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어묵 국물만 먹고왔다.

*열무김치 2015. 1. 6. 23:39

 

                                                                                외상값

                                                    

                                                        있으나 마나 한 가림막 사이로 들락이는 엿장수 맘대로 부동산 간판

                                                        어제는 쪼~기서  꽤 사가더니 오늘은 함흥차사네

                                                        철판 한 쪽 구석에 수북하게 쌓인 호떡

                                                        어디 식어서 사먹기나 하겠어요?

                                                        좀 싸가지고 가세요. 미안해서 어쩌나..

 

                                                        밀가루반죽 기름에 발라 지긋이 누르곤 허공을 본다.

                                                        사는이도 없는데 잘도 익네

                                                        천원짜리 덩그러니 빼꼼이 날 올려다 보고

                                                        대책없는 여편네

                                                        그만 좀 굽지

                                                        

                                                        

                                                        그놈의 외상값, 오늘도 글렀네

                                                        곧 잘 되더니 왜 이런데요?

                                                        잘 되긴 ..나 말고 누가 있다고

                                                        사람대신  만 제멋대로 들락이는 호떡집에서 어묵 국물만 훌훌 마셨다.

                                                        어묵값 여기 있어요.

                                                        이러면 안되는데..

                                                        희미한 전등불아래 아릿한 눈길만 두고

                                                        오늘도 난 바보같이 어묵 국물만 마시고 나왔다.

 

 

 

 

 

 

전화를 받고 그녀가 차렸다는 호떡집을 찾았다.

그래도 전화라도 했으니 너무도 반가워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OO 에서 큰 수퍼마켓을 열어 장사 재미를 쏠쏠하게 보던 그녀가 하루 아침에 가게문을 닫고 잠적한 것을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윤형 ,몰랐어?

허..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아니, 그렇게 둔해서 어떻게 장사를 해 먹어?

그 집구석 벌써부터 조짐이 좋지 않더라니. 대체 얼마나 물린거요?"

잡화를 대던 장씨가 호들갑스럽게 알려주기전까진 난 천하태평이었다.

"난 몰랐는데. 결재도 약속대로 해주고 해서.."

"물린 사람들이 꽤 되더라고. 우유를 납품하던 김사장은 천대가 넘는다던데. 그양반 보기엔 야무락진데 영 허당이야.

어떻게 그렇게 외상을 많이 줘? 혹시 그여자랑 짝짜꿍 아니여?"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부상 결재 받아야 할 금액이 기백만원이 넘는다는 걸 알았다.

장사도 그런대로 됐고 그동안 약속한 금액도 입금이  잘 되던터라 태평하게 믿고 있었던게다.

 

굳게닫힌 가게문이 열리자 모두들 달겨들어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인없는 가게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빌어먹을, 이럴거면 진작에 문을 열어 주던가. 이게 무슨 지랄이야."

영업사원들은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내어 차에 실었다.
"윤형은 왜 그렇게 장승처럼 서 있는거야?"

난 대답하기도 싫었다.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겨들어 가게안을 뒤지는 우리들이 왠지 서글펐다.

그깟 쌀푸대, 생활용품 몇 가지 챙겨가서 뭐하나 싶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이미 쏟아진 물인데."

"하이고야, 여기 또 도사 한사람 나셨네."

빈정대는 소리를 듣고 난 화물차에 올라 드러 누웠다.

 

도주를 했던 점주 부부가 나타나 빚잔치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동안 거래를 했던 영업사원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하지만 점주는 갚을 능력이 없었다.

빚잔치가 아니라 앞으로 벌어서 최대한 갚겠다, 하니 이해하고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금액이 많은 일부가 약간의 돈을 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은 헛물을 켠 꼴이었다.

"아니, 어느 놈 돈은 돈이고 내 돈은 돈이 아니란 말이여?  뭐 이따구 경우가 있어"

아니나 다를까 이내 거친 욕설이 오가더니 결국엔 멱살놀음으로 이어지고  주먹질로 번졌다.

난 거래장부를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혹시나 반 정도는 받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지만 예상했던대로였다.

싸움을 말리자 이내 험 한 욕지거리가 돌아왔다.

"뭐야, 이거..염장을 지르는 것도 아니고."

 

두어 달 지난 어느날 전화가 왔다.

잠깐 와 보라고.

반가움에 얼른 달려간 그곳은 도심 개발로 이제 막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선 외진곳이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나를 맞은 그녀는 호떡을 굽고 있었다.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하자 그녀는 웃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시내 안에는 자리를 잡은 사람들 때문에 가기 힘들고, 여기가 새 아파트단지라서 장사가 될 거 같아 호떡집을 차렸단다.

따끈하게 구운 호떡을 내게 건네며 그녀가 웃었다.

"맛이 어때요? 평가를 좀 해 주세요. 사실은 어제부터 시작 했거든요."

호떡을 받아든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많이는 안되겠지만 장사를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갚아 드리려구요.

지난번 그 난리를 치면서 아저씨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응원해 주세요."

"아..네.."

전화까지 해서 나를 불러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내심 대단하고 달리 보였다.

"잘 될겁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제 돈을 갚을 만큼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극구 말렸지만 그냥 나올 수 없어, 어묵국물을 곁들여 호떡 두 어개를 먹고 3,000원어치를 사들고 나왔다.

차를 몰아 멀찌기 떨어진 장소에서 포장마차를 멀거니 바라다 보았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빚보증에 사채를 끌어들여 시작한 남편 가게에서 포스랍게 장사를 하던 그녀가 과연 저걸 할까 싶었다.

한참여를 지켜 보았지만 포장마차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해서라도 남의 빚을 갚겠다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해 보이고 한편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내 돈도 받아야 되니 잘 되길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전화를 받고 찾아간 호떡집은 여전히 사람이 별로 없었고 1~2만원이라도 가져 가라며 내미는 돈을 받기엔 너무 계면쩍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그간 있었던 얘기를 하자 이내 따발총이 돌아왔다.

"영업사원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나시지요."

그후로 두어 번 전화가 걸려 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뚝 끊겼다.

분명 장사가 시원찮은 까닭이었다.

근처를 지나며 들러볼까 생각 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호떡집 근처에 대형 수퍼가 생기는 바람에 별 수 없이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곁눈질로 훔쳐 본 호떡집은 여전히 썰렁했고 어쩌다 꼬마들이나 아가씨들이 둘러서서 어묵을 먹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포장마차안으로 들어갔다.

"재미가 좋으십니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고 나를 바라다 보는 눈빛은 불안해 보였다.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저, 어묵 먹으로 왔어요."

어묵과 국물 한 컵을 마시고 그녀가 싸주는 호떡을 들고 나오며  천원짜리 지폐를 몇 장 두고 나왔다.

그녀가 차까지 따라나왔다.

멍하니 서있는 그녀의 모습이 백밀러로 보였다.

에라.. 이 한심한 놈아.

 

앞을 지나기가 그래서 뒤로 돌아 다녔다.

봄꽃이 필 무렵, 오랜만에 그 곳을 가보니 포장마차는 모두 걷혀지고 이삿짐 싸듯 둥그렇게 말아져 있었다.

"여기 호떡굽던 아줌마는 언제 그만 두셨나요?"
"그만둔지 한참 됐지요. 새 아파트단지라 여기가 좀 그래요.

앞 쪽으로 대형마트가 줄줄이 있어서 그리로 가지요. 장소도 좀 후미지고..그 아줌씨 사람은 괜찮던데."

하릴없는 부동산 아저씨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봄 되면 누가 호떡을 먹나요?"

 

만원, 이만원, 만 오천원...

그녀의 노력과 정성이 대단하고 고마워서 세차례 받은 외상금액이 장부에 적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많이 다쳐서 입원 했다는 소문과, 이혼을 하고 어디론가 멀리 떠났다는 풍문을 들은 건 그해 여름이었다.

 

 

 

 

 

마음이 짠합니다.
사는 게 왜 이리 고달픈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제가 선생님 입장이었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추운 날씨지만 그래도 인정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선생님의 고운 마음씀씀이를 느껴봅니다.
앞으로 지나기가 뭣해서 뒤로 돌아 다니고 국물만 먹고 오셨다는 그 마음에 눈물이 핑 도네요.
그 아주머니도 속으로는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을까요.
한번씩 들러도 나쁜 말은 안 하던 님께 많이 고마워하겠지요 지금도.
안 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우리동네 잉어빵 아줌니처럼 잘 되어 그 땅도 사고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했으면 좋았으련만.

사람살이가 물고 물리고 엮이어 돌아가는 것이 참 기막히지요.
열무김치님처럼 따스한 마음들이 세상을 이끌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등록금 두 번 빌려가고 연락도 없는 이웃에 살던 형님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만 알아도 좋겠는데...
나도 그냥 얼굴만 보고 올텐데...
심성은 참 좋은 사람이었군요..
호떡집에 큰 기대를 걸었던가 보네요..
안타깝습니다.

친구가 죽는소리하니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우리신랑 생각이 납니다.
20년전 완전히 망해버린 친구에게 나중에 형편피면 갚으라 하며 빌려 줬는데..
요즘 그 친구는 집도사고 골프도 열심히 치러 다니고..
하지만 우리신랑 돈은 갚을 생각을 안하네요.
신랑도 갚으란 말을 못하고..
내 돈은 소중하고 남의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도둑심보.. ㅎㅎ
그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 싶었습니다. 예전에도 더러 듣던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언제나 당하는 쪽은 당하고, 도망가는 쪽은 도망가고......
하기야 그런 일이 전혀 없으면 어려운 일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을 하신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위에서 호떡, 어묵 얘기 읽으며 무슨 얘긴가 하며 궁금해했더니......
이 글을 읽으며 저의 아파트 803호집이 생각이 나네요.
약 20여일전에 집달관들이 찾아와서 집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다 챙겨가고 집주인은 한번만 봐 달라고 하더니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갔는지
그집식구들 하루 아침에 어디론가 떠나갔네요.
이 엄동설한에 돈도없이 어디로 가서 사는지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선생님이나 그 호떡가게 여주인이나 모두가 마음 아프고 안타깝네요.
저는 제가 손해를 보아도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않으려고 무척 노력을 합니다.
편안한 날 되세요,
글에 열무김치님이 다 들어있네요.
착한심성과 인간됨의 그릇이 하도 커 읽으면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모질지 못한 성품에 어묵국물만 마시고 되돌아선 그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애궁 그래도 나는 돈벌어서 모두 은행 이자로 다 바치는데 ....
내가 더 잘사는건가 . 올해는 잘되겠지요 그렇게 항상 믿으면서 삽니다 [비밀댓글]

-.-

사는 게 죄다 소설이지요.
구수한 삶의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겠다 싶습니다.
까치밥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저으기 놀랍니다.
탐욕의 세대를 사는 인간세상을 생각하면서요...
비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