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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想 * 그시절

*열무김치 2010. 4. 22. 17:04

 

 

 

1977년도의  어느 시골의 모습이다.

당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다.

마을마다 초가지붕이 주를 이루었지만 사진에서 보듯 하나같이 지붕이 슬레트로 바뀌었다.

지금에 이르러 슬레트가 공해의 주범으로 떠올랐지만 당시엔 초가를 대신할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마을 앞길은  마을길 확장이라는 구호아래 처음보다 두배는 넓어졌고 일부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다.

지금처럼 기계를 이용한 포장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삽으로 일일이 시멘트와 모래 자갈을 배함하여 포장을 했다.

 

새마을 운동은 그 취지가 다소 선동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시작이야 어찌됐든 이로인해 근대화의 발판은 마련했기 때문이다.

작금에  새마을 운동에 관한 일부 부정적인 견해가 있기는 하나 그 옳고 그름을 떠나 과도기를 거치는 과정이었다고 보는게 마음 편할듯 하다.

또 시대상으로 보아 당시엔 별다른 대안도 없었고 정치적 理念이나  특정 사상이 자리할 여유공간도 별로 없었다.

설령 있었다 치더라도 먹고 사는일이 급했던터라 별다른 충돌없이 그 맥이 상당기간 이어졌다.

하지만 후반에 들면서 각종 부작용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났고 이를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불편한 사례들도 생겨났다.

 

번듯한 마을 안길이 놓이고 초가 지붕만 걷어내도 뭔가 될것만 같았던  시절...

어찌보면 우리들의 순수했던 지난날들이다.

 

*올림푸스 pen

*필름 스캔 

제가 어렸을때 아침이면 마을 이장님 댁 스피커에서 새마을 운동 노래가 울려 퍼졌어요.
그 노랫소리에 맞춰 동네 어른들이 모이고 아이들은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마을을 청소하곤 했었습니다.
어렸기에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제가 학교 입학한 후에도 오랫동안 일요일 아침이면
새마을 운동의 일환이였던 마을청소며 꽃길 가꾸기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 새마을 운동은 혁신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발전했구요.

사진을 보니 옛날 기억이 새록거립니다.
아주 잘 아시네요.
지금도 마을마다 확성기가 있어 "에,,~ 이장입니다요. 오늘 회관에서 모임이 있사오니 바쁘시더라도 어쩌구..."
하는 방송이 곧잘 흘러 나오지요.
참 오래된 기억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사심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잘 살아 보겠다는 일념이 누구나 강해서 정책에 토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말씀처럼 아침마다 모여서 동네 청소하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래도 그 때 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경험의 산물이 아닐까요.
먹고사는 일이 풍요롭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산으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마을이네요.
마을 옆으로 내가 흐르고 정겹습니다.
지금도 새마을 노래가 흘러 나올것 같구요.

저는 도시에서만 살아서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곳을 보며는 더 정겨워 보이나 봅니다.

따님인것 같네요.
너무 귀엽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사골에서 사신 경험이 없으신가 봅니다.

저 냇가에서 멱도 많이 감았고 물고기도 많이 잡았지요.
전에는 그리도 커보이던 냇가가 지금 가보면 참 작습니다.
하천도 많이 변하네요.

딸이 아니라 조카들입니다.
하하~
그당시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요.ㅎㅎ
정말 조옷군요.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아직 슬레트 지붕이 남아있는곳이 꽤 됩니다.
요즘은 공해물질이라 하여 걷어 내고있지요.
인심 후하고 서로 사이가 좋게 살펴주던 전형적 농촌 마을입니다 ^^*
제가 살던 고향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
조그마했을때는 저런곳에 족대를 들고 들어가 미꾸라지와 퉁가리 기름종개들을 많이 건져내었는데요 ㅋ~
저 작은 냇물과 시멘트 포장된 길을 보니 갑자기 옛날이 눈앞에 펼쳐지네요..^^*
아마 농촌을 고향으로 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겁니다..
그나마 이런 기억들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새마을 노래...
입에서 절로 나오네요...
담너머 정이 오가던 그시절...
요즘은 귀촌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지요...
앞만 보고 달리다가 뒤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말씀대로 귀촌이 많이 늘어납니다.
제 살던곳에도 낯선 분들이 많아 졌어요.
부디 정착을 잘 해서 농촌도 살아 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 합니다.
농촌이 죽으면 도시는 더 힘들어 지니까요.
귀한 사진입니다.
새마을 운동의 역사적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본문과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 봅니다.

역사란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나라 전체 역사가 아닌
내가 살았던 지역의 조그만 역사도 한 개인에게는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이 발명되고 부터 유럽이나 미국의 1860~70년대의 빛 바랜 흑백 사진을
가끔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보기도 합니다.
이런 사진들이 한 개인이나 어느 조그만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주죠.

우리에게도 개화기 이후 외국인들에 의한 풍물사진을 통하여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이면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열무김치님은 일찌기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이런 새마을운동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어느 산골의
지금은 사라진 기록를 잘 보관하고 계시네요.

아마도 지금은 사진의 주택들이 헐려지고 ,혹은 양옥으로 신축되기도 하고
폐가가 되어 주인없는 쓸쓸함을 풍기는 풍경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풍경의 이면에 있었던 지난 세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한 사진을 보관하고 계시지요.

저도 늦었지만 이런 작업을 하려고 일부러 필름카메라를 두대를
준비하고 연습하네요.

한롤을 연습삼아 찍어 현상만 해두고 있는데 , 자가스캔을 하려다 그냥 있네요.
제가 살았던 고향의 풍경과 이제는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의
일상의 기록을 남겨 후세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디지털의 보존성은 믿을 수가 없죠.
하지만 필름은 그래도 믿을만 합니다.

오늘도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네요 하하.
좋은 답글 관심있게 잘 읽었습니다.
생각 하시는바가 크군요.
새마을 운동은 다른나라에서도 밴치마킹 할만큼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봅니다.
못먹고 못입었던 한은 우리민족에게 가장 고역이었지요.
아직도 흰 이밥에 고깃국을 주창하는 이북이 있지만 좁은 나라에서 잘먹고 잘 사는 일은 지상 과제였다고 봅니다.

사진속의 마을은 이제 전혀 다른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말씀처럼 사진으로 당시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사진기를 마련 하셨다니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디지털 사진도 분산하여 보관 하는게 그나마 안전 합니다.
물질적으론 풍요롭지 않았지만
넉넉했던 그리운 시절 귀한 사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