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속으로**
*원주 황둔
새파란 애들도 생죽음을 당했는데 나같은 쭈구렁 늙은이가 이렇게라도 사는게 미안한 일이지."
장모님이 계시는 바로 이웃집 할머니의 봄날 넋두리다.
콩이랑 고추모 를 심기위해 아내가 일찌감치 장모님께 가 있었던 터라 그걸 핑계로 유유자적 시골을 찾았다.
세상사 시끄러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듯한 한적한 시골의 모습은 이곳이 사람이 살아가는 곳인가 싶을만큼 적막하기까지 하다.
일찌감치 모를 낸 논도 보이고 고개를 내 민 감자싹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운전기사 혼자 탄 시내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휭하니 지나간다.
"저 버스기사도 심심할끼여.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는데 지 혼자서 왔다갔다 한다니께.
저것두 알고보면 미안한 일이지."
담배연기를 휘하니 허공에 뱉은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하루에 몇 번이나 들어와요?"
"꽤 되지. 그러면 뭘 혀. 늙은이들이나 어쩌다 올라타지 집집마다 차가 몇대씩 되는데 그 걸 뭐하러 타겠어."
"어쨌든 살기 좋아진거지요."
"뭐가 좋아져. 더 뻑뻑해 졌지."
할머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이 마당을 나선다.
"저기..삼겹살 사왔는데 좀 드시고 가세요."
아내가 상을 차리며 부르자
"고기를 먹을만큼 이가 좋으면 얼매나 좋겄어. 많이 잡수셔."
콩을 심고 고추모를 옮겨 심느라 뙤약볕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고라니놈이 또 올텐데 작년처럼 밭 둘레에 망을 쳐야지."
"설마 또 오려구요."
"아니여. 그놈이 이제는 사람을 봐도 얼른 도망도 안가고 멀찌기서 멀거니 쳐다 본다구."
장모님 성화에 할수없이 말뚝을 박고 시장에서 사 온 그늘막을 둘러쳤지만 엉성하기는 매일반이었다.
"아무래도 고라니가 헛웃음을 칠 거 같은데."
이런거 해봐야 소용이 없을듯하여 말했더니 아내가 옆구리를 치며
"잔소리 말고 그냥 하라는대로 해요. 설마하니 고라니도 눈치는 있겠지."
가만 있을때는 몰랐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땀이 흘렀다.
"저래가지고야..옛날에 큰 농사는 어떻게 지었는지 모르지."
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본 아내가 내가 못들을 줄 알았던지 엉뚱한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골병이 든거야. 거, 몸에 좋다는 흑염소탕을 한 번 달여 주던지 어떻게 좀 해 보라고."
"빨랑 해요. 저녁때 나가야 되잖아. 흑염소는 무슨 아까 삼겹살 먹었잖아."
연초록으로 빛나는 5월 녹음이 찬란하다.
스무살 청춘처럼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눈부시다.
이 아름다운 날들이 잠깐으로 스쳐 지나간다.
무심한 척 하려해도 아픔과 고통이 스며든 봄이다.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은 덤덤히 , 너무도 덤덤히 우리들 곁에서 본능으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
두얼굴을 가진 5월의 천연덕스러움이 밉지만은 않다.
살아가는 일이 억지로라도 예쁜 척 치근덕 대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마음시린 사람들도 또 살게 아닌가.
그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혼자 속으로 생각한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이러려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사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정신이 망가진다면 공연히 돈만 많을 필요가 전혀 없는 거지.'
'긴긴 여름날 점심을 굶고 지내던 그때 그 시절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하는 것입니다. 배는 고팠지만 인간답게 살던 그때가 차라리 그리운 것입니다.
이 아파트에서 몇 번이나 만났고, 나이든 제가 그때마다 인사를 먼저 했는데도
오늘 저녁 저 앞에서 만났을 때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중년을 보고 너무나 우울했었습니다.
왜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제가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하고 인사를 나누며 친밀하게 지내는 걸 엘리베이터에서 확인하는 그 애들의 부모들은,
아주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겠지요.
아, 좋은 곳에 와서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이 싱그러운 곳에서......
방송도 듣고보지 않고, 신문도 없는 곳이라면 드디어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걸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사정은 여기도 비슷하니까요.
제가 건축을 하기위해 살고있던 헌집을 헐었을때 이웃집들이 어쩔 수 없이 서로 마주보게 되었지요.
이곳에서 십수년을 살았다는 그분들은 그때서야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시골에서 살다가 나온 저로서는 그모습이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오히려 그러기가 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자주 보도 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자세로 다가가야 되는지 영 어색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를 바라보는 아이의 부모는 표현 하신것처럼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볼 것만 같습니다.
모두 산골짝 아무도 없는곳으로 들어가 살수도 없고, 주어진 숙제가 자꾸만 많아 집니다.
그래도 5월은 아름답고 지낼만 합니다.
그래도 세월은가고... 지구는돈다고 합디다...
- Helen of Troy
- 2014.05.15 05:11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저도 지난 주말부터 겨우내 눈이 덮여서 나가 보지도 못한 뒷마당을 정리 청소한 후에
오늘부터 씨도 뿌리고, 모종도 심으니, 허리, 무릎, 손목이 욱신거리지만
참 맘은 편안하고 뿌듯합니다.
다년생인 부추와 파가 그 사이에 잘도 커 주어서
오늘 야들야들한 채소를 버무려서 해물파전을 만들어 먹으려구요.
이렇게 손에 흙을 무치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으면 좋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
는 내용이었지요.
아픔과 고통과 분노가 넘쳐나지만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처연하게도 아름답고..
우리는 또 일상으로 복귀를 하고 있습니다.
일하고 회의하는 시간에도
창밖 날씨만 보듯,,
나가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진초록입니다.
장모님이 사시는곳은 첩첩산중인가 봅니다.
지난 연휴때 정선 레일바이크를 타러 가는 길에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산천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영월이었나? 그 한반도 지형있는 곳도 갔었는데.. 짚와이어나 레일바이크는 예약을 해야만 탈 수 있다는걸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결국 하루종일 드라이브만 하며 강원도 산골 구경만 하다 돌아왔지요.^^
속초시장구경도 무척 흥미있었어요. 1박2일에 나왔다는 가게들 앞에 끝없이 줄서있는 사람들구경이요.ㅎㅎ
사월의 통증을 고스란히 껴안고 시작한 오월이
미치도록 푸르고 싱그러운데
가슴은 초록에 베이고 눈은 시립니다
그래도 잠시 고개들어 짙어가는 초록을 보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이런 호젓한 곳이 있다는 게 어쩌면 다행입니다
올해도 장모님을 도와 채전밭을 일구시나 봅니다.
정오 햇살은 피하시고 건강 잃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주말 잘 보내시고요
대부분의 농가에서도 한두대의 승용차와 트럭이 있어 편리하지만
할머님의 말씀처럼 인심은 퍽퍽해진게 사실인거 같습니다.
엊그제도 밀양 오지같은 곳에서 시내버스를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더군요.
이제는 날씨가 여름날처럼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