가면서 바람에 잎 떨어지고, 나목이 되겠지요.
저 사진을 보는 사람들 그 자신의 맘 형편대로 아름답기도 하고, 쓸쓸 하기도 할겁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 이지만, 그래도 맘의 상처를 깊게 입힌 이야기 이다 싶습니다.
참 악질입니다. 고의적으로 물건 많이 받아 놓고, 선불금도 주지 않고, 필경 고의로 화재 내고, 그 뒤가 승승장구로 풀렸을까요?
그 물건 대금들은 다 남의 눈물인데요.

잘 이겨내고 사셨습니다.
몽환적인 저 가을은 저리도 곱구만~
어느 가을날....에 겪은 일로 인해
상심이 컸으리라 봅니다.
살다보면..
비싼 수업료를 낼 때가 있더라구요.
그 공부는 평생 잊지못할만큼 내리에 남게 되구요...
더불어 자식한테 이것만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당부말씀하는 것으로 남기도 합니다.

가을이 오니...
그 어느날의 가을이 문뜩 떠오르셨군요.
이런일을 당하면 어떤 기분일까요?
아파본 사람이 아픈사람을 알수 있다는 말처럼 직접 당하지 않은 전
그 속을 온전히 알진 못할꺼 같습니다.
열무김치님은 이런 비슷한 일을 자주 당하시나 봅니다.
몇번 비슷한 일을 읽은거 같기도 한데 읽을때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습니다.

학원을 하다보면 비슷한 일을 겪긴 합니다,
이런일에 비해 그리 큰 충격은 아니지만..
일년씩 학원비를 미루고 내지 않고 이사를 가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게다가 학원비를 내지 않았는데 냈다고 상습적으로 우기는 분들이 가끔..
그냥 우리가 실수를 했다고 웃어 넘깁니다.
우리가 당하는 일은 열무김치님에 비해 새발의 피네요.
저 사진이 그때의 그 사진일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비슷한 일을 몇 번 당했습니다.
뻔히 결과가 내다보이는데 썰마 하는 생각이 판단을 무디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화가 나고 가슴이 떨리기도 합니다.
제가 도와준 그 만큼의 크기로 배신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제가 성선설보다 성악설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때의 여파일 것입니다.
참 마음 고생하시고
힘드셨지요
이렇게 지금 글로 쓸수 있다는것은 많이 회복되었다는 거지요
아름다운 단풍
저는 아름답게 보아야겠습니다
언제 또 아름다운 단풍을 볼것인가
사진부터 보며 만산홍엽이 안개(?)에 싸여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도 그렇게 연결되고 있는 걸 확인하고 어쩌면 이렇게 잘 맞아들었을까 싶었습니다.
다 마음에 그려지는 대로 보인다고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 가을빛은 정녕 우울해보이기 때문입니다.
봉투에 그리 많은 돈이 들어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주문진으로 오라고 한 이유는 좀 궁금합니다.
사진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여러가지 방향으로 평가를 받지요
저 사진을 보고서
저는 그저 참 아늑하게 내려오는 저 안개에 채색된 단풍잎들의 은은한 색감의 조화가 저에게 딱 맞는 분위기여서 아주 좋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나름대로 또 다르겠지요 ?

추석 명절즈음, 지나간 아픈 추억의 나뭇가지 한 개를 내려놓으신 열무김치님 마음이 한없이 짠합니다
어른이 되면 명절이 그리도 애잔하다 잖아요
그나 저나 날씨 시원해져서 그거 하나만으로 고맙도록 좋습니다
살다가 보면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힘드셨어요?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치유되지만, 그 순간의 힘든 정도는 말로 표현 못합니다.

추석이 돌아오니 추억이야기를 꺼내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런 일을 당하셨더랬지요
평소 호형호제하시는 분인데 어떤 사업에 투자하자고 해서
아버진 전재산을 그것도 친인척들 돈까지 끌어들였는데
나중에 어려워지니까 어디론가 잠적을 했는데 자기재산은 고스란히 부인명의로 돌려놓고
위장이혼으로 그집 재산은 다 건졌는데 저희는 빨간딱지까지 붙었었고
엄마는 거의 실신상태로 지냈었는데 몇년후에 우연히 명동거리에서 저하고 마주쳤어요
그래도 그분 양심은 있으신지 제 손을 잡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시면서
만난 이후 매달 제게 얼마간의 돈을 송금을 하셨더랬습니다
그것도 그 부인이 알고 난 후엔 끊겼지마는 그래도 미움은 좀 가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도둑 맞은 돈에 놀랍니다
그 다음에는 배신에 치를 떨지요...
그리고 그 후에는 마음으로 의지하며 정 붙이고 살던 가까운 사람조차
믿을 수 없어진 세상살이에 아파합니다...

그랬었네요
저도...

이제는 누구나 한번씩 힘겹게 배워야하는 비싼 공부였나 보다 ...합니다
말하자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누구나 한번은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앓이로 체험하는 홍역 같은거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