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놈 , 미친 놈 ,괴팍한 놈
외근을 다녀오다 배가 고파서 교외의 한 식당에 들렀다.
식당안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장사 안해요?"
"누가 와야 하지."
"저 왔잖아요."
"오늘은 안 해. 당분간 그럴 거 같어."
"그러지 말고 여기 한 상 내 와요."
"시내 나가서 사먹으라고. 재료도 없어."
실랑이 끝에 국밥 한 그릇을 내왔다.
"염소탕, 영양탕은 안해요?"
"어느 미친 놈이 와야 하던가 말던가 하지"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그 좋은 음식을 왜 미친놈이 먹어요."
"영업을 하면서도 저렇게 순진하기는..그럼 이런 외딴 곳에 미친놈들이 아니면 누가 와?
이런데는 그런 미친 놈들이 많이 와야 우리들이 먹고 산다고."
갑자기 시내 모 가게가 생각났다.
카메라와 각종 렌즈, 광학기계를 파는 집이었는데 렌즈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가끔씩 들렀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그 가게엔 점주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내 대로변이고 요즘처럼 카메라가 대중화된 것에 비해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요?"
"손마다 핸드폰 카메라가 들려 있는데 요즘 옛날 같지 않아."
"에이, 핸드폰이 카메라인가요?"
"그걸 누가 모르나. 그건 카메라나 렌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얘기고, 나같은 사람이 먹고 살려면 카메라나 렌즈에 미친 놈들이 많아야 한다고.
尹씨도 렌즈에 미쳐서 찾아 오잖아."
"에이, 무슨 표현이 그래요?"
"미쳤다는 말을 곱게 알아 들으라고. 관심이 지대해야 돈 아까운 줄 모르고 구매를 한다 이말씀이야.
그런 미친 놈들이 많아야 하는데."
헛~!
아내 몰래 렌즈를 구매해서 창고 깊숙하게 숨겨 두었다가 밤에 꺼내온 기억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 신세도 미칠지경이다...
**
농사를 할때다.
살던 마을의 계곡이 풍경좋고 물 맑기로 소문이 난 탓에 매년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문제는 그들이 남기고 가는 쓰레기였다.
마을 청장년들이 쉬임없이 치웠지만 가을이 오기전까지는 좀처럼 해결이 나지 않았다.
어느해 여름 동네엔 큰 사건 하나가 났는데 다름아닌 농작물 절도사건이었다.
어느 단체가 놀러를 왔는데 그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음주가무를 하는 바람에 동네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결국 동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를 하던 내가 나서게 됐고 술바람에 격해진 그들과 마을사람들의 싸움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이튿날 더 크게 벌어졌다.
그들이 텐트를 친 바로 옆밭의 고추, 감자, 채소등의 농작물이 상당부분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밤의 일로 기분이 몹시 상해있던 마을주민이 이를 참지 못하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적당한 선에서 해결을 보려던 이장과 나의 생각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경찰서까지 연행된 그들은 이장과 나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거, 아주 인심 고약한 동네일세. 놀지도 못하게 하고, 농작물 좀 캤다고 신고를 하는 이런 인심 사나운 동네가 어딨어?
이런 빌어먹을 동네는 난 생 처음이라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밤 새 소란을 피우고 , 애 써 가꾼 남의 농작물까지 무단으로 채취하면 어쩝니까?"
"돈 주면 될거 아냐.어차피 팔아 먹으려고 지은거잖아. 그까짓거 얼마나 된다고 신고까지 하고 그래."
"허...이사람들 말하는거 보게. 계곡에 놀러 오셨으면 조용하게 놀다 가시지 왜 농작물을 훔치고 그래요? 동네 사람들에게 위화감 주잖아요."
"농삿꾼들만 힘들게 일하는 줄 알아? 우리들도 힘들게 일 한다고.
우리같은 소비자가 있어야 농삿꾼들도 산다는거 몰라? 우리가 왜 미친 놈이야. 너네가 이상한 놈들이지"
그날 경찰서에서 그들과 마을사람들 간에 오고 간 대화 내용이다.
***
"코드를 보니까 타지역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반입하여 파는게 맞는 거 같은데요."
"일단 사진촬영을 해서 본사에 신고하고, 점주에게 어떤 경로로 물건을 입고했는지 자세하게 알아봐요."
그러나 찾아간 그 업소는 제품의 구매경로나 과정에 대해 모르쇠로 대했고, 당신네 물건 안 받아도 장사 하는데 지장 없으니 간섭하지 말라고 되려 으름장을 놓았다.
끈질기게 캐묻자 점주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도 장사 수완이야. 내 돈 가지고, 내 재주껏 물건 사다가, 소비자에게 더 싼값으로 판다는데 무슨 간섭이야.
아주머니 떡도 싸야 사먹는단 말 모르시유? 영업에 뭔 왕도가 있어?"
"그래도 상도라는 게 있잖습니까?"
"얼어죽을..무슨 상도는..
우리는 양반이지 . 상도로만 따진다면 기업이 열 숟가락은 더 뜨잖아.
걔네들, 도적놈 뒷 전으로 팔아도 일단 파는게 장땡인 애들 아니야? 신고를 해 보시던지.
허..이양반, 영업을 오래하기에 꾼으로 봤더니 이거 완전히 허당이네."
사진촬영을 해서 본사에 올렸지만 돌아온 답은 이랬다.
"더 좋은 물건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고 물리는 판매전선에서 상도를 외치는 괴상한 놈이 된것이다.
****
메르스 파동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들고 모두들 몸을 사리자 이번엔 그보다 더 큰 불만이 쏟아졌다.
소비가 위축되어 모든 분야의 상업이 쪼그라들고 이와 관련된 각종 산업이 정지되다시피 하여 이제는 굶어죽게 되었다는 불만이 그것이다.
정치적으로 그리 달갑지 않은 일본과 중국인들의 한국 방문이 확 줄어드니 관광업계는 줄초상이 났다고 호들갑이고,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대로 몇 개월이 지나면 모두 망할거라고 아우성이다.
특히나 제주도의 엄살아닌 엄살은 외국 관광객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도를 재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염병의 긍정적인 효과를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불가항력의 정치적인 힘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썩 반갑지 않은 세력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로 간단하게 저지 됐다는것이다.
다만 이것이 경제적으로 잠시 역효과를 낳은데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았으니 그게 문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괴상한 말이 있다.
현대인들은 내게 필요하든 안 하든 무언가를 사며 거기에 욕구불만을 푼다.
해서 생겨난 영업전략이 괴팍한 놈들을(?) 파고 들어야 성공 한다는 발상이다.
아내가 유명 메이커 가방을 두개나 챙겼다.
짠순이 아내가 제 돈 들여서 샀을리 만무인데도 참으로 괴이한 것은 그 가방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 났다는것이다.
"어떻게 된거요?"
"어떻게 되긴..하나는 며느리가, 또 하나는 딸이, 두개가 생기니 욕심이 나서 지름신이 강림하기에 충동 구매를 한거지."
전 같으면 그 비밀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을 아내는 태연하게 말했다.
"왜, 난 메이커 가방 사면 어디가 덧나오?"
"그런 건 아니지만 두개나 있는데.."
"의상에 따라 가방도 달라지는거지, 그럼 맨날 같은 밥에 같은 반찬만 먹소?"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당당해 졌나?
난 그런 아내가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남편으로서의 자존심 유통기한은 끝이 보이는 것이다.
또한 까불지 말고 세상 순리에 얼른 적응 하라는 신호다.
그러나 그 가방은 좀처럼 햇볕구경을 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음침한 장롱 구석에서, 괴팍한 여인네들을 홀린 외양과는 달리 서 너 번 햇볕구경을 하곤 한숨을 내쉬다 한많은 생을 마감할것이다.
외출을 할 때 일부러 물었다.
"그놈의 비싼 가방은 왜 안 들고 가는 거요? 뒀다 국 끓일 것도 아니고.."
"이 양반아,그 가방은 격에 맞는 옷을 걸쳐야 빛을 보는거지. 이렇게 후질그레한 차림에 그런 가방을 들면 갓 쓰고 오토바이 타는 격 아니오?
그러면 괜찮은 옷 한 벌 사 주든가."
결국 능력없는 내 탓으로 유명가방은 오늘도 장롱 구석에 쳐박혀 빛을 보지 못했다.
물건을 사용하던 안 하던, 소비자는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인 위치를 특정 물건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고 보상 받으려 한다.
비싼 가방은 이미 생필품을 담는 용도로서의 도구가 아닌것이다.
그것은 학력의 높고 낮음, 지위의 고하가 어느정도 결정지어주는 아주 괴팍하고 몰상식한 놈 인데도 소비자들은 절대로 그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그놈에게 빌붙어 제 속내라도 발려주어 외견상 흐믓해지면 까짓 후일의 고통 쯤은 얼마든지 인내한다.
상술은 이 괴팍한 놈을 바람잡이 내지는 바지사장으로 적극 내세워 눈에 보이는 뻔 한 거짓말을 일삼아도 여기에 태클을 거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내로라는 대형쇼핑매장에서 가끔 멍하니 제품들을 바라볼때가 있다.
저 수많은 제품들이 내 생활에 얼마만큼 필요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 한 번도 써보지 않을 것 같은 수백가지의 제품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마치 돈벌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꼬맹이처럼 말똥말똥한 눈을 뜨고 앉아있다.
틀림없이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탄생 했을거고, 그 주인공은 대박의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개성이 뚜렷하고 별난 사람들이 소비를 해야 생명을 유지하는 층들이 늘어나는 아주 특별한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것이다.
김난도 씨가 쓴 (사치의 나라 력서리 코리아) 에는,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한 강박관념이 곧 소비라는 형태로 나타 난다고 말한다.
그 소비의 형태는 상식적인 선을 뛰어넘는 경우가 허다하고 , 상식밖의 이런 행위들을 양분으로 고급브랜드들이 기생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괴팍한 성격의 소비자들이 사회의 경제 흐름에 필요 악인가 아닌가에 관해 굳이나 따질 필요가 없겠다.
어차피 이 사회에는 이상한 놈, 미친 놈, 괴팍한 놈들이 있을것이고 앞으로도 생길거니까.
또 그런 층들이 주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로 후대에 명품으로 남을 당대의 제품들이 등장하고, 비판과 질투의 대상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충족할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생겨날것이니 이는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상한 놈 , 미친 놈, 괴팍한 놈이 모두 딴사람이고 난 상관이 없는걸까?
이미 이 글을 쓰고있는 나역시 괴팍한 놈이 되었다.
미친놈도 뜻이 여러가지로 쓰이지요.
여러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적반하장 이라고 계곡 찾아와 놀던 놈들
잘못 해 놓고도 큰소리 치네요.
절도죄로 그냥 확 집어 넣지 그러셨어요.
편안하고 좋은날 되세요.
아내와 전라도 구례지방 운조루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옥의 대표적인 모형이어서 기분 좋은 날이었지요.
(저는 한옥 매니어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마을 공터에는 열 대에 가까운 관광버스들이 주차하고 출발하기를 반복했지요.
도시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시골집 담벼락 안에서 밖으로 가지를 뻗어 열매 맺은
감들을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따서 가방에 넣고 있었습니다.
"이봐요, 남의 집 재산인데 그건 도둑질이예요!"
참다 못한 제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어느집 개가 짖는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아랑곳 없더군요.
이상하고 미쳤으며 괴팍한 놈이 되고야만 날이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집단이성 운운하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미국이라는 문명의 선진국에서 소요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약탈. 방화 등이 일어나 한인들이 피해를 보는 기사를 자주 접합니다.
시골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집 감을 따던 그들.
그들이 미국인들의 약탈에 돌 던질 자격이 있을까요?
제가 볼 때는 전혀 필요없는 시설이고 전형적인 예산낭비인 사업이었죠.
동네에서 동의를 해줬는데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노인들은 모두 찬성 분위기이고
반대할 사람은 오직 저 혼자라 반대도 못하고 넘어갔죠.
반대 이유가 외부 사람 왕래가 잦으면 농산물에 손 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쓰레기 등이 발생하거나 물이 더렵혀질 염려 때문이었네요.
모두가 찬성하는 일에 혼자만 반대를 하면 역시 미친사람 취급받겠죠.
완성된 후 아직 다른 문제는 없지만 농로에 차량 통행이 많아져 경운기 몰고 가다 비켜주거나 대기할 일이 생기네요.
찬성한 사람들도 은근히 후회할 것으로 보네요.
[비밀댓글]
또 주제를 벗어난 얘기입니다. 남편(부군)으로서의 유통기한 연장에 노력하자는 말씀입니다. 자격기준을 따지면 미흡하거나 부족하거나 아예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물러앉을 수가 없는 일이니까 할 수 있는 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ㅎㅎ
소비형태가 상식의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어도, 시내에 나가보면 눈이 뒤집힐 물건, 음식이 얼마든지 팔리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싶지만, 그런 물건, 그런 음식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하여 이 나라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기하고도 고마울 때도 있구나 싶은 것입니다.
어쨌든 신기한 세상인 것이죠.
저또한 이상한놈 미친놈 괴팍한놈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을겁니다.
아마도 이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이 되겠지요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요!!ㅋㅋ
주말 잘보내시고요
제가 여기서 후즐근한 셔츠에 구멍 뚫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돌아다녀도 전혀 무색하지 않지만
서울에선 나이값을 해야 하니 제대로 갖춰입어야 밖을 나서지요
작년에 작은 아이가 사준 모 유명 브랜드 가방은 몇번 들지도 않았건만 똑딱이 자석이 너무 세서 한쪽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고치려고 갖다줬더니 물경 6주일이 넘게 걸리고 게다가 그까짓 똑딱이 자석 하나 다는데 육만원을 요구했습니다
육만원이면 웬만한 가방 하나를 더 사는데 말이죠. 당최 몸쓸 것이 유명 브랜드라는 말씀이지요
딸아이에게 앞으론 그런 것 사지도 말고 흥미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간의 허세가 외양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고심하는 우리들이니까요
제가 그나마 그런 성향이 없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가면 주눅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