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사랑
파란편지님 블에 댓글을 쓰다가 오래전 어느 산골총각의 사랑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몇 줄 적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산녹화의 구호가 한창이던 76년.
이태를 나무를 심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이 창수동이라는 아주 후미진 산골짝이었다.
길이란 본래 없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면 그게 길이 된다는 의미 심장한 말도 있지만 나무를 심겠다고 찾아들어 간 그곳은 그야말로 호랑이가 나올법한 흉악한 산골이어서 사람이 다닐만한 길이라는게 애시당초 없었다.
그나마 사람냄새가 나는 버덩에서 40여리를 더 들어가자 이골짝 저골짝에 갈을 꺾어서 지붕을 얽은 작은 집이 가뭄에 콩나 듯 나타났다.
목상을 하셨던 아버지가 어떤 연유로 이런곳에 위치한 山을 샀는지는 모르지만 철없는 내가 보아도 기가 찰 일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가 벌채사업을 하면서 얼키고 설킨 채무관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취득하게 된 山이었다.
그런 흉악한 오지의 땅값이라는게 당시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과장된 말로 누가 거저 주면 가져 갈 정도였다.
산이나 땅 한 평 값이 5원이나 10원을 했으니 당시의 화폐가치를 감안 하더라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는 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요즘도 못된 부동산 업자들이 재산으로서의 효용가치가 없는 땅이나 산을 헐값에 사들여 수십조각으로 지분을 나눈 뒤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을 꼬드겨 폭리를 취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싸게 사서 몇배의 차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욕심이 부른 화이니 동정의 여지도 적겠지만, 여전히 땅에 집착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때로는 원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싸리나무가 그렇게 굵은 건 처음이었다.
억새를 엮어서 지붕을 얹은 초라한 흙집 앞마당엔 싸리나무를 단으로 묶어 세워 놓았는데 그 양도 양이지만 싸리나무 굵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빗자루를 매는 싸리나무 굵기는 보통 손가락 정도인데 마치 통나무를 보는 듯 엄청난 크기여서 무슨 원시림에 들어 온 듯 한 기분이었다.
싸리나무를 아궁이에 넣으면 마르지 않았는데도 잘 탔다.
"이거요. 아주 잘 타요. 싸리 낭구로 밥을 하믄 맛두 좋구요. 자반을 꾸우면 기맥혀요."
그집에 살고있는 나이가 제법 든 총각은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곳에 싸리나무가 많은가 봐요."
"얼매 안올라가믄 엄청나요.힘이 없어서 낭구를 못허지요 뭐."
나무를 심는동안 단기간의 하숙을 하기로 정했지만 밥을 해 줄 할머니는 너무 노쇠하여 밥을 제대로 해 줄까 싶었다.
하지만 근방에 우리가 묵을곳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작년엔 복실한 처녀가 있는 산골집에 묵으면서 기타를 퉁기는 여유도 부렸지만 이번에 얻은 집은 워낙 작은데다 방이 좁아서 엉덩이 큰 사람은 돌아눕기도 힘에 부칠지경이었다.
그나마 안 한다는 할머니에게 억지로 매달려 허락을 받은터라 좋고 말고 할것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뒤에 알았지만 총각이 살고있는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애리애리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 처녀는 아담한 키에 긴 머리를 양가닥으로 땋고 있었는데, 이제 한창 피어나는 얼굴이라 복스러워 보였다.
진작에 알았더면 처녀가 살고있는 집에서 밥을 시켜 먹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알고보니 그집엔 우리가 묵을 방이 없었다.
그 처녀는 일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않아 나무심는 일을 하러 나왔는데 처음 볼때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탐스러워 보였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둥그스럼하니 살이오른 얼굴과 토실한 엉덩이는 이성에 눈을 뜬 내게 강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길게 땋은 머리는 마치 다른나라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미 교회에서 우연하게 만난 아가씨와 교제를 하고 있었지만 심심산골에서 만난 그 아가씨는 다른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낭구 심구면 월매를 줘유?"
처음 일을 나와서 대뜸 얼마를 주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는 아가씨가 못마땅 하셨는지 답을 하지 않았는데 나를 보더니 재차 물었다.
"하루에 1,500원이예요. 점심은 각자 먹구요."
내가 얼굴을 보지 않고 엉뚱한곳으로 시선을 두고 말하자 아가씨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정말 많이 주네유. 지도 일 좀 시켜 줘유."
하하..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품삯을 많이 준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터라 그 아가씨의 말이 참으로 신선하게 들렸다.
일을 하면서 보니 아가씨와 우리가 밥을 대놓고 먹는집의 총각이 같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 두 사람이 친척인가요?"
인부들에게 묻자 살풋한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때라우."
두사람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는데 봄날의 나른한 오후가 그들로 인해 심심하지 않았다.
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다 보았다.
***************************************************************************************************************************
"처녀가 심성도 좋고 한창때라 보기 좋더구만 . 빨리 장가를 가는게 좋지 않겠나?"
아침을 먹으며 아버지가 주인집 총각에게 넌즈시 일렀다.
"길쎄 말이래요.내말이 기말이래요."
총각은 웃기만 할 뿐 늙은 어머니가 대신 대답을 했다.
"어르신이 이제 부엌에 드나드시는게 힘에 부치시는구만."
총각은 웃을일도 아닌데 실실 웃었다.
"괜찮아유, 복순이 갸가 나말고 갈데두 없구유,지금맹키로 사는거나 진배 없어유.
몇 년 농사 더 지어가꼬서니 가도 늦지 않구만유."
총각이 자신있는 얼굴을 하자 아버지는 허허 웃었다.
"딴은 그렇기도 하겠지만, 뭐든 때가 있으이. 내가 보기엔 얼른 장개를 가는게 나을것 같네.
자네도 보아하니 나이가 심심찮겠는걸."
"예, 시방 서른 넷이구유."
묻지도 않는 나이까지 말하며 실실거리는 총각의 얼굴이 참으로 순진해 보였다.
꽤 많은 인부들이 일을 나왔지만 나이어린 처녀는 그 아가씨 뿐이었다.
아랫동네에 사는 사내들이 힐끔거리며 두사람을 바라다 보았지만 쥔집 총각과 아가씨는 너무나도 태평해서 차라리 처연해 보였다.
"이것 좀 드셔 보세유. 더덕 무친건데유. 봄더덕이라 맛이 옹골차구만유."
점심시간에 아가씨는 가끔 더덕무침을 내 도시락에 덜어 주었다.
총각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 볼 뿐 별다른 표정을 하지 않았다.
세상과 등진 외로운 산골에서 보름 가까이 나무를 심었다.
화전민이 많았던 그곳은 비록 비탈이지만 잡초를 제거하고 농사를 했던탓에 펀펀한 밭이 많았고 따라서 나무심기에 수월했다.
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면 어린 묘목의 활착이 힘들었겠지만 나중에 보니 나무의 자람이 여느곳과 큰 차이가 났다.
일하는동안 봄비도 두 어 차례 내렸고, 느닷없는 눈도 내려서, 잠시 쉬는것 말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무를 심은 덕분에 생각보다 일을 일찍 마칠 수 있었다.
일 끝나는 날, 품삯을 나누어주고 밥값도 계산해 주었는데 아가씨가 더덕을 한보따리 들려주었다.
"이거유, 봄에 캔거라 좋을끼래유. 집에 갖꼬가서 밍그시 잡숴 보세유."
나무가 활착을 하면 여름에 비료를 주어야 했기때문에 그때 다시 일을 나오라고 부탁을 하고 그곳을 떠나왔다.
비료를 주기위해 다시 그곳을 찾았다.
요즘처럼 둥그렇게 생긴 나무비료가 아닌, 나라에서 지원해 준 요소비료와 복합비료였다.
길이 없다보니 비료푸대를 일일이 등짐으로 나르느라 곤역을 치루었다.
비료주기는 4~5일이면 끝나기에 처음엔 출퇴근을 할까 하다가 그러기엔 너무 멀어서 봄처럼 며칠 총각네 집에서 묵기로 했다.
총각은 여전한 모습이었고 아가씨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가씨는 일을 나오지 않았다.
조금은 서운한 생각도 들고하여 총각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같이 데리고 나오라고 일렀지만 웬일인지 처음 일을 나오던 총각도 삼일째 되던날 부터 나오지 않았다.
오전일을 끝내고 너무 더워서 묵고있는 집으로 내려 오는데 총각과 아가씨가 콩밭을 매는게 보였다.
듬성듬성 훌쩍한 옥수수가 보이고, 이제 키 크기를 시작한 콩포기 사이로 잡풀이 얼마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얼른 봐서는 어느게 콩이고 풀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넓적한 호미로 잡초를 벅벅 긁어대던 총각이 나를 보더니 봉초담배를 꺼내 헐쯤한 종이에 말아서 물었다.
"왜, 일 안 나왔어요?"
"야, 이 콩밭이 복순이네끼래서 오늘 김 맨다고 혀서유."
이마에 맺힌 송글송글한 땀을 소맷자락으로 휘하니 닦아내며 총각이 욕심없이 웃었다.
"참, 요소비료지유? 그거 한 둬 푸대 주면 안될까유?"
"에이, 그거 나무 주라고 나온건데.."
"기래두유. 비료 사가꼬 오기가 엔칸이 힘들어놔서."
내가 그러마 하는 눈짓을 보내자 아가씨가 불렀다.
"빨랑 피우고 일해유. 해 넘어 가유."
총각이 웃으며 밭고랑으로 들어갔다.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 쓴 아가씨가 실팍한 엉덩이를 들썩이며 김매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다 보았다.
가슴엔 묘 한 충동과 상상이 일었다.
참 알 수 없는 인연이었다.
개울가에서 발을 씻고 있는데 총각이 나를 불렀다.
"저기요. 곤찮으면 강냉이 먹으로 와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찾아간 아가씨집 마당엔 쑥으로 모깃불이 피워져 있었고 마당 복판엔 감자와 옥수수를 찐 커다란 그릇이 놓여져 있었다.
"산골이래 줄건 없구유. 강냉이 찐거라두 먹어봐유."
아가씨는 민소매 차림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옷을 입어서인지 다른사람처럼 보였다.
늙수구레한 노인이 시커먼 놋그릇에 감자를 넣어 으깨고 있었다.
"이가 션찮아서유."
아가씨가 그릇을 빼앗아 감자를 으깨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크롬 살아유. 별 재주가 있어야지유."
총각은 넌즈시 아가씨를 건너다 보았다.
아가씨를 보는 시선엔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언듯 언듯 비치는 아가씨의 풍만한 가슴에 얼른 시선을 돌렸지만 나역시 묘 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과 달리 내가 옆에 있었음에도 두사람은 뭐가 그리도 재미난지 쉬임없이 웃고 떠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방해가 되는 듯 하여 옥수수 한통을 먹고는 슬며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나를 왜 불렀담?
소변이 마려워 야심한 밤에 일어났는데 산쪽에서 들리는 짐승의 괴상한 울음소리에 선듯 밖으로 나서기가 그랬다.
뒷간까지 가기는 그렇고 해서 적당한 곳에 웅크리고 소변을 보는데 어디서 웃는 소리가 났다.
귀신이 있다는데 이거 귀신이 아닌가 싶어 머리칼이 주뼛 서고 등골이 서늘해 졌다.
얼른 방으로 들어오는데 가만 들어보니 아가씨와 총각이 떠드는 소리 같았다.
누구나에게 있을법한 약간의 관음증이 발동 했을까.
난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이 세우고 깨금발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슴프레한 어둠속에 두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게 희미하게 보였다.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지 쪽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아가씨의 간지러운 목소리가 내 가슴을 방망이질 하게 만들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생전 배운적도 없는 낮은 포복으로 그들에게 다가 갔다.
"아이..이러지 마. 나, 이제 집에 갈래.."
"가매이 있어.뭐가 워때서.. 자기 너무 좋아."
"아이.."
거무스름한 야밤에 총각의 거친 숨소리와 아가씨의 교태를 납작 엎드린채 숨죽여 듣던 나는 다시 낮은 포복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을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방망이질 하는 가슴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튿날, 난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가씨의 간지러운 음성이 하루종일 귓가에 맴돌았다.
에라, 이 잡놈아.
***************************************************************************************************************************
그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고 난 군대에 가는 문제로 잠시 집에 있다가 군산에 있는 사촌형님에게로 갔다.
사귀는 아가씨와 소원해진 탓 도 있었지만 언제 징집이 될지 몰라서 집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군산에 내려간 나는 장삿일을 배웠고 한창 재미가 붙은 이듬해 징집이 되어 군대에 갔다.
그후로 난 산골아가씨와 총각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군 제대 후 시내로 나오려던 내 계획은 결혼과 함께 수포로 돌아갔다.
복합영농을 시도하며 야심차게 농사를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제대를 하던 여름에 나무를 심은 곳에 제초작업과 가지치기를 하기위해 다시 내려가게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무를 심으면 2년정도 비료를 주고 다시 몇년간 제초작업과 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식으로 얼마간의 국고보조가 나왔다.
오랜만에 내려간 그 곳은 제법 사람이 다닐만한 길이 나 있었고 낱으막한 산을 태워 화전을 일구는 사람들도 늘어나 있었다.
그때 총각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니 총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늙은 총각의 어머니만 우리를 시덥잖게 맞아 주었다.
"어디 갔나요?. 두사람 다 보이지 않네요."
할머니는 대답대신 다른 말을 했다.
"밥을 해 줄 수 없구유. 아두 집에 자주 없으이 농사도 안지유."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할머니는 더이상 대답을 하지않고 집앞에 있는 계곡 물가로 휭하니 내려가 버렸다.
별 수가 없어서 그날 점심은 집에서 가지고 온 빵으로 때웠다.
참으로 먹으려던 빵이 점심이 된 셈이었다.
별 생각이 없이 그날 일을 마치고 인부들의 이름을 적으려고 사람들이 모여 앉았는데 산 아래에서 아가씨가 올라 오는 게 보였다.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거라 반가운 마음에 얼른 아는척을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가씨는 고개만 까딱하고는 얼굴을 붉힌 채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저 아가씨 여기 총각과 결혼 안 했어요?"
인부들이 대답대신 웃었다."
" 거 ,잘 안될끼래요."
"왜요?"
"기냥 기래요."
궁금했지만 남의 일에 너무 궁금해 하는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을성 싶어 며칠간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총각은 한 번도 일을 나오지 않았고 아가씨도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비료를 주고 제초작업도 여러 번 했기에 더이상 일 할게 없어 한동안 그 곳의 일을 잊고 있었다.
도시로 진출하기로 한 나는 하던 농삿일과, 축산,산림업을 접고 시내로 왔다갔다 하며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시로 나온 나는 새로운 터전에 적응해 가느라 정신 없이 살았다.
몇 년 뒤 소나무의 솔잎혹파리 피해 문제로 군청에 들렀다가 우연찮게도 나무를 심던 곳 참나무골에 살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산에 심은 나무가 땅이 좋아 잘 큰다는 얘기와, 왜 시내로 나갔느냐 등의 잡담을 나누다가 총각과 아가씨의 근황을 묻게 되었다.
"그 사람 작년게 하늘로 갔어. 하긴 술을 웬수처럼 퍼마시는데 재간이 있나. 항우장사도 술 앞에서는 자빠지지."
"아니, 왜요?'
"복순이 갸가 핵교 소사랑 눈이 맞에뿌리서 거길루 갔지. 원채 없는 집구석이라 맨몸땡이로 갔걸랑. 거그서 좋다고 해서 델꼬 간거지."
"그럼, 총각은요?"
"그 빙신이 놓친거이지.진즉에 챘으면 아무 탈이 없을끼인데 꼴값을 떨다가 놓치뿌린기여.
아는 통통하니 실하고 씰만 했는디, 다 먹은 떡이다 맥놓다 놓친기지. 하긴, 갸 가 거 있어봐야 강내이 밭이나 매다 죽을낀데 갸 입장에서는 잘 된거이지."
"잘 된 줄 알았는데.. 참 안 됐네요."
"글코, 나 차이가 원채 나서 내가봐두 너무 찌울고, 노총각 갸 가 부랄 두 쪽 밖에 없다보이 기냥 뺏긴거이지."
"그럼, 총각은 왜 죽었어요"
"왜는, 그 뒤쿠로 실성이 돼 가꼬 농사도 않쿠 술이나 쳐마시다 시상 버린거이지. 다 지 팔자여."
'아가씨가 너무 했네요."
"내 볼찍에는 너무한거 엄꼬 , 복수이 갸 가 바깥바람을 쐔 탓인기라. 거개가 워디 사람사는게라?"
"그럼, 할머니는요?"
"진즉에 죽었지. 그게 언제라고"
왠지 가슴이 아릿해져 왔다.
"그 아가씨는 잘 살아요?"
"기럼, 얼라들을 셋이나 낳고 살다가 지금은 아매 시내로 나갔을 걸."
밥을 대놓고 먹으며 나무를 심던 그때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다정했는데 , 밤새워 속삭이던 사랑의 무게가 그것 밖에 되지 않았다니.
괜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때 빨리 장가 들라는 아버지 말을 듣지. 왜 그랬어 이양반아.
그랬더라면 지금 쯤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거, 옛말이 있잖여. 앞집 처녀 믿지 말라구."
참나무골 양반이 허허 웃으며 마치 누구 들으라는 듯 내 뱉았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
한쪽이 자살한 것으로 끝이 났으니...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하더라도 결말이 좋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산촌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조건이 달라진 환경에서는 변화될 조짐은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첫사랑이 실패해야한다는 교훈담도 그러한 연유 때문이겠지요.
앞집 처녀 믿지 마라...
하하~ 그런 속담이 있었군요.
당시 제가 겪어본 그사람의 심성으로 봐서요.
말씀처럼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순탄한 삶이 되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때 심은 나무는 하늘을 찌르는데 사람들은 모두 떠나 버렸습니다.
술을 많이 먹어 죽은 것인데
왜 저는 자살로 판단하고 읽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술병을 만들 만큼 술을 많이 마셨고 그 결과로 죽은 것이니
자살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순진했던 사람이 목숨과도 같은 연인을 빼앗겼으니 그 심정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당시 그 근방에 화전민이 많았지요.
국유림에 불을 놓고 밭을 일구어도 행정기관에서는 단속이 거의 전무했는데, 생각엔 단속의 손길도 부족했을테고 실상 그런 의지가 있었다고 해도
그 흉악한 산골에 올 수도 없었을겁니다.
또한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와 본다고 해도 별 수는 없었겠지요.
지금 우리가 먹고살만 해졌다고 깨춤을 추지만 불과 몇십년전의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그곳에 심은 나무가 거의 40년생이 됐으니 지금은 장대한 숲으로 변했지요.
그러나 지금도 나무가격과 땅값은 별로여서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는 기대치 이하입니다.
재미난 속담이군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자기 아내 조차 지키지 못한 못난 남편의
절규가 노총각에게는 자살로 다가왔네요.
"뭐든 때가 있으이"가 좋은 말입니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어른 말을 잘 들었으면 장개를 드는건데유.^^
그때 빨리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살았더라면, 사는동안 우여곡절이야 있을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일찍 세상을 버리지는 않았을것 같은데...
처녀 총각이 살았던 그 산골엔 지금은 아예 사람이 살지 않아서 마치 정글 같답니다.
차라리 화전을 부쳐먹던 그때가 나았습니다.
총각을 생각하면 슬픈일이지만 그 처녀 팔자가 바낀건 잘 된 일이군요.
열무김치님은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직접 보셨던터라 안타까운 마음이셨겠어요.
'찌울고..'는 '기울고'란 뜻이지요? 사투리들이 구수해서 무척 정겹습니다.
글고 사랑보다 조건을 선택한 그녀의 판단이 현명했단 생각이 들어요.ㅎㅎ
하지만 그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무척 큰 충격을 받았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맞는 말씀인지도 모르지요.
한편이 좋으면 다른 한편은 손해를 보는게 세상사 입니다.
하지만 그 총각이 워낙 사람됨이 착했던지라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군요.
현명한 선택...ㅎㅎㅎ
생각엔 그렇게 모진 선택을 할만큼 영악한 아가씨는 아니었구요.
워낙 가난 했으니 그게 원인이 되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연인을 떠나 보내고 외로운 산골짝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갔을 총각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더 크군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어느 오페라의 아리아가 생각나기도하고요....
다른 바람이 불어 흔드니 그 아가씨는 날아갔군요
그 총각이 넘 자신만만해 할때 읽으면서 좀 불안했었는데....
글을 읽으면서 사람의 인연을 함 생각해 보네요...
바람이 많이 부는 추운 날이네요...다녀갑니다^^
활기 차고 보람찬
좋은 시간 되시며
행복한 출발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아침 인사 드리고 갑니다 ~***
그렇게 묻고 싶습니다.
세월이 많이 가고,
그 사람들 도시로 우루루 몰려갔지만
아직도 사람들 살아가는 그런 곳마다
사랑을 잃고 가슴이파하는 젊은이들은 있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해피엔딩의 사랑이야기보다는 조금 비극적인 새드엔딩을 좋아해서인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글에 폭 빠져 읽었습니다. (성격이 그리 모난건 아닌데 왜 새드가 좋은지~^^)
관음증이란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는거겠죠..
이 글을 읽으며 저도 어릴적 사춘기즈음 골목길 끝집에 살았을때 한밤중 창밖으로 들려오던 남녀의 거친소리에
숨죽이고 슬그머니 창문을 열어봤던 기억이 떠올랐답니다.~ㅎㅎ
좋은 일만 있으시면 좋겠어요
한달의 시작이자 과거가 현재를 있게한 3.1절이네요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시간 되세요^^
태극기 다시는것 잊지마시구요!
새롭게 시작하는 3월은 행운이 가독한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순진한 총각이 아가씨를 잡지 못하고
보내야만 했을 때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형편과 처지는 이해가 되지만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줄줄 막힘없이 풀어내는 열무김치님의 맛깔난 글 솜씨에
금방 읽었습니다.
이쯤이면 단편 한권 분량은 족한 거지요?
바람결이 제법 잔잔했던 하루가 깊었습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십시오^^*
어느 곳에서 내용은 틀리지만 한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잘 쓰시는데 찾아보면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 사랑 들고 ㅡ[불교문예]을 두드려 보시지요 ㅎ
전에 쓴 몇편의 내용도 모두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썼구요.
블로그에서 그냥 끄적거려 보는것이니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지난번은 별님이 권면을 하시니 용기를 내어본것이고, 저의 이런 그렇고 그런 글을 들고 어디를 두들겨보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이제 제 글들이 어디에 실린다고 특별하게 달라질게 있겠습니까.
혹여나 글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한번 쯤 보아주는 장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본인의 글이 비망록이나 개인의 일기가 되겠지만 어차피 글이라는것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도 작은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블로그 친구분들이라도 이렇게 보아 주시면 족합니다.
제겐 별님이 그렇지요. [비밀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