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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 심심하기 그지없는 하릴없는 언덕배기 튀어 보겠다고 노란 색깔 하나만 믿고 만용을 부린 봄 얕보지 마 지난 가을이 벗어던지고 간 누리끼리한 핫바지들 앞에 샛노란 점 하나 찍으면 섯다판 아홉 끝은 저리 가라지 가녀린 얼굴에 번지는 고혹 휘어진 허리에 걸린 혼미한 햇살이 반 쯤 눈을 감았다 반반한 얼굴 하나가 후려낸 골짜기에 바람이 실어 나른 풍문이 요란하다. 꽃이 왜 피겠소 싱숭생숭 적어도 봄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 겨우내 얼어붙어 눈도 껌뻑 하지 않을 목석들에게 옆구리 찌르는 거 말고 뭐가 있을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데 열 번까지야 연지 바른 얼굴에 간드러지는 눈 웃음 몇 번이면 이내 게슴츠레 해질 군상들 봄이 채용한 매끈한 미용사가 튀겨주는 달달한 팝콘들이 골목을 지키고 앉아 호객질이다. 2023. 3. 18.
3월 연가 돌 담장 제 멋에 겨운 돌멩이 하나 하나에 봄이 들고 솔바람이 거든 가지마다 미소가 핀다 어느 산골 淸陰에 꽃이 떨군 엽서가 가득하다 어느 것 주워 읽어도 가고 또 오는 이야기 사랑을 가르친 이 없어도 가슴에 금이 가고 입술이 타는 건 봄 그 한 순간 타 버리고 떠나야 할 꽃이 남기고 가는 연서 그해 봄 한껏 물 올린 꽃 잔치가 끝나면 잔인한 4월은 이내 빚 독촉이다. 2023. 3. 13.
이웃집 아가씨 이웃집 아가씨 뻥쟁이 춘삼월 봄바람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더니 경칩 입 떨어진 개구리 앞 세워 이집 저집 촐싹대며 불러 낸다 상큼한 아침 휘리릭~ 긴 머리 쓸어 올리고 살랑살랑 걸어가네 이웃집 아가씨 매끈한 다리에 아슬아슬 미니스커트 좁다란 골목길 우아하게 걸어가네 안녕 무거운 짐 택배 총각 상자는 앞으로 눈은 뒤로 여어~ 날씨 좋고 미스 최 멋재이, 멋재이~ 봄이야, 봄 파란 대문 앞집 장 씨 흘금흘금 엄지 척 노랭이 말 뼉다구 동네가 아는데 2023. 3. 7.
나생이 나생이 뜨락의 볕이 조곤조곤 지껄인다고 호미 들고 나간 아내 성급하게 마실을 나온 아이를 업고 왔네 나갈까 말까 햇살 미장원에서 머리를 볶고 올 터진 스타킹도 갈아 신고 파르스름한 블라우스를 걸치고 소풍 나온 날 아이고 이쁜 거 첫눈에 반한 호미가 끈질기게 달라붙다가 마침내 보쌈을 해 버렸다 걱정 마 호강 시켜 줄게 들기름 스킨에 된장 로션 깨소금 향수가 총출동이다 나생이가 차린 신혼 방에 구멍을 뚫고 킁킁 엉큼한 봄이 엿보고 있다. 2023. 3. 6.
오색찐빵 저기, 빨리요, 차 떠나요 어떻케롬? 노란 거, 빨간 거 그리고 분홍, 파란 거 골고루 골고루 하얀 거는 괜둬유? 아 됐구요, 얼마요? 한 개 칠 백 원 합이 만 사천 원 에이, 아줌마 뭐가 그리 비싸 싼거유 이거이 물깜 들인 거 아니라니께 그걸 어떻게 알어 쏙이면 알게 뭐야 드럽게 비싸네 삼복 염천에 누가 사겠어 냅다 시커먼 방귀를 뀌어댄 화물차가 가물가물 떠나고 누리끼리한 삼베 깔판에 신참내기 빵들이 쪼르르 얼굴을 디민다 마수는 했다만 베라먹을 놈 진따베기는 알아 묵어야지 지 아가리에 들어가는 게 뭐시 아깝다고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오후 등날을 볶는 막판 더위가 신경질이다 빵솥을 바라보는 심드렁한 시선에 파리가 오두방정이다 파리채 속도 쌕쌕이 비행기 여름 오후가 화들짝 놀란다 구비구비 쟁피재 넘어 오.. 2023. 3. 3.
봄의 소곡 타협 중 시냇가 버들이 말하길 볼록한 내 눈을 봐 당신이 따스한 이불 속에서 하품이나 하고 있을 때 기나 긴 겨울 밤 차가운 별빛 아래 난 죽을 힘을 다해서 봄 주머니를 준비했지 그런데 말이야 아기 손 같은 연두색 잎을 그냥 보여 줄 수 없잖아 하늘이 답하길 천만에 그게 누구 덕인데 내가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이지 바람이 나서길 둘 다 맞아요 버들이 피는 것은 산과 들이 피는 것이고 하늘이 피고 강이 피고 사람이 피는 거에요 강물에 피래미가 뛰고 새들이 날개를 펴는 거에요 당신의 볼록한 눈 속엔 세상 모든 연인들이 속삭임과 숲과 바람과 새들의 노래가 숨어 있다가 땅~ 포근한 햇살이 쏘아 올린 총 소리 한 방에 당신을 향해 백 미터 달리기로 뛰어 갑니다. 꽃 속에 든 님 화르르 피어나는 봄 꽃을 님이라고 .. 2023. 2. 28.
한탄강 태고의 강줄기에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설치한 인공길 시간이 더 흘러야 평가될 몫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당장을 살아야 하는 지자체의 고민이 낳은 결과겠지만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원이나 먹거리를 미리 당겨 소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23. 2. 17.
봄이 온다는 것은 봄이 온다는 것은 봄이 온다는 것은 그리운 사람에게서 한 발짝 멀어지는 일이다 잔 설 눈물 그렁그렁한 유곡엔 기력이 다한 망각의 내가 흐른다 기억의 서랍을 뒤져 연민으로 남은 오고 간 날들을 호명하면 갈 빛 일기장에 숨은 잊었던 얼굴들이 숨 가쁘게 뛰어온다 이내 체념으로 추락하고 마는 셀 수 없는 이름들 나는 어디쯤 왔을까 동공은 커지고 호흡이 길어지는 봄 날 잔설 흐르는 강가에서 수채화로 남은 일기장을 찢어 한 장 한 장 종이배에 태운다 아래로 아래로 떠나 보내는 일이 얼마나 다행인가 머나 먼 옛 사람이 흘려보낸 이야기가 오늘 내 강가에 닿았듯이 무심히 흐르는 강 줄기도 연으로 닿는 것 흐르고 흐르다 봄 배에 실어 보낸 작은 이야기들이 유유한 강가에 닿거든 상처 입은 후인들이 찾아와 눈물 짓게 해맑은 .. 2023. 2. 9.