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
아내가 갑자기 열이 불같이 일어 급하게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며칠 전 서울을 다녀오면서 몸이 무겁다는 말을 했지만 결혼식에 다시 갔다오고 제사를 지내는라 몹시 고단했던 모양이다.
다행이 독감은 아니어서 해열제와 포도당 주사를 맞고 가라는 의사의 권유에 응급실에 누워 링겔을 꽂았다.
옆에 앉았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듯하여 응급실 복도로 나왔다.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옆 의자에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다가와 앉았다.
그분은 휠체어에 앉아있는 몹시 초췌한 환자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방해가 되지않게 옆으로 비켜줄까 하다가 피하는듯한 인상을 줄것 같아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여보..사랑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거 알지?"
............
"그래도 이만한 게 얼마나 감사해.
앉아 있지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 여보?"
혼자서 계속 말을 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 쪽을 바라다 보았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언듯 보아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입은 반 쯤 벌어져 있고 고개도 몹시 무거워 보였다.
동공이 풀어져 있는 눈동자는 촛점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 말을 걸었다.
"봄이 오면 우리 꽃놀이 가자.
꼭 그렇게 할 수 있을거야."
마치 다정한 연인이 속삭이듯 하도 열심히 이야기를 하기에 슬쩍 물었다.
"잘 알아 들으세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듣기는요. 그냥 제혼자 하는 이야기지요. 그래도 눈은 알아 들어요."
"아..네.."
짧은 대답을 마친 그녀는 또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들 이야기, 이웃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등을 마치 상대방과 대화를 하듯 나직하게 속삭였다.
참 다정한 사람이구나. 저러기도 쉽지 않은데..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다 보았다.
링겔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응급실에 들렀다가 다시 복도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내가 옆에 앉자 그녀는 내게 음료수 한병을 건넸다.
"참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됐어요."
"무슨 사고를 당하신건가요?"
"얘기를 하자면 길어요."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왜 병원에 왔느냐고 그녀가 물었다.
내가 웃자 그녀는 땅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참, 바쁘게, 그리고 복잡하게 살았는데 이렇게 되니 참 단순해지더라구요.
그냥..이 양반하고 둘이 걸어서 나들이나 갔으면 하는 아주 쉬운 거 말이지요.
뭐, 숟가락 젓가락 내 마음대로 드는 거 그런거 말이예요.
생각해 보니 참 쉬웠던 건데. 그게 소원이 될 줄 몰랐지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되는거..
저도 8년전 많이 아팠었는데...
다 나아서 일상생활로 돌아오니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흐릿해졌네요.
하지만 뒤를 돌아볼수는 있게 된거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기 전에는 앞만보고 욕심껏 살았거든요.^^
옆으로 누워서 밥을 먹다가 좀 웬만해져서 앉아서 밥을먹게되었습니다..
그때 앉아서 밥을먹는 평범한일이..얼마나 감사한지...
범사에 감사하란말씀이 그때 절실히 가슴에 와 닿더라구여..
주일아침^ 나갈준비 해야겠습니다.좋은주일 되세요..
내의지대로 걸을 수 있음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하는 걸 자주 잊어요
사람이 없어져봐야 빈 자리가 큰것을 알고,
아파봐야 정상일때가 행복인것을 아네요.
평범한 일들이 행복이란것을 알때쯤엔
우리는 나이가 많이 들어있겠지요.
사모님은 좀 낳으셨나요?
몸살이셨겠지요?
이런 상태로 자리보존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나마 살아있는게 다행이랄만큼
순식간에 젊은 생명들도 사라지곤 하지요.
인사하다 쓰러져 숨을 거두는 사람도
있으니깐요.
결국 나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결 몸가짐 언어에 더욱 조심하고
겸허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 미다스 kan7ry
- 2014.03.17 16:37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사돈 어르신이 건강하셨는데, 어느날 갑자기 응급실을 갔는데. 풍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좋은 일 많은 날 되시면 좋겠습니다.
살아보니 행복이란 것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아름답고 완전한 것, 가장 귀한 것은 기대했던 당시의 현실 속에 있지 않았지요.
그 시간이 지난 후 반추해 볼 때 그 귀함을 알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진리를 또다시 깨닫게 만듭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참 어설픈 말이지만, 누가 아프다는 건 제정신을 차리라는 뜻이기도 한데 그걸 모르고 짜증스러워하니......
언뜻언뜻 제가 혼수상태일 때의 아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에게는 달리 할말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은 알아듣는다."
사실이죠.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하는구나. 짜증을 내는 건 아니구나.......'
어쩌면 더 많은 내용을 알아듣고 있을 것입니다.
숟가락 젓가락 마음대로 드는 게 소원이 되었다니 . . .
저도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래도 저 집은 참 다행입니다.
부인이 아직까지는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 청청수 -
참 좋은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의식이 없는 사람도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죠.
눈으로 알아듣는다고 말하시는 분의 심성이 참 곱네요.
그리고 많은 것을 깨우치셨네요.
사소한것에 감사할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위한 배려를 하실줄 아시는 분이지요.
사모님께서도 그만하시기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