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닭
가끔 토종닭을 팔러 다닌다는 차량을 만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보면 산란의 능력이 쇠태하여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폐계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토종닭을 판다는곳에 가 보아도 사정은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냥 일반닭을 놓아 길러서 사육장에 가두어 사료로 사육된 닭과 육질면에서 차이를 좀 보인다는게 다른점이다.
그래도 육질이 무르고 푸석한 일반닭과는 다르니 소비자들은 비싼값을 치르고라도 먹고싶어 한다.
지금 토종닭이 남아 있을까?
토종이란 말이 "본디부터 그땅에서 나는 종자" 라는 의미인데 이 말대로만 한다면 수많은 외래종들이 들어와 오랜세월 얼키고 설켰으니 본디부터 그땅에서 난 종자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다보니 생산량이 많고 크기가 큰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아직도 북한에서는 이밥에 고깃국이 지상 과제라는데 쌀 자급이 소원이었던 우리네가 그동안 거쳐왔던 과정을 보면 답이 나온다.
IR667.
어떻게든 밥 먹는것만이라도 해결해 보자는 염원아래 필리핀계와 대만계 그리고 재래종의 볍씨를 삼원교잡으로 연구한 끝에 탄생된 통일벼의 이름이다.
밥맛이 정말로 별로였던 통일벼의 개발로 단위당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국민의 밥 문제는 전환기를 맞는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먹는 문제는 절실했다.
혼식 장려니, 밀가루 음식 먹기, 절미 운동이나 전국 쥐잡기 운동을 펼친것도 알고보면 쌀 문제에서 비롯 되었다.
작금에 쌀이 천대를 받고 밥대신 빵과 육류가 대세를 이루지만 우리가 보릿고개를 넘은지 불과 40년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아주 오랜 옛날일 처럼 모두 잊어 버렸다.
구 세대들이 어쩌다 지난 보릿고개 이야기를 꺼내면 전설의 고향 쯤으로 흘리고 시대감각이 뒤쳐진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민이 소비하는 식량의 절대 부분을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수출국들의 눈치를 살펴야 할 처지다.
굶지않고 먹고 사는일이 우선이었던 50~70년대는 무조건 크고 많이 생산되는게 대접을 받았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재래종이나 토종이라고 일컬어지는 곡식 종자나 가축들이 푸대접을 받게된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체구나 크기가 작다는데서 비교대상이 되었고, 당시의 분위기로서는 아끼고 보존해야 할 유산이 아닌 척결해야 할 거추장스러운 대상 쯤으로 여겼다.
시골 처가의 닭장이다.
땅이 워낙 넓으니 밤에는 가두어 두었다가 낮에는 들에 방사를 한다.
가만 보니 지들이 알아서 들어가고 나간다.
대신 알을 밭이나 산, 들판에 제멋대로 낳아서 발견이 되면 가져오고 보지 못하면 그만이다.
주변에 이웃이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남의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으니 가능하지 그렇지 않으면 방사도 곤란하다.
퇴직후 농촌에 돌아가서 가축을 길러 보려는 사람들이 늘고있다.
임야나 전지를 사서 적당하게 축사를 짓는다던지 울타리를 치고 닭이나 오리, 돼지등을 기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축사가 30평만 넘어도 허가를 득해야 하고 제일 골치 아픈건 주변사람들의 시선이다.
농촌이 도시사람들 생각하듯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내 땅, 내 소유의 임야라 해도 주변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봐야 한다.
도시주변의 양계장이나 양돈장을 보더라도 혐오시설로 인식이 되어 얼마나 원성이 많은가.
여차하면 관으로 민원이 제기되고 집단 항의가 쇄도하기에,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다하여 관에서도 무조건 허가를 내주기 어려운 세상이다.
하니, 물 좋고 공기 좋은곳에 가서 가축이나 기르면서 살지 하는 분홍빛 계획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거친후에 해도 늦지않다.
재래종이란 말도, 한 지역에서 타 종과 섞이지 아니하고 오랜세월 계승되어진 곡식이나 동 식물, 또는 생활양식의 방편을 말함인데 이게 말 그대로만 한다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산속에 들어가 문명을 거부하고 독불장군으로 살면 모를까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우리가 말하는 재래시장이나 재래식 결혼등이 지금까지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형태가 아님에도 여전히 그리 부르고 이에대한 거부반응이 없는것은 그 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니 토종닭이니 재래종이니 하는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졌다고 한탄 할 필요도 없다.
소식을 듣자니 농진청에서 오랜 연구끝에 병에 강하고 체구도 단단하며 육질도 뛰어난 옛 토종닭에 가까운 맛닭 이라는 품종을 개발해 냈다고 한다.
제발로 다니면서 땅을 헤집어 지렁이도 잡아먹고, 들판의 풀씨나 각종 열매, 산야초를 뜯어먹고 자란 닭이 맛이 좋지 않을리 없고 영양학적으로 우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토종이니 재래종이니 하는 옛것을 찾고 그리워 한다.
알고보면 먹고사는 일에 진저리를 냈던 과거의 모습인데..역시 사람은 회귀동물임에 틀림이 없다.
각설하고
처가에 가면 제일 정성을 들이는 일이 갖은 약재를 넣고 닭을 잡아 고아먹는 일이다.
염불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눈이 간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것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추를 따주러 간다, 감자를 캐주러 간다는 둥의 그럴듯한 핑계거리는 순전히 들판에 놓아 기른 이놈의 닭 때문이다.
그걸 모를리 없는 아내가 알면서도 속아주니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동서고금의 진리중의 진리다.
아내역시 친정에 가는일로 이만한 핑겟거리가 없다.
언젠가 흉악한 산골에 산적두목같은 놈이 산에다가 닭을 풀어놓고 기른다는 소문을 듣고 처남과 함께 찾아간적이 있었다.
막상 찾아가니 억새로 지붕을 엮은 찌그덩한 집에 나잇살 먹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닭 구경을 왔노라고 하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처남이 안면이 있어서 거지 구걸을 하다시피 닭 두마리를 얻어왔다.
산속에 제멋대로 놓아기른 닭은 닭이 아니라 새 였다.
몇시간을 쫓아 다녀도 잡지를 못하고 허부덕거리자 혀를 차던 닭 주인이 무슨 망태 같은걸 훔치럭 거리더니 이내 닭을 잡아 왔다.
닭이 얼마나 큰지 목을 비틀어 숨통을 끊은 닭 두마리를 걸머지고 수십리를 오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한나절 가까이 고은 닭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살코기는 고래심줄 같았고 닭 다리는 말가죽 보다 더 질겼다.
그놈을 먹겠다고 털을 뽑느라 애를 먹은 나는 버리자고 했지만 처남댁이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커다란 가마솥에 닭을 다시 안치고 솥뚜껑 위에 커다란 돌멩이를 얹은다음 장작을 아름으로 지폈다.
굵은 통나무를 지피고 밤새 고았는데 아침에 솥뚜껑을 열어보니 쇠가죽 같았던 닭이 놀랍게 변해 있었다.
갈갈이 찢기는 가슴살이며 누런 국물은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경이로운 맛이었다.
그놈의 닭맛을 잊지못해 처남네도 닭장을 쳤고 그 이후로 저렇게 닭을 기르고 있는데 그 후광을 나도 누리고 있는것이다.
농사를 거들러 가면 바쁜데 언제 닭을 잡냐고 손사래 치면 어림도 없는소리, 재빠르게 가서 닭의 목을 비튼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이지.
시큰둥하더니 닭 잡아 고아 놓으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미처 내 먹을 새 가 없다.
제사가 있거나 애경사가 있으면 가지못할 사정이 생기는데도 퍽이나 처갓집일에 신경을 쓰는듯이 달려간다.
"남들이 보면 상 줘야 되겠네. 오늘 어떤 재수없는 닭이 또 억울하게 갈라나."
아내의 핀잔이 즐겁게 들리는건 처가에만 가면 붉으죽죽한 닭들이 반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때마다 열심히 일을 도와주고 나름 최선을 다하니 공짜닭을 먹는건 아니잖는가.
빈둥거리며 닭이나 잡아 축 을 냈으면 진작에 왕따를 당했을 일이다.
"저 웬수 또왔네..생긴거 하고는..
니 면상 볼까봐 강냉이 먹은거 소화도 안된다고.."
수탉의 절규가 들린다.
오래전 남편친구 처가집엘 갔었어요
가평계곡이었는데 저희가 가면 집에 놔 먹이던 닭을 잡아서 삼계탕을 해주시곤 했는데
재미있는 것이 그 아래집에 토종닭 요리해주는 집에서 실상은 시장 냉동닭으로 요리를 해주던 생각이 나네요
그야말로 재래종 토종같으네요
그 옆에 다소곳이 걷고 있는 조금 야윈 듯한 암탉이랑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 ^^
아주 오랜만에 보는 어릴적 고향 마당에 놀던 닭을 닮았어요.
열무김치님 들려주시는 맛깔스런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을 더듬게 합니다.
여긴 이제 단풍이 저 잘 생긴 닭벼슬 같습니다.
어릴 때 매일 알을 하나씩 낳던 닭이 있었습니다.
그놈 먹이느라고 여름날에 개구리며 메뚜기며 잡아다가 먹였는데
어느날 아버지 손님이 오시자 이 닭이 접대용으로 죽었습니다.
굉장히 서운하더군요.
윤선생님께 사진 잘 찍어 달라고 정답게 포즈 취하고 있네요.
글을 재미있게 쓰셨읍니다.
진짜 토종닭은 좋으네요.
토종닭은 모양도 아름답고 맛도 좋고....
슈펴에서 파는 토종닭이란것을 사며는 값은 좀 비싸지만
살의 단단하기는 거의 빗슷한거 같습니다.
맛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수닭의 절규가 재미있읍니다.
가격 차이가 나지만 일반 닭 보다는 낫더라구요.
시골에서 놓아 기른닭이 운동량이 많으니 뼈도 단단하고 육질도 좋으니 아무래도 맛 차이가 많이 납니다.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씨암탉 잡아주던 옛 풍습이 지금도 있지만 딝을 기르는 집이 별로 없어서 대부분 사다가 해 줍니다.
그래도 전 저런 닭을 얻어 먹을곳이 있으니 다행이지요.
농촌에 돌아가면 저도 닭을 좀 길러볼까 합니다.
정말 축복 받으신 분입니다.
오골계며 옛날에 보았던 잘 생긴 금술 좋은 닭 내외 멋진 사진 작품입니다.
맨 위의 사진은 오골계가 아니구요.
검정닭입니다.
오골계는 체구가 좀 작지요.
저녀석은 덩치가 큽니다.
주인 자랑이 대단했는데 맛은 어떤지 먹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밥만 굶지 말자고 개량된 통일벼
그 덕을 우리는 톡톡히 보았지요
가끔은 토종닭이라고 사서
먹어 보지만 진정한 토종닭이 아닌 폐계가 많지요
오골계며
처가에서 키우시는 토종닭을 보니
이 가을에 몸보신이 생각 납니다, 선생님!
- ★ 미다스 kan7ry
- 2013.11.11 16:18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지금 시골가면, 닭 보기가 힘들더군요.
예전에는 저희도 길렀는 데, 요즘은...
치킨가게에서 닭튀김이 된 녀석들은 35일된 것들이구요.
이렇게 보면...
인간이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닭을 제 수명대로 못살게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한 편으로는 좀 서글픕니다.
도회지에 사는 저는 닭을 스무 마리만 키우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데요.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군요. ^^;;
사료 또한 자급자족이 되지 않으면 보통 부담이 아닙니다.
녀석들이 먹어치우는 양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고기 1Kg을 만들기 위해 사료 5Kg이 들어간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해도 20마리가 먹는 사료를 농산물 부재료가 없는 상태에서는 보통일이 아닙니다.
말씀처럼 치킨가게에서 하루에도 수십마리씩 팔려 나가는 닭은 말 그대로 고기공장같은 사육장에서 단기간에 밀식 사육된 일종의 규격화된 공산품이나 마찬가지라고 봐도 무방 합니다.
더 확대 해석을 하자면 동물성 단백질이 포함된 사료를 먹고 단기간에 사육된 고기를 먹는일은 우리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 하다고 믿습니다.
그놈들이 좁은 우리안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사실은 사람이 할짓이 못되지만 우리들은 연하고 부드러운 고기만 찾았지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는 가축은 우리가 먹는 고기이기 전에 또 하나의 생명을 낳는 대상 입니다.
전방에 살 때, 종종 트럭에 닭장사가 옵니다.
닭을 잡아서 팔곤 했는데 연한 닭, 토종닭이라고 하여 샀다가 고무처럼 질긴 노계여서 못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귀한 손님 오시면 닭을 잡던 어린시절의 추억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열무김치님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최고십니다.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하셨으니 건강 생각 하셔서 건강관리 잘 하세요.
김장을 담가 놓으면 닭이 수난을 더 당했지요.
겨울엔 꿩을 잡아서 꿩 만두를 해먹곤 했는데 지금 꿩이 귀하잖아요.
해서 꿩대신 닭으로 만두를 많이 해먹다 보니 겨울철 농촌에서는 닭이 목숨 부지 하기가 여름보다 더 어렵습니다.
보통 닭고기 만두는 살만 발려서 하는게 아니고 뼈까지 다져서 만드는데 만두를 먹다보면 작은 뼈가 씹히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아이들 절대로 먹지 않겠지만 고기가 귀하던 당시엔 뼈까지 몽땅 먹었지요.
근데요..
뼈를 빼고 한것보다는 이상하게 뼈를 갈아서 만든게 맛은 더 좋답니다.
추억의 맛은 약간의 위험함도 맛있게 먹는 음식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요리를 하셨나 보네요.
저도 어려서 시골에 살때 꿩이나 토끼를 잡아다 드리면
어머님께서 칼등으로 고기를 조져서 요리를 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맛이 좋았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예전 시골에서는 저 정도의 닭들은 조금씩 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알을 주우려고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며 다녔고요 ^^*
특히 장닭은 빨간 깃털이 아름답지만 사나와서 붉은색의 옷을 입은 사람만 보면 막 달려들어 쪼고 할퀴고 했던 기억이 있답니다 ㅎ
그래서 어느 여름에 닭백숙이 되었지만 말예요 ㅎ
정겨운 고향 냄새가 나는 열무김치님의 블로그가 참 좋습니다 ^^*
방문하는 누구나에게 고향의 냄새를 맡게하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니 말예요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머물다 갑니다 ^^*
님의 글을 보면 단편소설을 읽어 내려가는거 같아요
사진속의 닭들의 귓털을 보니 참으로 튼실하게
잘 잘키운거 같아요..
유년시절에 그랬습니다
방사해 놓으면 짚더미속이나 타작하고 쌓아둔
보릿대 더미속에 둥지를 틀어놓고 알을 몇개씩 낳아둔것을
발견하곤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ㅎ
잠시지만 고향에 다니려 온듯 해요..ㅎ
맛깔나고 구수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블이 참.. 재미 있습니다... ^^* ㅎ
그래도 일도 좋아하고
맛있는 닭도 먹고
처가에도 즐겁게 가니 1석 3조네요!!
쫄깃쫄깃한 토종닭 먹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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