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에서도 슬픈 노래는 흘러 나왔다.
*훈련중 포대원들과 함께 (79년) 나는 왼쪽 앞에서 두번째 철모를 깊게 눌러쓰고..모두들 어디에 살고 있는지....
78년 초 나는 최전방 부대에 있었다.연대 병력 대부분이 일정기간 동안 GOP(general out post) 근무에 투입되고 나머지 병력은 훼바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에서 훈련을 받는 군 생활은 어찌보면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난 포병이어서 GOP 근무는 하지 않았지만 부대가 경기도 O O으로 옮겨 오기까지 칼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소속부대가 연대 직할이라 내가 생활했던 군 막사는 지금으로 말하면 조립식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소대원들이 생활 하기엔 너무 좁아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다른 건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취침시간이 되면 칼잠을 자야하는 불편함은 부대를 떠나기 까지 큰 괴로움이었다.특히나 야간 경계근무를 하고 들어오면 잠자리에 들기는 해야겠는데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어떤때는 멍하니 앉았다가 아침을 맞기도 했는데 교육시간에 졸음이 밀려와 선임으로부터 혼찌검이 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본부소대 최고 막내였던 나는 페치카(pechka)와 난로에 땔 연탄을 퍼나르는 일이 일과중 가장 힘 든 일이었다.연탄을 저장하는 곳이 부대 막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몇 개월 위의 선임과 들것을 이용해 연탄을 퍼 날랐는데 때는 곳이 여러군데다 보니 연탄은 금새 떨어지기 일쑤였고 가끔은 불을 꺼트려서 고참으로부터 두들겨 맞기도 했다.두 사람이 비척 대면서 날라 온 연탄의 양이 사용량에 비해 턱없이 작다보니 나와 선임은 틈만나면 연탄을 퍼날라야 했다.퍼나른 연탄과 흙을 물로 적당하게 반죽을 해서 페치카 안에 넣고 구멍을 숭숭 뚫어 놓으면 빨갛게 불길이 올라 왔는데 얼굴에 연탄칠을 시커멓게 한 바로 위의 선임과 난 연탄불이 잘 피면 마치 무슨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손바닥을 치며 좋아했다."야, 내가 이렇게 연탄불을 피울지 누가 알았냐. 정말 상상도 못하던 일이야."그는 서울 명문대학교를 다니다 온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다.본부 소대원들이 식사를 할 경우 그와 난 번갈아 가며 식기와 숟가락을 챙겨야 했는데 그는 허둥대다가 가끔 숟가락을 덜 챙겨와서 고참들에게 혼찌검이 났다."얌마, 너 서울에서 대학 다닌거 맞어? 야, 니가 서울대학을 다녔으면 난 미국 하버드를 다니다 왔다 임마.."쩔쩔매는 그에게 고참들은 킥킥대며 조롱조로 놀려댔다.한번은 새벽에 함께 경계근무를 나갔는데 한참동안 말없이 서있던 그가 나에게 기대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아무래도 난 더이상 군대생활 못 할거 같아.맨날 연탄이나 퍼 나르고 식기와 숟가락이나 챙기려고 여기에 온 건 아니잖아. 이게 뭐냐."우리는 무슨 연애하는 연인처럼 서로 부둥켜 안았다.부족한 환경에서 자란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는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게 보통 병사와는 많이 달랐고 나와도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나보다 4개월 먼저 입대를 해서 고참들은 그를 선임으로 대하라고 서열을 정해 주었지만 고참들이 보지 않으면 그는 나에게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하지만 운전병 고참들은 고학력인 그가 뭐가 못마땅했는지 툭하면 그의 비위를 건드렸다.몇 개월이 지나도 우리 밑으로 후임병이 들어오지 않았다.참 괴이한 일이었다.
나와 그는 모진 겨울 연탄을 퍼 나르고 페치카에 불을 지피느라 손등은 동네 강아지 발처럼 되었다.그래도 연탄을 퍼나르기 위해 둘이서 연탄광에 올때가 가장 마음이 편했다.연탄을 퍼서 들것에 실어놓고 그와 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의 탈출을 즐겼다.그런데 어느날인가 부터 그와 난 대화가 많이 줄어 들었다.그것은 우리 사이가 안 좋아져서 그런 게 아니라 바로 연대본부 큰 건물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음악 때문이었다.보통은 씩씩한 군가가 나오는게 정상이지만 몇곡의 군가가 나온 뒤 곧바로 다른 음악이 흘러 나왔는데 그게 군가가 아니었다.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 폴모리 악단이 연주하는 이사도라 라는 곡이었고, 군에 오기전에 즐겨 들었던 박인희씨와 은희, 배호 등의 노래였는데 흘러 나오는 곡들이 (끝이 없는 길, 겨울바다, 안녕) 등 슬픈 곡조의 노래들이었다.우리는 연탄을 퍼놓고 멍하니 앉아서 그 노래를 들었다.날씨가 찼지만 노래가 흐르는동안 그와 난 팔베게를 하고 잔디가 깔린 언덕에 눕기도 했다.군부대에서 왜 저런 노래들을 틀어줄까?노래를 틀어주는 사람이 누굴까? 혼나지나 않을까?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점심 시간이면 어김없이 비슷한 음악들이 흘러 나왔다.난 그런 분위기를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참 이상한 일이야. 최전방에서 저런 노래를 들려 준다는 게...그런데 집에 온 거 같아서 좋기는 하네."나와 연탄을 나르던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어쩌다 시간이 되어도 노래가 나오지 않으면 그날은 뭔가 잃어 버린 듯 허전했다.
"아니, 어떤 놈이 저런 걸 틀어대는거야. 군기가 확 빠져서.."막사에서 호랑이로 통하는 선임하사가 욕지거리를 해댔다." 아새끼들이 군기가 빠져요. 저런 걸 들으면. 최전방에서 뭐 하자는거야.좀 배운 새끼들은 저래서 탈이라니까."그해 4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부대는 최전방에서 경기도 모 지방으로 옮겨 왔다.그 음악을 듣는것도 당연히 없어졌고 어쩌다 연대본부로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군가 말고는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정작 후방에 나오니 그 반대였다.왜 그랬을까?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오늘 빨간 우체통님의 블로그에( http://blog.daum.net/jasori) 들어가 보니 그때 가수의 노래가 실려 있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박인희(1947년생)
박인희氏는 숙명여대 불문과 재학중이던 1972년 이필원과 함께 혼성 듀엣 '뜨와에 므와'를 결성해 가요계에 데뷔했다. '약속' '세월이 가면' '그리운 사람끼리'등 매력있는 음색(애절함을 부르는 약한 떨림이 가미된..)과 호소력이 강한 화음으로 데뷔한지 불과 1년도 안돼 스타덤에 올라섰으나, 72년 박인희의 결혼으로 해체되고,두 사람은 각기 독립하게 된다.박인희는 74년 2월 첫 독집앨범 발표이후 76년까지 여섯장의 앨범과 한 편의 시낭송을 발표했다.시낭송 음반에는'얼굴'과 그녀의 삼촌이기도한 詩人 朴寅煥의 '木馬와 淑女'등을 수록. 당시로서는 파격적 형식이었던 이 음반은 큰 인기를 얻었다.71년 동아방송 '3시의 다이얼'로 DJ에 데뷰한 그녀는 방송 뿐 아니라,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등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수필집을 펴낸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수로 활동했던 기억이 아련할 정도로 DJ로서 더 오랫동안 대중과 만났지요. '가수 박인희'가 오래 기억된 것처럼 방송인으로서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라는 본인의 술회와 같이 그녀는 방송에 대한 애착이 커서인지 한때 LA 한인방송 라디오 프로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알려진 근황 자료가 일절 없다. *(http://cafe.daum.net/ookiiaozora/V0RO/136) 참조
날씨가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셔요~~^^
친추 맺고 갈게요 좋은 이웃 되어 보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여요
옆지기와 대학교 cc라서 군대 가기전부터
알고있었는데 부산으로
배치가 되어서 넘 편하게 군생활을 하였지요
울 옆지기와 같은 연배인거 같아요
옆지기가 한해늣게 입대를 한거 같은데요...ㅎ
실감나는 군생활의 글 잘 보았습니다..
참으로 비슷한 시기에...
전 그때쯤... 28사 수색대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 ㅎ
빼찌카에 분탄으로 불때는 게 정말 고역이었지요.
우리 부대는 상병 이상이 되어야 삐찌까를 만질 수 있었답니다.
4개월 차이가 나면 고참이 확실한데요? ㅎㅎ
좋은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과 지금 연락이 되시나요?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씀 진지하게 해드리고 싶네요
갑자기 영화 쇼생크탈출이 생각나네요
감옥에서 울려퍼지는 클래식음악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으면서도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는 그런 음악
그런데 군대는 아무래도 쓸쓸한 노래보다는 힘찬 노래가 더 어울리긴 하겠습니다
그 당시엔 많이 힘드셨겠지만 지금 글을 읽노라니 아름다운 추억 같군요.
우리 고등학교때 점심시간에 흘러나오던 음악들이 군대에서 흘러나오다니..
포병이셨군요.. 상진이도 포병인데 포병은 분대장이 그냥 계급이 올라가면 되는게 아니고
시험을 봐야 한다더라구요. 각 부대에서 50명이 모여 시험을 봤는데 한개를 틀려 2등을 했답니다.
그 시험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또 포상을 받아 내일모레 집에 온다고 하는데..
요즘은 휴가를 한달에 한번씩 나오는거 같네요.ㅎㅎ
분대장 노릇도 못하고 이제 휴가만 나오다가 제대할꺼 같습니다.^^
짚차...다찌차라고 불렸는대.
추운겨울날이면 옛전우가 생각나는 겨울밤입니다.
따근한 라면 한사발에 소주한잔 ~~~~카~~~
맛있지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입니다..
적응 못하는 게 이해가 갑니다. 살던 삶이 아니었으니 한순간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터.
지금은 좋은 시설과 환경의 내무반에서 군생활 하는 사병들은 복받은 문화인처럼 생각됩니다.
그러게요.
왜 슬픈 노래를 틀었을까요?
저도 궁금증이 입니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거짓말 섞어서 신이나서 이야기합니다.
윤선생님의 이야기는 거짓이 섞이지 않았네요.
그때는 군생활이 힘들었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시니 아름다운 추억이지요?
음악을 좋아하셨던 윤선생님은 그때 흘러 나오던 음악도 기억하시네요.
끊임없는 조롱, 폭언, 구타, 사역 . . . 그 조롱하는 것이 참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전 군대를 늦게 간데다가 몸집이 작아서 초기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병 직전 팀스피리트 나가기 전 토요일날 중대 졸병 전원이 고참과 2인 1조로
포항시내 외출을 내보내주었습니다. 그날 포항 술집과 다방을 돌면서 꼬장을 대차게 부렸더니
그 이후로 그런 일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지요.
6-70년대에 듣던 '이사도라'는 저도 귀에 생생합니다.
매일 밤 열시에 라디오에서 청소년 귀가 권유방송이 나왔는데
그때 시그널 뮤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수 박인희 님도 오래 기억에 남지요.
특히나 그 저음의 음색, 정말 좋았습니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 . .
그리고 놀러가면 꼭 기타치며 부르던 "모닥불"
유년시절의 추억에 노래가 담겨있는듯 합니다.
그 시절들이 그립습니다.
좀 까탈스럽게 굴면 형편이 나아지고 순한 사람들한테는 유독 더 그러고...
스트레스가 쌓이니 만만한 사람들에게 그걸 푸는 경향도 있습니다.
박인희 님을 좋아 하시는군요.
같은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 대부분 비슷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많이 변했겠지만 목소리는 여전 하더군요.
조카아이가 어끄제 군대를 간것 같은데 벌써 전역 한다고 하더군요.
풀방구리 드나들듯 휴가를 나오더니 금방 제대를 한답니다.
군대도 이젠 옛날 군대가 아닙니다.
- ★ 미다스 kan7ry
- 2013.12.06 21:23 신고
- 수정/삭제 답글
그 시절이 마냥 풋풋하니 그립겠지요.
그래요..우린 마음이 더욱 청춘이었늘때가 그립고 가버린 세월이
아쉽지요.. 그러니 남은 생을 더욱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래 한 곡이 그 때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할 줄이야...ㅎ
잘 읽었습니다.ㅎ
전화가 오는 바람에 다읽지 못하고 댓글을 다네요.
그 시절의 군생활이 참 힘든 시기였을겁니다 .
저는 37사에서 군 생활을하다가 나중에 73 훈련단으로
전출을 왔는데 창설된지가 2년되어서 고참들이 거의 대부분
타부대에서 사고치고 온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고 군기도
엄청 세었는데 군기보다도 더 힘든 생활이 집체교육이었습니다 .
부대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훈련단이다 보니 동원병 받아서 훈련을
주로 했는데 동원훈련을 하지 않을때에는 총검술 태권도 제식훈련
특공무술 등을 보통 몇개월을 반복하다보니 따분하기도 하고
힘이들기도 하더라고요 .
그시절만 생각하면은 지금도 이가 갈릴것만 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군대에서 들으면 당연 말이 없어지겠네요.
탈영하고 싶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추억의사진을 봅니다.
푸른군제복하며,계급장.다시 군생활로 돌아간듯합니다..
혹시~ 양평으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신내천에서부터~ 개군쪽에 있는 포부대에서 군생활을 하신분인듯한 뉘앙스가~~^^
즐겨찿기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20사단포사령부에서 (사단사령부앞에있지요) 근무했습니다..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제대 말년엔 사단직활대수색대에서 잠시 근무를 했습니다.
용문산유격장에서도 잠시근무하다가 제대를 했지요.
원주에계신다고요,저는제천에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블로그에서나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블로그 방문해보시기를,이글은 비공개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비밀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