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천등산 박달재
*천등산 (天登山) 박달재
충북 제천10경중의 제 2경으로 조선시대에는 천등산과 지등산이 이어져 있는 령이라는 뜻에서 이등령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해발 450, 길이 500여 미터로 옛날에는 제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되는 관행길이 나 있었다.
고산준령은 아니지만 크고작은 연봉이 사면을 에워싸고 있어 사람의 접근이 용이치 않은 험준한 곳이다.
1217년 고려 고종4년, 거란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여 왔을때 김취려라는 장군이 이 험난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또한 인근의 지등산과 인등산이 天,地,人 등을 모두 겸비하여 단군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으로도 알려져있다.
이곳이 박달재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 산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이름이 그리 붙여 졌다는 설이 있고
이 재를 넘던 박달이라는 선비가 애틋한 사연을 안고 죽어서 그 이름을 따서 그리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박달과 금봉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주인공인듯 하다.
*박달재 오르는 중턱
박달재에 전해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 보자.
조선 중엽 경상도 청년 박달이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 인근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해가 저물어 박달은 이곳 마을의 어느 농가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 농가에는 금봉이라는 혼기가 찬 처녀가 있었다.
박달은 이 처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박달은 청초하고도 아리따운 처녀의 모습에 요즘말로 한방에 훅 가게된다.
금봉이 역시 준수한 박달의 외모에 마음이 끌리게 되고 박달은 밤이 늦도록 처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잘생긴 얼굴을 보면 사족을 못쓰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보다.쯥...
잠을 이루지 못한 박달은 밖으로 나와 서성이고 금봉이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서성이다 박달과 마주치게 되고..
마침내 두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빠르기도 하지...
다음날 한양으로 가야하는 박달은 금봉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며칠간 더 묵으면서 금봉과 밀어를 속삭이게 된다.
그 집 아버지는 마음도 좋아..
헤여지면서 박달은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와서 금봉과 혼인을 하기로 약조하고 눈물의 이별을 한다.
박달이 떠나는 날 금봉은 먹을 음식을 허리춤에 달아주며 꼭 급제하여 돌아오라고 부탁을 하고 박달은 박달재를 올라 한양으로 간다.
한양에 온 박달은 과거시험도 소홀이 한채 두고 온 금봉을 잊지못하고 날마다 사모곡을 부르게 된다.
박달은 금봉이를 그리는 시를 지었는데...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애타는 마음으로 사모곡을 부르던 박달은 과거를 보지만 금봉이 생각으로 정신줄을 놓다가 결국 낙방을 하게된다.
그 뒤로도 과거에 연이어 낙방을 한 박달은 금봉이를 볼 면목이 없어 약속을 저버리고 금봉이에게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박달이 떠난뒤 자나깨나 박달의 과거급제를 바라던 금봉은 날마다 성황당에 가서 정안수 떠놓고 박달의 금의환향을 빈다.
그러나 그토록 빌고빌던 금봉의 바람은 허사가 되고 천등산 고갯길을 수 없이 오르내리며 박달을 애타게 그리던 금봉은
마침내 상사병을 얻어 한을 품은채 숨을 거두고 만다.
금봉이 장례를 치른 사흘만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돌아와 금봉의 죽음을 전해듣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하지만 이미 때는 늦게 되었다.
울다가 지친 박달이 고갯마루를 바라보자 금봉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올라 가는게 보였다.
이에 놀란 박달이 너무도 반가워 금봉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고갯마루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달려간 박달이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고 와락 끌어 안았지만 박달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만다.
박달이 금봉의 환영에 이끌려 그만 절벽으로 떨어진것이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박달과 금봉이의 애닯은 사연이 서린 고개를 박달재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사연이야 애틋한데 가만보면 박달이 잡놈인거지.
금봉이도 역시 사람보는 눈이 없고..
아니, 과거를 보러 갔으면 금봉이를 보기 위해서도 허구한 날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덜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하던가
설령 과거에 붙지 못했어도 금봉이 한테 와서 미안하다고 하던가 , 다시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으면 저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거 아니여..
한마디로 무책임한 넘이지.
저런 책임감 없는 놈을 믿고 죽을 힘으로 빌고 빌던 금봉이 처녀가 안됐구만.
이상은 어느 실없는 사람이 지껄인 소리..
어느 지방이든 전해지는 전설은 비슷한 사연이 많고 보통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그러고 보면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로 시작되는 올고넘는 박달재의 옛 노래는 사연이 서린 노래다.예나 지금이나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 하는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살았던 젊은이들의 삶이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그놈의 출세가 원수이긴 하다.
박달이 금봉이 죽은뒤 환영에 이끌려 금봉을 잡으려는 모습을 형상화 해 놓았다.
박달이 과거에 급제해서 금봉을 만났더라면 박달재도 생기지 않았겠지.
어쨌든 애닯은 사연에 가슴이 저리다.
박달재에 전해지는 애틋한 사연을 알고 들으면 울고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이 더욱 진하게 다가올 것 같다.
*박달재에서 바라다 본 백운면 방향
제천에서 박달재를 넘어 백운면 방향으로 내려가면 충주로 나가는 4차선 도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 방향으로 나가면 제천이 나오고 좌측으로 나가면 충주, 원주 쪽으로 나가게 된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엔 박달재가 험준한 고개로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자동차로 간단하게 오르는 지금의 박달재는 조금은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경관도 심심했고 오르는 길 역시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처음 찾는 사람들에겐 실망감이 들만도 하겠지만 제천에는 이곳 말고도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경치좋은 곳들이 주변 곳곳에 산재해 있는만큼 미리 걱정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 박달재 정상은 박달과 금봉의 이야기를 주제로 아기자기한 공원을 꾸며놓아 차 한 잔 하면서 옛 이야기에 심취해 볼 수도 있는데다, 근처 산에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목각상들을 세워놓은 곳이 있어서 이색적인 풍경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고산 준령은 이곳 말고도 전국에 수 도 없이 있으니 박달과 금봉의 애틋한 사연만으로도 박달재를 찾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 pathfinder
- 2013.03.18 23:04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저 곳이 그 유명한 박달재로군요
봄기운이 물씬 나는 산하가 너무 정겹습니다
건강한 봄 되시기 바랍니다
충주에서 제천을 오갈 때 넘어야 했던 재라서....
박달재에 얽힌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안타까움을 안기지만
저 애틋한 사연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달재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잊쳐져간 옛 길로 묻혀버렸을지도....
사진을 참 잘 담아 오셨습니다.
그에 맛깔난 글솜씨까지 한 몫 더해져 훌륭한 작품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열무김치님 센스 최고십니다.
이야기 잘못 꺼냈다간 큰코 다친다니깐..
전국 안 가 보신데가 없는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으로 갈 일이 거의 없어요.
이곳 말고도 다른 우회도로가 많으니까요.
또 이곳을 통과하는 차량도 거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관광차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박달이 헛짓을하여 한많은 생을 마치는 바람에 후대들이 덕을 입기도 하네요.
전설이긴 하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괜히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루종일 튼다는 울고넘는 박달제 노래 때문에 그곳에 사는 토끼나 노루, 산돼지들이 이제는 따라 부르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응달에도 계곡에도 잔설의 흔적은 사라지고
설렘으로 맞은 봄은 서서히 무르익어 갑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기도로 하루 열고 텃밭을 손 보며
새벽별 툭툭 털어 아침 사랑 차린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햇살 퍼지는 길섶에
사랑 씨 뿌려준다면 그게 작은 행복일 수도 있겠죠?
멋진 영상과 글 음악 가슴에 감동으로 담아봅니다.
사랑하는 블로그님들!
오가는 고운 인연에 행복합니다.
んㅏ乙ㅏ ぁ ㅏ し ㅣ てㅏ.
.......○ の.................시인 늘봉드림
┍─────‥──‥──‥──‥──‥──
울고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곳인데 갈 기회가 별로 없네요
글도 덧붙여 잘도 쓰십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애틋합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왔다면 사연도 박달재도 애달프지는 않았겠습니다 ㅎ
최근에 다녀오셨나봅니다
노래때문에 박달재를 알고 또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별이 본 중에 글과 사진이 알차 갔다온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
천등산 박달재~~~
참으로 오랜만에 감상합니다
하도 오래 전에 다녀 온 곳이라서
이렇게 영상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요즘 집안 일로 이제사 안부 놓습니다
항상 귀한 날들로 가득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씩 애틋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기는 하지만
박달재의 애달픈 사연 또한 그곳을 찾지 않을 수 없게 하지요.
금봉이와 박달이의 전설이 없었다면 박달재는
험산준령일 뿐 외면당하는 고개가 되었을 것입니다.
박달재를 넘어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
글과 사진으로 보니 새롭습니다.
봄이 되니 여기저기 가 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요즘 몸이 허락지 않아 안타까움만 크네요
다행히 님 덕분에 대리만족을 하며 행복 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운 날 되십시오^^
어쩌면 등산가는 버스로라도 넘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야 도로가 나면서 고개가 낮아지고 주변의 숲도 예전에 비하면 큰나무가 없어 깊은 산처럼 느껴지지 않으니 그렇지
먼 옛날 도적떼들이 많고 숲이 깊었던 박달재와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요.
저의 동네 무악재고개도 옛날에는 호랑이가 풀몰하고 도적때들이 많아서 혼자서는 넘지 못하는 고개였디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6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고개도 낮아지고 주변에 숲도 없어져서 재같지 않은 무악재고개가 되었습니다.
박달재라는 이름과 얽힌 사연을 잘 살려서 지방의 향토문화를 되살리고 알리려는 재천시의 노력이 엿보이는군요.
다음에 박달재를 답사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아야겠습니다. 천등산 바~악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관광차 가는건 몰라도 등산을 목적삼아 가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계절상 비수기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차들의 왕래가 잦지 않아서 썰렁함 마저 들었습니다.
무악재가 그런곳인줄은 몰랐는데 말씀을 듣고보니 그롷군요.
하긴 제 사는 이곳에도 전에는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던곳이 도로가 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마치 옆동네처럼 변했습니다.
이 모든게 사람들이 잘하는짓인지는 의문이네요.
제천10경이라 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데 아마 하루 이틀이면 거의 돌아보지 않을까 싶네요.
제천을 가려면 박달재 고개를 넘어서 갔었지요.
고개에서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항상 흘러나와
잠시 쉬어갈때 많이 들었지요,
박달과 금봉이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때는 박달재터널이없어 고개를넘었습니다만 터널이 생긴 지금도 그리로 갈때면 박달재를넘습니다.
저는 고속도로가 빠르긴하지만 국도로 가다보면 감곡복숭아도 만나고 여름이면 대학찰옥수수를 만날수있는
시골길이 좋아 그길로 많이도 다녔습니다.딸래미 없지만 지금도 일년에 두어번은 그길로 다닙니다.
박달재 휴게소는 꼭 들려가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지요..
여러분들이 그리 생각하셨지만 박달도령이 과거급제 했드라면 박달재가 유명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리고 이루지못한 애닮은사랑이라 더~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나봅니다..
헌데 열무님은 예사롭게 지나치는 발달재도 이렇게 좋은글감이 되는군요..
잠시 나갔다왔는데 꽃샘추위치곤 바람도불고 춥습니다,
밤새 비오고나면 내일은 영하로 내려간다니 들여놓았던 내복을 다시꺼내야할것같습니다..
다시한번 박달재에 머물며 옛생각에 잠겨봅니다..
하긴 여행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더구나 자가운전을 하시니 .
저도 일부로 대관령 옛길을 넘어 보기도 합니다.
또 주문진을 갈때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진고개를 넘어 구도로로 가기도 합니다.
가을이면 단풍도 좋고 여름엔 시원한 계곡이 좋아서 일부러 그리합니다.
이쪽 방향을 많이 다니셔서 아주 훤 하시네요.
그런데 터널 탓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찻집도 썰렁하고 그래서인지 흘러나오는 노래도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금봉이와 박달이 조금은 허전하지 않았을까..
변화 무쌍한 봄날씨에 건강에 유의 하세요.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너무도 좋네요~~ 즐겁게 감상 잘했습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오늘 제대로 합니다..감사해요
전해져 오는군요 .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여인에게 홀려서 과거를 망쳤으니
과거시험이 박달이에겐 절실하지가 않았나 봅니다.
금봉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간절함 보다는 그냥 그리움 이었었나 봅니다.
간절함 이었다면 오히려 과거에 장원급제 하여서 멋지게 금봉이 앞에
나타났을텐데 ...
늘 건강 하세요.
아직 못가봤지만 귀에 많이 듣던 노랫말로 인해 '천둥산'인줄 알았습니다 ㅎ
박달재가 이런 애닯은 전설이 있는곳이네요
그런데 노랫말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라고 되어있던데
그 노랫말의 주인공이 금봉낭자를 남겨두고 고개를 넘던 박달 도령인가요? ^^*
에구!~ 목표를 향하여 가려면 한눈 팔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그게 쉬운일이 아니니 ~~ㅎ
박달이는 무책임한 잡놈이고
금봉이는 사람 볼 줄 모르는 숫배기 시골 처녀입니다.
출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 청청수 -
노랫말 뜻을 님의 글을 통하여 알게 되는군요~
조기 위의 실없는 분의 글귀가 넘 재미있고 후련합니당..ㅋ
어쪘던 남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안타까운 마음 이네요~~
박달재의 전설의 관하여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비공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