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1983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귀중한 줄도 모른채 남매를 낳아 길렀다.
객지에 나갔다가 어머니를 혼자 계시게 할수없어 마지못해 시골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목상을 하시며 전국을 다니셨기에 어머니는 늘 홀로 계셨다.
산골에서 농사를 해 보겠다고 시작을 했지만 경험이 없었던 나는 모든게 서툴기만 했다.
농사일이야 어떻게든 해나가면 됐지만 제일 마음에 걸리는건 아이들이었다.
어린 남매가 뛰어 놀만한 공간은 많았지만 같은 또래가 별로 없었다.
일하는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개울가로 나가 물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들판을 뛰어 다니며 놀아 주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멀리 사는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누렁이를 두마리 사왔다.
큰 쥐만했던 누렁이는 성장 속도가 빨라서 그해 초여름 중강아지로 자랐다.
하지만 잘 자라던 누렁이 두마리 중 한마리는 그만 쥐약을 먹고 죽고 말았다.
당시 쥐들이 많아 쥐약을 놓았는데 이를 먹은 쥐를 개가 먹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눈만 뜨면 누렁이를 끼고 살았다.
개가 어느정도 자라자 아이들이 개를 아주 못살게 굴었다.
신기한것은 누렁이가 어려서부터 아이들과 같이커서 그런지 여간 괴롭혀도 가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개등에 올라타고 짓 누르고 깔고 앉아도 눈을 껌벅이며 멀뚱이 바라다만 볼 뿐 아이들을 물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집안에 두고 일을 나갔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집으로 와 보면 아이들과 개 는 아주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도 개등에 올라타서 개 등은 털이 숭숭 빠지고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놀면 누렁이는 마치 형이나 누나처럼 멀뚱이 아이들을 지켜 보았다.
하지만 강아지는 그 해 여름을 보내고 늦가을 쯤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개 덩치도 너무 커졌고 아이들과 무작정 두기도 염려스러운데다 당시 개값이 좋아서 금전적인 아쉬움도 이를 거들었다.
누렁이가 팔려 가던날 남매는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들이 하도 울고 매달려서 생각을 바꾸려고 했지만 개 덩치가 너무커서
아이들에게 위험 하다고 아내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개장수가 좁은 철망에 누렁이를 가두어 화물차에 싣자 아이들은 개를 팔지 말라고 나에게 울면서 매달렸다.
그런데 더 희한한것은 누렁이가 난리를 치며 울부짖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장수에게 이끌려 처음 철망에 들어 갈때만 몸부림을 쳤을 뿐 이내 별 반응 없이 우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다 볼 뿐이었다.
누렁이는 그렇게 아이들을 떠났고 그 이후로 또 작은 검둥이를 사다가 아이들에게 주었지만 아이들은 더이상 개 등에 올라 타지 않았다.
객지에 나가있는 아이들에게 가끔씩 전화가 온다.
자기들 일이 바쁘니 시간이 갈 수록 만나는 횟수도 줄어든다.
부모 마음은 아직도 누렁이 등에 올라타서 장난을 치던 그때 그모습인데
세월은 어느덧 아이들을 다시 부모가 되어야 하는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토요일..서울로 올라간 나와 아내는 모처럼 아이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나를 길러주신 부모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것 같다.
부모는 자식에게 한없이 정적인 존재로 지나간 일들을 그리워 하고 자식의 먼 앞날을 걱정하다가 세상을 뜨는것 같다.
시간은 유한하고 또 쉬임없이 흘러 가는데 자식에 대한 아련한 마음은 늘 정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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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구슬프게 울면서 이삿짐차를 쫒아오려고 안간힘을 쓰던지 참 슬퍼서 다시는 개 키울 생각을 안합니다
요즘 유기견들이 참 많은데 임시 생각으로 개를 입양 했다가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군요.
당장 제 동네에도 고양이나 강이지들이 돌아 다닙니다.
잡으려고 해도 도무지 잡을 수가 없어서 신고를 했는데 여전히 돌아 다닙니다.
비가 내린뒤 추워질줄 알았는데 다행이 기온이 많이 내려가진 안았어요.
한주간 좋은 일들 많기를요.
도시로 나왔다가 다시 농촌으로 들어간 것이군요
어린시절 쥐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불상하게 우리개도 죽은 적이 있었지요
누렁이가 팔려가던 날 아이들은 물론이지만 길어온 자신으로써도 괴로웠겠습니다
정들면 모두가 헤어지지 섭섭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제 살길로 나갔습니다
부모마음은 자식을 키워봐야 안다고 하잖아요
자식들과 오붓한 시간도 가져보고 좋습니다
휴일저녁 행복하세요ㅡ열무김치님
따뜻한 글에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 많은 도시생활에서 제게는 힐링이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집에서 기르던 개가 쥐약을 먹고 와 죽었는데...
말못하는 짐승이 괴로워하던 모습이 엄마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시데요. 어릴적이라 제 기억에는 없어요.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어 키우지 못하고 있어요.
오래 전에도 개를 키웠지만 그땐 제가 직접 밥을 주지 않고 밖으로 데리고 다니지도 않아 별 생각이 없었죠.
이번에는 밥주기 부터 모든 것을 직접 챙겨주다 보니 조금 다른 느낌이 들어
개가 앞으로 최소 16년은 더 살 수도 있는데 그때까지 무병 장수한다면 키울 생각입니다.
개에 관한 미담이 구전으로 전해지는데 ,그런 것이 다 사실일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물론 주인에 대한 충성이라 치부하면 간단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란 느낌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교감한다면 조금 이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그런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개 재롱이를 키우면서 한번 겪었지요.
개가 꼭 본능에 의한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83년에 저렇게 큰 아이들이 있으셨다니 너무 젊어 보이셔서.. ^^
아이들 표정을 자연스럽게 너무 잘 찍으셨어요.
우리 신랑의 어린시절 이야기랑 비슷하네요.ㅎㅎ
누렁이라는 개를 키우다 팔았는데 그 개가 팔려가면서 마구 울어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살고 있거든요.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는일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는 좋긴 하겠지만
위생적인 부분이 걱정되어 저는 한번도 키우질 못했네요.
베란다에서 개를 키우는 집에 갔는데 하수구에 털에 수북이 쌓여 있는걸 보니
아무나 키울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과 정성담은 작품에 머물다 갑니다.
변덕스런 날씨에도 늘 건강 하시고
사랑이 가득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추억속 아이들은 성장했고 그 세월속에 인생도 많이 와 있지요...
저도 방울이를 키웠는데 17년 되는해에 보냈습니다...
그 후론 키우지 않습니다...
그 정이 무섭더라고요...
개가 생각이 나네요 .
어느날발바리종 강아지 한마리가 들어 왔는데 저는 주인을 찾아가라고
아무리 내쫓아도 가지를 않더군요 .
그러면서 저는 슬슬 피하면서 어머님과 막내동생 뒤를 졸졸졸 따라 다니더군요 .
그렇게 몇년을 살았는데 동네 청년들이 개를 잡아먹으려고 놓은 쥐약을 먹고 죽어서
마음이 참 많이 아팠었습니다 .
열무김치님 아이들이 누렁이가 팔려갈때 정말로 마음이 아팠을것 같네요 .
그누렁이가 아이들에게는 더할수 없는 친구였었는데요 .
늘 건강 하세요.
생생한 기억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절절히 감동입니다
저도 강아지 무지 사랑하지만 키우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아픈 일들이 생각나서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리 다르지 않나봅니다
좋은 부모이십니다 열무님
유난히도 강쥐를 좋아하여 늘 애견을 키워 왔는데
시엄니랑 함께 살면서 시엄니께서 어찌나 싫어하시던지
키우지 않게 되었답니다..ㅠ.ㅠ
며느리의 대한 불만을 강쥐에게 구박을 하는것을 알게
되어을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이후로는 절대로
강쥐를 키우지 않으리라고 마음으로 다짐을 하였거든요
열무김치님의 자녀들의 눈매가 꼭 같으세요~ㅎ
그러니 옛 어른들 말씀에 부모는 늘 짝사랑을 한다고
하잖습니까..ㅎ
님의 글을 잃어 내려 가니 가슴이 찡 합니다
많은 부분이 공감 하기에 그러 하겠지요..ㅠ.ㅠ
남매중에 아드님이 오빠인것 같으네요.
우리도 남편이 형제가 너무 많아 둘만 낳았는데,
열무김치님댁은 남매로 어머님이 만족하시지 않으셨을것 같은데
어떻게 둘만 낳으셨는지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효도를 다 한것 같습니다.
우리가 행복했으니까요.
열무김치님 정말 많이 행복햐시지요?
생각만 해도,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실겁니다.
국민학교 때는 어미와 새끼 두마리를 한꺼번에 팔았는데
개가 도망을 왔다가 다시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 개들은 너무 사나워서 저희 형편에 돈 물어주면서 계속
기르기는 어려웠습니다.
개 팔고나면 그 정을 잊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성격도 그리 변하는것 같더군요.
지난날 농촌에서의 가축은 동물이 아닌 사람과 같은 가족이었지요.
어쩔 수 없이 팔기는 했지만 오랜간 정든 가축을 파는일이 그리 마음편한 일은 아니었지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동물들과 지내는 일도 필요한 일 입니다.
이때가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지요..
아이들도 부모도 마찬가지 인듯해요.
커버리면 좋은줄 알았는데 그것은 바로 헤어짐이더라구요..
그리워하며 삶니다 그리고 더 연세 드신분들의 이야기 들어보면
참으로 별일들도 많구요..여려 자식두고 키운 부모가
더 많이 효도 받는 것도 아니고 힘들고 가지 많은 나무의 흔들림 처럼 늘 걱정이라네요..
이때가 좋은 때였음을 봐라만 보와도 좋은 때이죠.
그 결과가 결국은 보신탕행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의 집에서도 개가 그렇게 많이 팔려갔지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네요.
두 아들이 멀리 살기에 열여섯살이 된 우리집 뿌구(말티즈)는 자식들 보다 더한 사랑을 주고 받는 답니다.
자식은 그냥 울타리지요. 일가를 이루었으니 제 살기도 바쁘고. 직장일에 좀체 한가할 틈도 없지 않겠어요.
감사합니다,.. 즐거울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유년시절의 제가 글속에 들어가 있는둣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이 개판다는 소리에 데리고 나가서 밤새도록 들어오지를 않았거든요!
하지만 다음날 멍멍이는 보이지 않고 하루 종일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든것을 담을수 있는 유년시절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비오는날 가슴에 추억이 똑똑 떨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비 피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늘 건강하시고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군대생활 시절 무수히 많은 내린 눈을 싸리빗자루도 밤을 세워 치우던 추억이 생각납니다.강원도의 눈 수준을 3번의 겨울을 겪으면서
경험했었으니까요.물론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도 눈이 많이 내렸지만 강원도만큼은...
소중한 자료 잘 보고 갑니다.
곧 봄이 오겠지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