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5월***** 미루나무

*열무김치 2012. 5. 12. 00:30

 

 

 

아버지께서 한 때 나무 도시락을 만드는 공장을 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 할 무렵부터 시작한 공장은 3년여를 유지하다 결국은 플라스틱이나 스티로 폼, 종이를 이용한 도시락이 나오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아버지가 오랜간 목상을 하셨기 때문에 그 경험을 살려 사업을 시작했지만 변하는 시대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발동기 두 대와 나무를 깎는 커다란 기계를 몇 대 들여놓고 일하는 사람도 2~30명 되는 꽤 그럴듯한 공장이었다. 

나무 도시락을 만들려면 굵직한 목재를 짧게 잘라서 기계에 걸고 빠르게 회전을 시켜 날카로운 칼로 얇게 나무 널을 깎아 내는데 그 두께가 두꺼운 종이 정도였다.

얇고 길게 깎아낸 널 은 넓은 장소에 널어 말렸다.

공기가 잘 통하게 하여 빨리 말리는게 중요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공장 근처의 강변 자갈밭에 널찍하게 널어 말렸다.

볕이 좋을땐 하루 이틀에 말렸지만 날씨가 흐리거나 갑자기 비라도 내리게 되면 아주 낭패였다.

특히나 여름날의 갑작스런 소나기는 아주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너른 면적에 널어놓은 걸 덮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멀거니 바라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비가 그치고 빨리 해가 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모양이 변형되어 모두 버려야 해서 손해가 많았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거부반응이 거의 없는 나무 젓가락도 만들었는데 모양은 투박하고 거칠었어도  회학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중국등에서 수입한 나무 젓가락은 매끈하고 하얀게 보기는 좋은데 각종 화학 약품으로 처리를 했다하여 말들이 많다.

그 일회용 도시락과 젓가락을 만드는 나무가 바로 미루나무였다.

당시 식목을 권장하던 정부가 속성수인  포플러와 오리나무등을 많이 배포 했는데 포플러는 성장 속도가 빠른대신 나무가 너무 물러서 건축 자재나 생활용 도구를 만드는데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미루나무는 포플러에 비해  비교적 단단하면서도  결이 곱고 부드러운데다 색이 희고 감촉이 좋아 일회용 제품을 만드는데 제격이었다.

문제는 나무가 많지 않아 수급에 어려움이 많았다.

대신 소나무를 썼는데  소나무는 향이 좋은대신 뒤틀림이 많고 잘 못 말리면 송진내가 난다해서 제품을 만들어 서울로 가면 퇴짜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장 앞에는 항상 미류나무가 쌓여 있엇다.

아버지는 줄자를 들고 바쁘게 돌아 다니시면서 공장 직원들을 독려했다.

여자 직원들은 깎아낸 미류나무 널 을 강변 돌밭에 널고 거두어 들여 차곡차곡 포장하는 일을 주로 했다.

나는 월급날 장부를 들고가서 아버지가 지시하는대로  적었다.

매 주말이면 당시 벌목장에서 쓰이던 제무시(GM) 트럭에 정성들여 만든 제품을 잔뜩 싣고 서울로 올라가시곤 했다.

그때는 아버지도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고 검은 안경도 썼는데 어린 내가 보아도 멋지게 보였다.

공장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물건값을 잘 받아서 돌아 오기를 바랬다.

그래야 먹을거리도 생기고 제때 월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나무 도시락통  (펌)

 

 

 

세월 흘러 이제 일회용 나무 도시락도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지금도 나무 도시락이 있지만 형태도 다르고 1회용도 아니다.

종이나 호일 스티로폼으로 만든게 대부분이어서 이로 인한 환경 공해가 숙제로 떠올랐다.

자연적인 모습 그대로 일회용을 만들고 쓰고 난 뒤 버려도 큰 해가 없었던 나무 도시락.

물질 문명이 극을 향해 달리지만 디지털 문명이 극복해 낼 수 없는  아날로그가 아직도 많다.

흔하던 미루나무도 다른 수종에 밀려 농촌에서도 보기 힘들다.

먼지나는 산골 신작로에 풍경화 처럼 심어져 있던 미루나무는 어린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이들의 기억 단편이다.

 

 

나무 향 은근이 배어나는 나무 도시락에 맛나는 점심을 싸서 소풍을 갔으면 좋겠다.

 

 

 

 

 

 

 

 

 

 

 

 

 

 

 

 

[미루나무]

`버들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를 뜻한다.

미루나무는 북미 원산으로 강변이나 밭둑 또는 촌락 부근에 풍치목으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유럽 원산인 포플러와 비슷하나 그것에 비해 어린 가지에 날개줄이 있는 게 다르며,

가지도 다소 옆으로 퍼지며 자란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잎은 거의 세모진 알모양이고 가에 둔한 톱니가 있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며, 용도는 젓가락, 성냥개비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들이라는 뜻으로

 `미류(美柳)나무`라 했던 것이

차차 `미루나무`라는 발음이 일반화됨으로써 표준어 사정에서 `미류나무` 대신

 `미루나무`로 바뀌게 되었다.

 

 

 

 

 

 

 

 

 

169

 

 

 

 

 

그런 봄날...그런 도시락을 싸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웃으며..그렇게 나설수 있다면....

정말.....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일텐데 말이에요
그렇게 하시면 되지요.
그러고 보니 도시락 싸서 소풍을 가본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회사에 몸담고 있을땐 야유회라는 명목으로 도시락 싸서 소풍을 가기도 했는데 그럴 일이 별로 없다보니 ..

마음만 먹으면 가실 수 있는 분이니 좋은일정 한번 잡아서 실행에 옮겨 보세요.
집안에서 그런 일을 하셨었군요.

애들때 소풍을 가면 어머니가 나무도시락에 김밥을 사주셨었지요.
물론 형편 좋을 때에만 국한되지만 . . . 그 도시락은 최고였습니다.

아버지가 신문사 다니시던 때 회사 체육대회를 따라갔더니 도시락이 두개더군요.
하나는 반찬, 하나는 맛난 밥(김밥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이었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 도시락은 당시 일본말 이름으로 불렀었는데 기억이 안나는군요.

가끔 스티로폼 도시락을 보면 그 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어린날 소풍을 간다는건 생일날과 맞먹는거였지요.
소풍가기 전날 소풍가서 먹을 음료수와 빵 이나 과자를 가방안에 넣고 날씨가 좋기를 바랬던 기억이 선명 합니다.
단연 김밥이 최고였지요.
아마 도시락을 일본말로 벤또 라고 불렀던것 같습니다.
그게 정확한건지는 모르지만요.

아버지께서 운영하던 도시락 공장은 여러차례 위기를 넘기다가 제가 중학교를 마칠무렵 문을 닫았는데
공장에 남아있던 기계들을 헐값으로 뜯어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소풍때의 김밥은 정말 맛있었지요. 전 지금도 혼자 즐겨서 김밥을 말아먹곤 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공장도 결국 끝이 안좋았군요.
소자본으로 운영을 한것 같습니다.
당시 돈이 많았을리 없지요.,
목상을 오랜간 하셨기에 그 경험이 공장까지 연결이 된것 같습니다.
그일이후 아버지는 도시로 나오셨습니다.
제가 원주에 살게 된것도 이와 무관치 않네요.
아,그랬었군요.

ㅡ그러고보니 제 기억속에서도 나무 도시락이 사라져 갔네요.
어릴때 소풍날 엄마가 일회용 저 나무 도시락에 김밥 싸주곤 했었는데....
이제 추억속의 물건이 되었음을 글을 통해 인지 했습니다.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도시락에 밀려난 나무 도시락에다가 소박하게 김밥을 싸서 소풍가고 싶네요 저도....
나무도시락이 시간이 너무 오래되면 축 처지곤 했지요.
그래도 그게 그렇게 맛이 좋았습니다.
중학교때 제가 다니던 학교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자갈밭이 꽤 넓어서 점심시간에 그곳에 모여앉아 점심을 먹던 기억이 납니다.

야외로 가게되는 기회가 생기면 김밥 싸달라고 졸라 봐야겠어요.
꼭 그러세요...ㅎㅎ
요즘처럼 밖이 아름다울때는 김밥에 단무지만 들었어도 맛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때 한두번은 나무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갔던 기억이있습니다 ^^*
김밥은 소풍날이나 운동회날만 먹는줄 알았어요ㅋ
그런 날에만 김밥을 싸 주셨거든요 ^^*
길가의 가로수로 포플러 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었기에 눈에 쉽게 구분이 가지만
미루나무는 많이 들었어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
어린시절 학교에서"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이 걸려있네~"로 이어지는 동요를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
저리로 소풍을 갔더라면 저 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었을것 같습니다 ^^*

미루나무는 북녁 보다는 남녁지방에 많이 심었던걸로 압니다.
곧게 자라고 수고가 높아 풍치를 좋게 하기에 가로수나 들에 많이 심었지요.
말씀처럼 동요에도 등장한걸 보면 우리나라에 들어온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저도 마무를 심으면서 포플러나 오리나무를 꽤 심었지요.
하지만 오리나무는 나무 모양이 별로 좋지 않은데다 병충해에 약하고 나무 쓰임새가 벼로였어요.
그바람에 지금 많이 사라졌습니다.

소풍날과 운동회에만 먹는줄 알았던 김밥..
이제는 웰빙식으로 먹습니다.
전혀 몰랐던 과거였네.
1회용 나무 도시락은 환경도 오염시키지않고 참 좋았는데,
이런 애로사항이 있는줄 전혀 몰랐어.
우리 초중시절엔 알미륨변도로 김밥싸서 소풍갔는데... 그때도 나무도시락이 있어구먼.
아! 옛날이여~~~ 그 어렵고 어려웠던 옛날에
보릿고개 시절이었지만 그때가 아련한 향수인것 같아. [비밀댓글]
우리가 중학교에 다닐때 난로에 땔 나무를 우리가 하던 공장에서 가져오곤 했던것도 넌 잘 모를거다.
쓸만한 나무를 자르고 난뒤 못쓰는 토막이 많이 나왔는데 그걸 가져다 땐거지.
언젠가 한번 월급을 주기위해 장부를 들고 공장에 갔는데 거기에 옥희가 있더라.
난 너무도 챙피해서 고개도 못들고 쩔쩔맸지.
옥희는 지금도 그얘기를 한단다.
아마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옥희가 그곳에서 일을 한것으로 보인다.
내가 매일 간게 아니니 잘 모를수도 있는거지

그러고 보니 별 과거가 다 있네.ㅎㅎ [비밀댓글]
유년의 추억
나무도시락에 얽힌 이야기 잘 봤습니다.

흐르는 음악도 멋지네요.
갑사 드립니다.
유년의 기억은 참으로 오래 갑니다.
유년의 친구도 역시 오래 가는군요.
열무김치님!
나무도시락~~~
향수 어린 품목이기도 하지요
종이 도시락이 나오기 전까지는
나무 도시락이 큰 인기를 끌었지요
저도 나무도시락을 많이 이용한 사람중에 한 사람이기에~~~
그렇군요
아버님께서 나무 도시락 공장을 운영 하셨군요
미류나무를 보면 많이 생각 나시겠군요
미류나무로 도한 성냥개비를 만드는 재료로 이용 한 걸로도 알고 있습니다

미류나무에 얽힌 일화와
정보 감사히 읽어 봅니다
고맙습니다
미루나무가 가벼워 일회용 을 만드는데 용이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일회용 역사가 꽤 길군요.
그래도 그떄는 환경오염 문제는 별로 없었는데 자금은 참 큰일이기는 합니다.
풍성하게 잘 지내는건 좋은데 미래의 행복마저 빼앗아 오는듯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거든요,
모르지요 나중 후손들에게 큰 원망을 들을지도.

성냥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성냥을 구경 한지도 꽤 됩니다.
아버님 저 혜정이에요 ^^ ㅋㅋㅋ
아버님은 어쩜 말씀도 그렇게 청산유수처럼 잘 하시면서 글도 이렇게 잘 쓰세요? (아부가 아니라 진짜로요!)
위에 글 너무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나무도시락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저에게는 매우 생소하지만
한번쯤 나무도시락에 밥을 먹어보고 싶어요 ^^

블로그 너무 볼꺼 많고 사진은 정말 최고네요!! 저라도 불펌하고 싶을만큼 욕심이 나는 사진이 많아요! ^^
아버님 사진 찍으러 가실때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제가 아버님 카메라 보조하겠습니다! ㅋ

p.s 글은 비공개로 남겨요! 너무 사적으로 보일꺼 같아서요 ㅋ [비밀댓글]
기회가 되면 그리 하자꾸나 [비밀댓글]
미루나무는 나이든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그리게 됩니다.
나무도시락 만드는 공장을 하셨군요.

올림픽공원에 큰미루나무가 있었는데 2년전 태룽에 뿌리가 뽑혀 죽어서 많이 서운했습니다.
걷다가 미루나무가 보이면 옛 고향집이 보였거든요.
많이 정겨운 나무입니다.
저도 한강변에 미루나무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떄 포를러를 많이 심었기에 이런 풍경은 어렵지 않게 만났는데 오래된 미루나무는 이제 보기가 쉽지 않네요.
미루나무를 보면서 고향집을 떠올리시니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아버님께서 나무도시락 공장을 하셨군요,
저도 어릴때 나무도시락에 김밥싸서 소풍갔던 기억이 나네요.
나무도시락을 오리벤또라고 했었던걸로 기억돼요.
미루나무로 그 도시락을 만들었군요.
도시락을 열면 은은한 나무냄새가 났었고
나무가 워낙 얇아서 잘 찌그러지기도 했어요.
까마득한 옛날이었네요.

열무김치님 주변은 모든것이 무공해인것 같아요.^^
아버님까지 무공해 도시락을 만드셨네요.
미루나무 노래도 있었네요.^^
하하~
무늬만 무공해 입니다.
시골서 오랜간 살았으니 무공해고 말고 할것도 없지요.
제가 살던 시골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게 없습니다.
모처럼 시골을 찾는 사람들에겐 신선하게 보이지만 그곳 분들은 낙후로 여깁니다.
도시락 공장이 있던 주변은 지금도 별로 달라진게 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사람들만 모두 변했지요.

박인희씨의 미류나무는 당시 꽤 알려진 곡인데 모르셨나 봅니다.
박인희씨는 우리시대의 연인이었지요.
지금 뭐하나 몰라요.
박인희 좋아하셨군요.ㅎㅎ
청순한 이미지로 감미로운 목소리로
남성팬들이 많았겠지요.ㅎㅎ
<뚜아에 무아>라는 듀엣으로 시작했지요.
박인희의 다른 노래들은 좀 아는데
미루나무는 몰랐어요.^^
오래전에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다고 들은거 같네요.
아..
저도 그얘기 들은것 같습니다.
은희씨는 시골서 사시더군요.
사람이 목소리가 제일 늦게 늙는다는데 언젠가 은희씨가 모 프로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는데
정말 그렇더라구요.
그분 재능이 아까운데 한창 인기가 있을때 그자리에서 내려왔으니...그분 앞을 볼줄 압니다.
제게 레코드판이 상당량 있는데 가끔 걸고 듣습니다.
나름 묘미가 있네요.
일회용이어서 편안했던 나무 도시락
그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가는 날이면
마음은 하늘로 붕붕 떠오르곤 했는데
글을 읽어가며 아련한 추억 한 자라가 떠올려봅니다.

열무김치에
쓱쓱 밥 한 그릇 비벼먹고 싶은 오후도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하하~
열무김치 좋아 하시나요?
전 하도 좋아해서 닉조차 그리 지었습니다.
시골서 억수로 먹었거든요.

지금도 일회용 나무 도시락이 나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만약 구할 수만 있다면 얼른 사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익은 김치를 싫어해서 생김치를 자주 담아 먹는 편인데
특히 열무김치는 무지 좋아한답니다.
열무김치를 담근 날에는 밥 한공기 뚝딱 비우거든요.
애효~~
낼은 열무김치를 담아야겠습니다.
구미가 당겨서요. ㅎㅎ
편안한 저녁 되십시오^^*
동지를 만난 느낌인데요. 하하~
저하고 식성이 많이 닮으셨네요.
저도 익은김치보다는 금방 담근거 좋아 합니다.

요새 열무가 많이 싸졌더군요.
많이 담그셔서 맛있는 토요일 만드십시요.
감사 합니다.
나무도시락, 간편하니, 참 좋았지요.,
친환경적이라 , 거부감도 덜하고..
어려서 많이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글고보니 요즘, 나무도시락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알루미늄이나, 일회용의 다양한 것들이 나와 있더군요..
많은 잡일이 들어가는 일들이 있었네요.. 기억이 새롭습니다.
나무도시락에 대한 기억이 있으시군요.
소풍 가는일이 즐거움중의 하나였지요.
지금도 나무도시락이 있기는 하더리구요.
모양과 쓰임새가 좀 달라서 그렇지 나름 괜찮던데요.

집에 일이 많으셨던가 봅니다.
5월도 며칠 남지 않았네요.
즐거운 휴일 되세요.
미루나무를 보면 아버님 생각이 나시겠군요..
열무님 말씀대로 극으로 치닫는 물질문명이 아날로그를 극복하지 못하는게 많지요..
어떨 때는 정말 겁나게 변해가는 디지털 문명이 겁이 날 때가 있어요..
어디까지...어떤 모습으로까지 변화랄 것인가..
그것으로 지구는 자멸하지 않을까 하는...

저는 미루나무를 자세히는 몰라요,,
그런데..저한테 미루나무란..."키크고 잘생긴 나무"랍니다.
어릴적..친구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길가에 서있는 멋진 나무를 보고 친구에게 물었었지요?
"저 나무 이름이 뭘까?"
그랬더니...친구는 망설이지 않고
"미류나무야..(그때는 미류나무라고 했었지요..)" 하는 겁니다.
저는 고개를 끄떡이며..
"아..저 나무가 미류나무구나.." 했더니..그 친구는
"아니~~나는 저 나무 이름을 잘 몰라..내게 멋진 나무는 모두 미류나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때부터 키크고 잘생긴 나무는 미루나무랍니다..ㅎ
열무님 사진보니 정말 멋진 나무네요..
6,25 전후 벌거벗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빨리 자라는 나무를 심게 되었는데 그게 미루나무였다고 합니다.
농촌에서 미적인 부분과 속성수라는 부분이 맞아 떨어진거지요.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품종이고 빨리 자맀지만 쓸모가 별로 없었지요.
어린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많은 세대들이 미루나무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을겁니다.
완행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마다 미루나무를 심었지요,

미루니무는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는 용도로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없어 졌습니다.
초가집이 보이고 매미가 울어대는 한가로운 여름날의 농촌 풍경이 미루나무와 함꼐 있었던 70년대가 있었는데 모두 추억으로 사라져 갑니다.
'얇은 나무 도시락', '일회용 나무 도시락'을 어릴 때 겪었던 터라 최근에 갑자기 생각나서 검색하다가 이 글을 보게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사진까지.

초등학교때, 나무 도시락에 사이다 2캔, 그리고 선생님 드릴 통닭 두마리. 옆으로 가로질러 맨 로봇(?)그림의 플라스틱 물통.
소풍 준비물을 챙기고 아침 일찍 학교 가면, 그냥 점심 시간만 기다려 졌습니다.
점심 때 가방을 열면 신문지의 대각선방향으로 포장되어있는 나무도시락.
열어보면, 두 단씩 누워있는 김밥들.
너무 많아서 남은 도시락을 다시 가방에, 사이다는 당시 캔용량이 500ml 밖에 없어서 하나는 고스란히 남아 소풍가방에 담아둡니다.

집에와서 풀어보면 김밥과 사이다, 이 모든 것들이 헤쳐져있는 그 광경.
지금 같이 디지털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찍어 볼 만 했겠지만,
이젠 그저 머리속으로 상상만 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집 부엌에는 어느 때인가 알루미늄호일 도시락으로 대체되고, 시간은 흘러 더이상 소풍용 도시락이 필요없게 되어버려
나무 도시락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겨져 갔습니다.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무도시락에 추억이 재생되면서, 다시금 더듬어 보게됩니다.^^

나무 도시락이 지금도 얇게 일회용으로 나온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렴하게 대중화된 기다랗게 썰어 그 방향 그대로 호일에 둘둘 말아 검은 봉지에 넣어 버리는 그런 도시락이 아닌,
집에서 만드는 단단하고 야무진 김밥을 허술하긴 하지만 나무향이 살짝 솟는 얇은 나무도시락에 가지런히 넣어
사이다와 같이 먹고 싶은 생각...

제가 본 미류나무 저 꼭대기에는 항상 까치집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글 잘 읽었습니다.
일회용나무도시락이 생각나서 검색했는데
정겹게도 여기 블로그 글을 보내요
글 잘 보았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나무도시락에 대한 추억이 있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언젠가는 다시 찾게되지 않을까요.
저런 나무도시락을 구하고 있는데
아무리 찿아봐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